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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라고 말해주실 수 있을까요?
게시물ID : humorbest_32470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걷자
추천 : 178
조회수 : 6043회
댓글수 : 13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1/01/17 01:34:54
원본글 작성시간 : 2011/01/16 23:29:27
입원해 있는 엄마를 혼자 병실에 남겨 놓고, 내일 출근을 위해 귀가했습니다.
사지 중 삼지째의 수술을 앞둔 엄마. 젊어 남편을 보내고 남매 키우느라 온갖 일을 하느라 사지의 연골이 다 닳아 없어진 우리 엄마...
내일 무릎 하나 마저 수술하고 나면, 쇠를 박아 넣지 않은 관절은 팔꿈치 한쪽 간신히 남아요.

오빠 여섯살, 저 다섯살 때 엄마가 오빠를 가졌을 때부터 폭력을 휘둘렀던 아빠가 알콜중독과 폐암으로 세상을 뜨고, 엄마는 남매를 키우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어요.
시장일, 마트일, 청소부와 파출부와 식당일. 공공근로 막노동과 간병일... IMF 터지면서 엄마는 한달 일하고 잘리고 하루 일하고 잘리기가 부지기수였지요.
하루살이 일마저 못 구하고 쉴 때에는 엄마는 밥도 안 먹었어요. 오빠와 저에게 죽 쑤어 먹이셨지요.
엄마는 밥 안 먹어? 물으면 엄마는 먼저 먹었다고, 많이 먹었다고... 저는 어떻게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다 믿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초등학교 졸업식 날 엄마는 제 손에 5천원 쥐어주시고는 평소보다 더 이른 새벽에 일을 가셔서는 더 늦은 밤에 돌아오셨어요.
저는 그 때 참 서운했었는데 말이예요. 그래도 나 졸업하는 날인데, 졸업식에도 안 와주고 평소보다 더 일찍 가버린데다 더 늦게 돌아온 엄마...
혼자 치르고 온 졸업식이 서러워서, 와주지 않은 엄마가 미워서 다음 날 다다음 날까지 엄마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않았었어요.

몇 년이나 지나서야 깨달았지요.
엄마는 그 날, 엄마 일터까지 가실 차비, 고되게 일하고 싸구려 점심 먹을 밥값, 지친 몸을 끌고 돌아올 차비... 그거 아껴서 5천원 쥐어주시고 어린 딸 졸업식에도 못 가주는 못난 엄마인 자신에 눈물 흘리며 일하고 돌아오셨다는 걸요.

공고에 진학해서 학우들보다 빠르게 2학년 때부터 공장 취업을 나갔어요.
너무 기뻤습니다. 매달 정해진 날짜에 일정한 수입이 들어온다는 사실에, 누구에게 감사해야 할 줄 몰라하며 기뻐하고 감사하며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옷이 낡아 떨어지면 새 옷을 살 수가 있었고, 쌀이 바닥까지 떨어지기 전에 쌀을 살 수 있었고, 엄마 오빠 생일날에 외식도 할 수 있었습니다.
엄마가 피고름 흘려가며 인문계에 보낸 오빠, 제 손으로 대학까지 보낼 수 있었어요.

진작 반병신 되어 자리에 누운 엄마와 휴일 없는 공장 일로 일주일에 한 두번 겨우 얼굴 보는 여동생을 두고 어떻게 대학까지 가느냐고, 일을 하겠다 말하는 오빠를 모녀가 화를 내가며 떠밀어 대학에 보냈어요.
저는 제가 못한 공부 오빠가 대신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컸을 뿐인데, 엄마는 오빠를 혼찌검을 내어 학교를 보내고 돌아서서는 제 앞에서 고개도 들지 못한 채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셨어요.
아들 자식 공부시키겠다고 딸 자식 뼛골을 빼먹는 못난 엄마가 죄인이라고 우는 모습에 저도 주저 앉아 울었더랍니다.

오빠가 졸업하는 올해가 되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엄마는 두 번의 큰 수술과 한 번의 작은 수술을 했고, 두어달에 한 번씩 얕은 발작과 함께 응급실에 실려가 회사를 쉬이 조퇴하지 못 하는 저를 미칠 것 같은 감정 속에 일하게 만드셨고...
오빠는 군대에서 부상을 입어 평생 후유증이 가는 수술을 했고, 제대 후 잠시 방황하다 무면허로 사람을 치는 사고를 냈습니다.

저는 공장이나마 꾸준히 진급하여 시급 몇백원 오를 때마다 어찌나 행복했는지 몰라요.
하지만 가족들에게 끊임 없이 일어나는 불행한 사고들을 수습하려 수없이 적금을 깨고, 은행 빚을 내고, 직장 선후배들에게 여러번 돈을 빌려야 했지요.
차라리 죽어버리면 더 이상 슬프지도 괴롭지도 않아질 거라고 생각한 적이 많습니다.
엄마가 다 미안하다며 엄마가 그냥 죽어야 하는데... 하며 울던 엄마를 병실에 남겨 두고 돌아오던 방금 전의 귀가 길을 멍하니 걸으면서도 생각했습니다. 죽고 싶어. 다 버리고 도망치고 싶어. 너무 힘들어...

방 구석에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 몇시간 넘게 생각했어요. 과거들을요.
나를 어떻게 키워준 엄마인데, 변변한 호강 한 번 못 시켜주고 병앓이만 하다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고.
아빠 피를 어쩌지 못해 술에 취해 폭력을 휘두를 때도 있고, 어쩌자고 무면허로 사람을 치어 엄마 병원비로 쓸 적금 몽땅 내어놓게도 만들었고... 미운 적이 한 두번도 아니었던 오빠지만, 술취해 나를 때리고 나서는 제 방에서 몰래 울며 자신을 탓하고, 사고를 낸 후에 오빤 그냥 정신 차리고 학교만 잘 다녀달라고 화내고 사정하는 동생 지갑에 잠 안 자고 새벽 알바해서 번 몇만원 넣어 놓고 벌건 눈으로 학교 가는 우리 오빠도 내가 어찌 순간 순간 밉다고 아예 등을 돌려버릴 수가 있겠어요.

그래도 실알 같은 희망이라도 늘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엄마는 수술을 하고 나면 언제나 그랬듯 재활기간이 참 길고도 고통스럽겠지만, 그 시간을 보내고 나면 당장 오늘보다는 건강한 몸이 되실 거고... 저에게는 다행히 수술비 할 만한 돈이 모여 있었어요.
착하지만 철없어 보였던 오빠도 이제는 졸업이 코 앞이고, 또 취업도 제법 순조로워 보여요. 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안도되는 일인지...

제 나이 스물 여섯. 급식비가 없어 굶고 등록금이 없어 수모를 당했던 어린 시절부터, 사회의 더러운 꼴을 겪으며 셀 수 없이 힘들어도 하며 이 나이가 되었습니다.
지친 기분이 들 때, 그래도 나는 아직 젊고, 가족이 있고, 직장이 있고, 가진게 적지 않다는 것을 상기하며 힘을 냅니다. 오늘 진 해가 내일 아침 반드시 다시 떠오른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에, 두서 없는 글이 길어지기까지 해서...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괜찮으시다면, 댓글 하나 부탁드려도 될까요? 힘내라고, 넌 가진 것이 많으니 우는 소리 말고 앞으로도 포기 말고 힘을 내라고...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2011년 초입입니다. 하시는 일 모두 잘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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