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수정
지극히 평범한 날들 - 균열 -
막 중학교에 올라와서 철이 들 무렵부터 나는 혼자살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없냐고 묻는다면 그런 것은 아니었고, 내가 가출하고 싶어서 가출했냐고 묻는 다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단지 부모로부터 내가 쫓겨났을 뿐인 것이다.
자신의 핏줄을 이어받은 아이를 내치는 행위라니, 상식적으로는 이해 할 수 없는 행위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나의 부모는 내쳤다.
이유는 내가 영적인 소질이 없다는 것.
그것이 내가 쫓겨나게 된 단 하나의 이유였다.
우리 집안은 상당히 오래 전부터 퇴마사를 하며 살아왔다고 한다.
퇴마사(退魔師)
그것은 마(魔)를 물리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서, 조선 시대 때에는 법사 등의 명칭으로 불리곤 했다.
지금에 와서는 마법을 사용하는 마법사와 구별하기 위하기도 할 겸 토속 적인 신앙답지 않게 유행에 맞춰 현대에는 퇴마사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 퇴마사 가문을 삼국시대 이전부터 계승 해온 것이 우리 집안이었고, 부모들도 역시 퇴마사였다.
나도 역시 퇴마 가문의 일원으로서 자라면서, 부모로부터 퇴마사로서의 교육을 받기는 했지만 ‘자질이 부족하다.’ 라는 이유로 초등학교 6학년 무렵.
집에서 쫓겨나고 나고 말았다.
대대로 이어온 가업을 달성하는데 있어 자신이 낳은 자식이 부족하다고 쫒아낸 것이다.
내가 가업을 잇기 위해 들어온 사제라면 모를까, 낳은 자식을.
그래도 자식이라고 나를 돌볼 보모를 붙여주었고, 지금까지 매달 생활비라는 명목으로 많은 돈을 통장으로 붙여주고 있었다.
이쪽은 감사히 생각하고 있는 편이다.
덕분에, 내입으로 말하기는 뭐하지만 보통의 중학생보다 철드는 시기가 빨리 온 것 같다.
덤으로 아주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다른 애들처럼 학원 같은 곳에 다니느라 바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퇴마사를 계승하는 수업이겠지만.
집에서 쫓겨나버린 뒤로는 어째선지, 뭔가 할 의욕도 생기지 않아
중학교 1학년과 2학년, 2년이란 세월을 어영부영 아무 목적도 의욕도 없이 보내버리고 말았다.
깊게 사귀는 친구도 만들지 않았고, 그렇다고 무언가에 열중해서 해 본적도 없었다.
그저 시간을 때우고 있다.
라기 보다는 시간을 죽이고 있던, 그런 하루가 계속되는 날들이었다.
그나마 관심 있게 하던 일이라면
책을 읽는 행위였다.
그래서 어쩌다 보니 2학년 말에는 국어 선생님으로부터 3학년이 시작하면 도서 부장을 맡아 달라고 부탁받아 버렸다.
도서부장을 맡고 나서도, 내가 하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았고.
또, 중학교 3학년이라고 해서 2년 동안 지내왔던 생활 패턴이 크게 달라지는 것도 아닐 터였다.
이지수를 만나기 전까지는 정말 평범한.
아니 평범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다지 삶의 욕구가 같은 것은 조금도 찾아 볼 수 없는 의욕 없는 삶을 살았었다.
정확히 이지수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물론 그 전에, 그 모습을 가장 처음 본 것은 신입생 대표로서 모두들 앞에서 선서를 했을 때 가장 먼저 봤다고 하는 것이 맞겠지만 그때는 그저 공부를 잘 하는 아이 정도의 인식이었다고 생각한다.
당시에는 집에서 쫓겨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였던 터라 심정이 꽤 복잡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그렇게 입학식이 끝나고 나서 그 이름을 다시 듣게 된 건 며칠이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우리 학교는 어느 부에 들어가는 것을 의무로 하고 있었는데 단연 체육계 입부 테스트는 상당한 눈요깃거리가 되기 마련이었다.
물론 나도 부에 들어가는 것은 꽤나 관심이 있었다.
나의 경우에는 ‘어느 부에 들어가는 것이 즐겁게 보낼 수 있을까’ 가 아닌
‘ 어느 부에 들어가면 시간을 효율적으로 없앨 수 있을까 ’였지만.
그런 저런 생각을 하며 지내고 있던 차에 많은 얘들이 운동장으로 몰려 나가는 것을 보았다.
나는 가입 대상으로 운동부는 리스트에 넣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크게 흥미가 가지는 않았지만, 무엇 때문에 저렇게 몰려 나가는 것일까, 하고 궁금증이 생겨서 인파에 휩쓸리다 시피 운동장으로 떠밀려 나오게 되었다.
운동장에서는 여러 가지 운동부의 입부 테스트가 펼쳐지고 있었다.
농구라던가, 야구부의 캐치볼. 축구부의 프리킥 정도.
그때 우연히 옆에 있던 누군가로부터 1학년 여학생이 겁도 없이 중장거리에 지원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리고 그 학생을 테스트 겸, 선배의 위엄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에이스가 출전한다는 것도.
