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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함'의 변형과 와우
게시물ID : humorbest_32562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T_TΩ
추천 : 25
조회수 : 5587회
댓글수 : 5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1/01/20 23:50:36
원본글 작성시간 : 2011/01/19 11:04:16
게임 서사의 낯설게 하기, 그리고 새로움
- <워크래프트> 시리즈에 내재된 ‘익숙함’의 변형에 대하여



익숙함과 낯설음의 경계선

  어떤 대상에 익숙하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새로움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체 현상은 식상함으로 인식되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답답하고, 권태롭다. 이런 느낌은 개인마다 모두 다르다. 사람에 따라 둘 이상의 대상을 익숙하다고 느끼건, 혹은 전혀 다르게 느끼는 문제는 개인의 경험과 느낌을 따르기 때문이다. 결국 이 익숙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능동적인 실천이 요구된다. 즉, 누군가 삶에 익숙함을 느낀다면, 소설이나 영화를 감상하거나 여행을 떠나는 등 새로운 것에 대한 취미를 통해 삶 자체에 변화를 주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자신이 전혀 경험하지 못한 것, 생각지도 못한 것에 대해서는 두려움을 느낀다. 이러한 '두려운 낯설음'은 옌치와 프로이트에 의해 밝혀진 바와 같이 낯선 환경, 대상, 조건 등에 의한 "지적인 불확실성"에 기인한다. 근대에 들어서 처음으로 기차가 다니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신기함과 함께 두려움을 느꼈다. 당시 사람들은 '기계의 동력을 이용한 운송수단'을 처음으로 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KTX가 처음 운행되었을 때 사람들은 이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기존의 기차보다 빨라진 속력에 감탄했고, '새로운' 기차를 편리하게 이용했다. 결국 새로움이란 기존에 경험했던 것에 대한 연장선상 위에 자리하는 것이다. 
  또한 프로이트는 더 나아가 두렵고 낯설게 느껴지는 것들은 사실 친숙했던 것들이지만 정서적 움직임에 따라서 정반대로 작용함을 밝히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죽음'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를 인지하고 있지만, 직접적으로 죽음과 연관된 귀신이나 묘지등과 마주하게 되면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이미 알고 있지만 그것이 막상 자신에게 다가오면 낯설게 느껴지는 것, 그렇기에 두려워지는 것. 이 것 또한 '두려운 낯설음'이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모든 예술분야는 '두려운 낯설음'을 느끼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창조가 필연적인데, 이는 게임도 마찬가지이다. 
  일차적으로 '참여하는 재미'를 추구해야하는 게임의 특성상 게임 속 배경과 인물구현, 매력적인 스토리설정 등 모든 것이 게임을 즐기는 사람의 흥미를 이끌어내야 한다. 그러므로 직관적으로 말초적인 재미를 가지면서도 지속적인 흥미를 이끌어야 한다는 과제가 주어진다. 하지만 이렇게 균형이 잘 잡히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게임이 그리 많지는 않다. 그 가운데 오랜 시간에 걸쳐 전 세계의 신화와 문명, 영웅들의 이야기를 차용한 <워크래프트> 시리즈가 많은 관심을 받는다는 점이 흥미롭다.
  북유럽 신화를 모태로 삼고 있는 J.R.R. 톨킨의 대작 󰡔반지전쟁󰡕(영화 <반지의 제왕>)은 <워크래프트>시리즈의 스토리와 세계관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워크래프트>시리즈 역시 북유럽 신화 이야기에 기반을 두고 있다. 또한 이런 판타지 세계를 처음으로 게임에 도입한 TRPG <던전&드래곤스>에서의 게임 형식을 차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워크래프트>제작진이 크게 영향을 받았음을 밝힌 <워해머>시리즈 역시 게임 세계의 일부분을 신화에 의지하며 인간, 엘프, 드워프, 오크 등의 종족이 구현된 게임이다. 비록 <워해머>는 즐기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이미 소설 󰡔반지전쟁󰡕, 혹은 영화 <반지의 제왕>시리즈를 통해 이들 종족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을 게임 상에 구현한다는 것은 결국 익숙한 것의 반복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워크래프트>시리즈 이전에도 많은 게임들이 󰡔반지전쟁󰡕의 세계관에 영향을 받았고, 익숙한 것의 반복이라는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원작 소설에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였다. 익숙함 속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많은 게임들이 탄생과 소멸을 거듭했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반지전쟁󰡕 자체가 하나의 완벽한 이야기 구조로서 변형이 어렵다는 점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토리를 제외한 등장인물이나 배경 등의 일부만을 차용하게 되었고, 이를 이용해 새롭게 창조된 독자적인 이야기 구조나 게임 시스템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워크래프트>시리즈는 이런 익숙함이라는 약점을 극복하고 차별화에 성공하였다. 이는 새롭게 창조된 <워크래프트>시리즈만의 이야기 구조와 게임 시스템이 사람들의 흥미를 지속적으로 자극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성공의 근원에는 무엇이 있는가. 

