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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대리는 웃고 있었다. 멀리 앉아 있는 나에게도 보였다. 분명 저 자리는 두더지 과장 자리가 틀림이 없는데 어떻게 웃고 있는 것일까. 의아했다.
옆에 있던 김대리가 나에게 다가와서 물었다.
“저거 미친 거 아니야? 저기서 웃고 있다니…”
“그러네, 미친 거네. 나도 이상하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미친 게 맞아”
“그렇지.”
김대리와 나는 멀리 보이는 배 대리와 서로를 번갈아보며 미쳤다고 반복했다. 그 순간 배 대리의 얼굴에 웃음이 멈췄다.
“그렇지, 저거지 저 표정이지. 그렇지 않아?”
그 자리에 맞는 표정이 나왔다며 맞지 않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순간 나는 배 대리와 눈이 마주쳤다. 배 대리는 다시 웃고 있는 표정이었다.
“아니야 또 웃고 있어.”
“뭐라고!!”
김대리가 열을 내며 다시 봤을 때 정말 배 대리는 다시 웃고 있었다.
“뭐냐고 이 상황이. 두더지 과장 자리에서 저렇게 웃을 수 있냐고. 기억나 왜. 얼마 전에 태환이었나. 왜 신입직원 있잖아. 와~ 말도 마라 우리에게 넘기면 되는데 그걸 두더지가 붙잡고는 1시간 정도였지. 아니 더 길었나 아무튼 잔소리, 잔소리를 하는데 거의 울상이었다니까. 뒤에 가서는 나를 붙잡고 우는데 그 사이사이 뱉어내는 욕은 하! 말도 마라, 그거 달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우리 때는 그 정도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 갈수록 심해져. 안 좋아…”
“…. 그렇긴 하지…”
씁쓸한 말투가 절로 나왔다.
“그리고 왜 또 있잖아. 그 송대리. 걔가 몇 달을 밤샘, 밤샘하며 만든 프로젝트, 뭐였지. 그… 있는데 호주 쪽이었나. 왜. 해양구조물이었나. 플랜트였나. 그거, 제안했던 거 말이야. 알지. 아니, 수익이 보이면 된 거지 뭐가 못마땅한 건지 신나게 깨버렸잖아. 이유가 뭐였더라. 경기가 안 좋았다나 어쩌했다나. 그래도 송대리는 그 이유를 받아들인 거 같았는데, 난 아니었거든. 그거 했으면 꽤 수입이 나왔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안 그래?”
“무슨 소리야. 그때 그거 했으면 회사 넘어갔지. 두더지가 성질이 더러워서 그렇지 일 하나는 끝내주잖아. 호주 사업건 그거 무시하고 프랜차이즈 했잖아 왜, 서비스업 전망이 좋다며 다시 계획 만들어 투자했잖아. 그래서 성공했고. 안 그래?”
“어쭈, 내 편이 아니다.”
“편 가르기냐?”
“야! 온다, 온다. 배 대리 온다.”
터벅터벅 걸어오는 배 대리가 보였다. 몇 걸음 안 되는 거리인데도 발걸음이 그래서인지 꽤 멀게 느껴졌다. 김대리와 나는 서둘러 배 대리 곁으로 갔다.
“뭔 일인데? 뭐야?”
동시에 물어보는 우리를 배 대리는 번갈아 보더니 또 웃었다.
“얌마! 미쳤냐? 왜 자꾸 웃어?”
“무슨 일인데?”
그러더니 손가락으로 두더지 자리를 가리켰다. 김대리와 나는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봤다. 그 순간 두더지 과장이랑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검지 손가락으로 자신에게 오라는 듯 까딱까딱 움직였다. 김대리와 나는 각자에게 자신의 방향으로 손을 가리키니 두더지 과장이 김대리를 가리키며 까딱까딱거렸다. 김대리 얼굴엔 온통 가기 싫다는 표정이었다. 두꺼운 안경을 콧등 위로 추스르더니 능숙하게 얼굴을 숨겼다. 그래도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제 죽겠지….”
“가서… 그냥 웃어.”
배 대리의 뜬금없는 말에 김대리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한 체 입모양으로 ‘미쳤냐!’를 말했다. 배 대리는 김대리의 등을 톡톡 쳤다. 회심의 미소는 배 대리의 몫이었다.
“너도 준비해 아까 이야기 중에 너도 부른다고 한 거 같으니까.”
“왜?”
“그건 몰라. 가 보면 알겠지…”
배 대리가 다시 실성을 한 건지 배시시 웃었다.
“너 정말 미쳤구나. 두더지가 뭐라고 한 거냐?”
큰 소리에 돌아본 두더지 과장의 자리에 김대리는 뻣뻣한 목석이 되어 있었다. 그러더니 실실 실 웃었다.
배 대리는 알고 있다는 듯 비슷한 표정으로 웃기 시작했다.
“너도 가 보면 저렇게 될 거야.”
크게 웃는 웃음도 아니고 어금니를 꽉 깨물어 새어 나오는 웃음의 소리는 심장을 더욱 뛰박질하게 만들었다.
두더지 과장과 김대리의 이야기는 길지 않았다. 돌아선 김대리의 표정은 아까 돌아오던 배 대리와 같은 표정이었다. ‘넋 나간 웃음’ 이 말이 딱 맞는 표현이었다.
“너 오래.”
두더지 과장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불안감으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무슨 일인데.’ 벙긋 벙긋거리는 내 말에 둘은 그냥 배시시 웃었다.
“네가 마지막이다.”
“왜, 왜 내가…”
두더지 과장과 눈이 마주쳤다. ‘말 안 해줄 거냐 배신자들!’ 소리 없는 외침에 김대리와 배 대리는 입꼬리만 올라간 체 눈은 웃고 있지 않은 표정으로 ‘가봐~’ 라며 턱을 끄덕였다. 나는 마치 수학시험을 망치고 따로 담임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을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과장의 책상에 다다랐을 때 이미 심장은 가슴을 튀어나올 듯 뛰었다. 잠시 뜸을 들이던 과장이 입을 열까 말까를 고민하는 듯하더니
“지 대리. 내년 급여. 50% 상승이다. 불만 없지.”
나는 피식.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눈동자는 커지고, 벙벙한 표정이 절로 만들어졌다. 멀리 배 대리와 김대리가 웃는 모습이 보였다. 너무 좋은 나머지 볼을 꼬집어 보고 싶었다. 지금 급여의 50% 인상. 가지고 싶었던 몇몇 가지가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헤벌쭉 웃다가 정신 차리고 다시 헤벌쭉 웃다가 정신 차렸다.
“네… 네…”
Written by 마모 / 밤의 작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