사실 중학교 수준의 중장거리 여자 에이스라고 해봐야 그렇게 뛰어나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때 이지수와 달렸던 그 선배는 3학년으로 작년에 전국 체전에 출전한 경력이 있는 이 지역에서는 장래가 기대되는 선배였다고 한다.
그렇게 신입과 육상부 에이스.
그 둘의 달리기가 시작했고, 1000M가 넘어갈 무렵 승부는 이미 결판이 났다. 라고 볼 정도로 차이가 벌어져 있었다.
육상부 에이스가 아닌 신입생 이지수의 승리로.
당시에 육상부 고문 선생님께 듣기에 갓 초등학생 딱지를 땐 중학생이 보여줄 달리기가 아니었다.
고 들은 것 같다.
학기 초에 그런 파문을 일으켰던 이지수는 5월 중순에 열린 전국 소년 체전에서 당당히 전국 1위를 차지. 순식간에 학교의 스타가 되는 것은 당연했다.
또, 언제 운동을 하면서 학교 활동을 할 틈이 있었는지, 학생부 행사체육부의 차장으로 초대받았고, 이듬해는 부회장. 그 다음해는 2학년 말의 총 선거에서는 회장으로 당선되었다.
그 사이에도 수많은 전설을 세웠지만 하나씩 적어가면 항목만으로도 A4 용지를 앞뒤로 두어 장을 채울 정도니 나중에 시간이 나면 이야기 하도록 하자.
그때까지만 해도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구나, 하고 그저 이지수를 바라볼 뿐이었고,
나와 이지수가 엮을 일이라곤 없을 것 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가끔 형식적으로 열리는 학생회에서 마주치기는 했으나 대화로서 성립하는 이야기를 해본적은 없기에 논외.
참고로 나는 도서부에 들어갔다.
가장 하는 일이 없는 부서였다고 들었기 때문에 들어간 것이었다.
생각대로 책만 읽는 부서여서 상당히 시간을 없애는데 도움이 되는 부서였지만 그것이 계기가 될 줄은 …….
어쨌든 그런 앞에 ‘초’ 가 붙는 만능형 올라운드 모범생 이지수와 처음으로 대화다운 대화를 하게 된 것은 별로 특별하지도 않은 우리 중학교의 도서관에서였다.
3학년이 끝나 갈 무렵 나는 작년 말 국어 선생님의 추천으로 도서부장을 하고 있었는데, 정식으로 임명 되어 있었던 사서 선생님은 출산 휴가.
그 대타로 왔던 공익은 훈련.
그런 말도 안 되는 악재가 겹친 관계로 남은 기간을 내가 사서로 보내게 되었다.
중학교 도서관에 방과후에 찾아올 사람이 얼마나 되는 지는 아주 잘 알 것이다.
나도 그것을 알고 있었고, 별 의미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학과중에 어지럽혀진 책들을 정리하고 아무렇게나 내팽겨진 북 셔틀에 올리어진 책들을 번호순대로 정리하고 있으니 도서관에서 혼자 공부하고 있는 3학년 명찰을 달고 있는 익숙한 얼굴의 소녀를 보았다.
우리 지역은 고등학교 입학에 시험을 치고 있는 비평준화 지역으로서, 중학교 3학년 2학기 기말고사의 내신은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기에,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가는 연합고사라는 첫 입시를 마친 우리는 나태해질 대로 나태해져 시험기간이 다가왔음에도 시험이라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이제 곧 고등학생이라는 밀려오는 압박감과 기대감 등의 여러 가지 감정이 혼합되어 한참 방황하고 있을 시기였던 것이다.
하지만 도서관에 앉아 있는 소녀는 그렇지 않았다.
홀로 도서관에 남아 도서관이 문을 닫는 시간인 6시까지 공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따라 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공부하고 있던 이지수를 책 정리를 하며 지켜보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의 전부였다. 여기서 한번 말해두지만, 나는 변태 같은 것이 아니다. 그저 중학교에서 전설을 만들어 내었던 그 모습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날도, 그 다음날도.
이지수가 도서관에 혼자 남아 공부를 하는 것은 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오기 직전까지 계속되었다.
나의 책 정리도 계속되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그 날도 책을 번호순대로 책장 속에 넣고 있던 중에, 실수를 해서 들고 있던 책을 우르르 쏟아버리고 마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순간 등골이 오싹하는 기분이 느껴졌다.
어느 공포영화를 봐도 그런 감각은 다시 느끼기 힘들 것 같을 정도로.
“도서관에서는 조용히 해주지 않을래? 실내화 끄는 소리 하며 책들 부딪히는 소리 하며 북 셔틀 끄는 소리 게다가 그것도 못 몰아서 이리 저리 부딪히게 만들고 책도 이렇게 왕창 떨어트리고 …….”
처음……으로 듣는 이지수의 짜증 가득한 목소리였다.
- 아니 내 실수들…… 이긴 하지만 그게 그렇게 원망을 살 만한 정도의 일을 한 건 아닌 것 같은데.
