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외할아버지는 화가셨다. 특히 호랑이 그림을 잘그리셨는데, 난 어릴때 벽에 걸린 호랑이 그림을 보고 진짜인줄 알고 맨날 울기는커녕, 큰아빠가 우리집에다가 살쾡이박제를 갖다놔서 화장실갈때마다 문열기전에 쉬함. 외할아버지는 정의로운 남자였다. 왼손에는 무궁화 문신이 있으며, 일제시대때는 창씨개명을 거부하시다 감옥에 투옥되기도 했다. 그 당시 외할아버지는 소일거리로, 감옥안에서 화투를 그려 재소자들에게 팔았다고한다. 그렇게 번 돈으로 나와서는 유랑생활을 하셨었다. 또, 외할아버지는 친구와 술을 좋아하는 호탕한 남자였다. 집에서 그런 외할아버지를 결혼시키기 위해 중매를 섰다고한다. 그 당시에도 이미 혼기를 놓친 노총각이었다고. 그런데, 그날도 우리 외할아버지는 술을 얼큰하게 드시고 선 자리에 나가셨고 그날 만난 우리 외할머니를 보고 첫눈에 반해 그자리에서 바로 혼인 날짜를 잡으셨다. 그 후, 옛날 어른들이 얼굴도 모르고 결혼했듯, 우리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선 당일날만 서로의 얼굴을 봤고, 두번째 만남은 바로 결혼식날이라고 했다. 드디어 결혼식 당일. 우리 외할아버지는 한참이나 신부를 찾았다고한다. 외할머니를 못알아보셨던 것이다. 술김에 본 외할머니는 절세가인이었는데, 결혼식 당일날 웬 메주가 한복을 곱게차려입고있었다고했다. 외할아버지는 아뿔싸라고 이마를 치며 탄식했지만, 눈치빠른 외할머니는 어느새 옷고름을 풀고계셨고, 외할아버지는 결혼식 이후 다시 유랑생활을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고. 아.차가운 도시 남자....... 이 이야기는 외할머니한테는 아직까지도 비밀로 전해내려오는 우리집 전설이다. 외할아버지는 20여년전에 돌아가셨고, 외할머니는 지금 나이를 5살 속이고 외할아버지만큼 잘생긴 젊은 할아버지와 동거중임. p.s - 나 외할머니 닮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