별로 시끄럽지도 않았던 것 같고……
그렇게 생각하니 나도 짜증이 나버렸다.
“그러면 도서관이나 가지 그러냐? 게다가 이게 얼마나 힘든 일인 줄 알아?”
사실 별로 힘든 일은 아니었다.
다만, 저런 이지수에게 반발하는 마음에서 생겨난 말 이었을 뿐.
책 덮는 소리가 났다.
“그 정도 일도 못하는 거야?”
그러더니 이지수가 와서는 북 셔틀에서 책을 들고서는 척 척 제자리에 꼽아 나가는 것이었다.
책 정리라는 것은 제대로 하려면 도서관 몇 번의 책이 어디에 위치해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하며 책 번호에 따른 분류방법이라던가 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할 수 있다.
나도 반년 동안의 임시 사서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선에서 하고 있었지만 정확히 하고 있진 않았다. 어차피 학교 도서관에서 제대로 정리해 놓아도 제대로 된 방법으로 책을 찾아가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이지수는 그것을 완벽히 하고 있었다.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당연히 내가 제대로 하지 않는 다는 것도 알고 있었겠지. 이지수는 책장에 책을 턱, 턱 소리가 날 정도로 요란하게 넣고 있었다.
이래서야 그쪽이 더 민폐잖아!
“너도 빨리 해.”
이지수가 나를 재촉했다.
“- 응.”
의외의 반응에 놀라서 잠시 현실과 멀어져있었던 나는 재빨리 현실로 복귀해서 바닥에 떨어진 ‘바람의 여행’ 이라고 쓰여 있는 100번 대의 책을 주워 북 셔틀 위에 올려놓았다.
“주워서 셔틀 위에 올려놓기만 할 거야? 그래가지고선 집에도 못가겠네.”
이유야 어찌됐던 이지수가 좋은 솜씨로 나를 도와준 덕에 일을 셔틀 위의 책을 빠르게 정리 할 수 있게 되어서, 5시쯤에는 일을 마칠 수 있게 되었다.
이지수는 책의 정리를 마치고 난 뒤 바로 짐을 챙겨서 나왔고, 더 할 일도 없던 나도 그대로 도서관의 문을 잠그고 교무실에 키를 넘겨준 뒤, 본관 정문으로 나왔다.
대각선으로 100M 트랙이 겨우 나오는 운동장에서는 다른 학교의 모습도 섞인 야구부가 야구 연습을 하고 있었다.
참고로 우리 학교는 베이비붐 시대에 만들어진 학교라 그때와는 다르게 출산율이 현저하게 낮아진 지금 세대에 와서는 쓰고 있는 교실보다 남아도는 교실이 많았고 그에 비해 교사는 부족해서 옆의 중학교와 우리 중학교는 가르치는 과목 선생님들이 거의 같았으며 덕분인지 동아리도 연계된 것이 많았고 문화제나 체육대회와 같은 축제도 같이 열고 있는 편이다.
아마도 저쪽 학교의 잔디가 깔린 운동장은 축구부가 쓰고 있겠지.
“흐응, 시간이 남아도는 모양이구나?”
아무런 생각 없이 운동장을 바라보고 있을 때 들려온 날 비꼬는 목소리의 주인은 이지수였다.
응수하고 싶었지만 그건 그거대로 귀찮으므로 내버려 두었다.
“먼저 간 거 아니었어?”
나 때문에 기분이 상해서 그대로 집이나 시립 도서관에 가버린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나보다.
“잠깐 교실에 두고 온 물건이 있어서. 그러는 너는 왜 이제 나오는 거야?”
“교무실에 도서관 열쇠 반납하러.”
내가 가지고 있어도 별 상관은 없는 물건이었지만, 일단 이런 곳의 열쇠는 있던 곳에 있지 않으면 안 되는 규칙인 것이다.
“그래? 근데 너 이렇게 운동장에서 운동부의 구경을 하고 있을 정도로 한가해?”
어쩐지 이런대서 쓸모없이 시간을 죽이고 있는 나를 비꼬는 것 같았지만, 그건 사실이었다.
“고입 끝나고 나서부터 임시 도서관 사서를 맡고 있는 나라고. 남는 것이 시간이라면 시간뿐이야.”
딱히 하고 있는 게임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관심 있는 운동이 있는 것도, 관심 있는 연예인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평소의 나를 모르고 이 문장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나는 주변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 무관심한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는 사람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의외로 친구들에게 오지랖이 넓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소문이라면 좋아한다.
다만, 나 자신의 이야기에 흥미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하는 그 어떤 행위조차도.
나에게 있어선 아무런 관심이 없다.
“책 정리가 끝나고 할 일은 없다는 거야? 요즘 시대에 꽤나 여유롭게 살아가는 사람이네. 시간을 팔 수 있다면 꽤나 부자가 될 것 같네. 다들 1분 1초가 아까워 ‘빨리, 빨리’를 외치고 있는 실정인데 말이야.”
이지수는 허리정도까지 오는 구령대의 난간에 기대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