친숙한 문화의 새로운 변형

  <워크래프트>속에는 익숙한 요소들과 새로운 요소들이 공존하고 있다. 기존의 모든 게임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마법능력이 익숙한 요소라면, 샤머니즘을 통한 불가사의한 힘과 토테미즘을 따르는 자연의 힘은 새로운 요소이다. 하지만 익숙함과 새로움의 차이는 쉽게 눈에 띠지 않고, 게임 속의 새로운 요소라 할지라도 생각해보면 언젠가 들어봤다거나 본 것들인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게임 속 종족 중 하나인 타우렌은 소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그들의 풍습은 아메리카 인디언과 같다. 또 뾰족한 귀를 가진 숲의 종족인 나이트엘프가 사는 도시의 정문은 우리의 숭례문과 닮아 있고, 심지어 그 곳의 상인들은 김치와 단팥죽을 팔고 있다. 강력한 오크는 <워해머>이후로 정립되어 익숙한 녹색피부에 큰 체격을 가졌지만, 몽골식 천막집인 파오를 연상하는 집을 짓고 살고 있다. 이들이 단순한 괴물이 아닌 인간과 같은 지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 또한 새롭게 다가오는 요소이다. 트롤 또한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추한, 땅의 요정이 아니다. '부두교'라는 원시 종교를 맹신하는 이들은 얼굴에 문신을 하며 팔다리가 가늘고 긴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는 아프리카 원주민의 모습과 닮아있다. 마지막으로 남성과 여성이 이(異)종족으로 느껴질 정도로 이질적인 드레나이의 건축양식은 아랍, 인도, 그리고 같은 회사 게임인 <스타크래프트>의 프로토스를 연상시킨다. 
  위에서 알 수 있듯이 <워크래프트>속에는 변형된 실제 세계의 다양한 문화가 담겨있다. 많은 문화들이 배경과 건물양식, 캐릭터의 행동과 복장 등 세밀한 부분까지 모두 반영되며 세계 문화의 총집합체적인 양상을 보인다. <워크래프트>시리즈는 중세 서양의 판타지로 시작된 초기작 <워크래프트 : 오크&휴먼>부터 지속적으로 발전되는 과정에서 새로움을 더하기 위해 기본 설정 속에 우리에게 익숙한 실제 세계의 문화들을 추가시켰고, 이는 현재진행형이다. 특히 <워크래프트3 : 혼돈의 시대>부터 추가된 네 종족들과 그들의 영웅들에게는 새로우면서도 익숙한 요소가 하나 이상씩 들어 있다. 먼저 오크 종족의 영웅 중에는 큰 염주목걸이를 두르고 흰 수염을 기르는 검사가 있다. 등에 일본 사무라이들이 실제로 지고 다녔던 깃발의 일종인 사시모노(指物)를 착용하고 있는 이 영웅의 이름은 일본식 이름을 연상시키는 ‘사무로’다. 또 나이트엘프 종족 중에는 켄타우로스와 같은 형상의 영웅이 등장하는데, 그는 다수 아군의 체력을 회복시키는 기술을 사용한다. 이는 마치 그리스신화의 켄타우로스 현자 케이론과, 의료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와 같은 모습이다.
  이후 RTS에서 벗어나 MMORPG로 거듭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세계 문화의 모습을 더욱 세밀하고 자세하게 묘사했다. 앞서 언급한 부분들의 구현은 대부분 장르를 전환한 이후부터 그래픽으로 확연하게 구분되기 시작했고, 또 다른 문화와 신화들이 추가되었다. 플레이어가 선택하지 못하는, 이른 바 NPC나 몬스터 종족들도 이집트, 이누이트, 중세 십자군 등의 문화가 게임에 맞게 변형되어 세밀하게 구현되었다. 물론 게임 제작자가 어떤 신화나 문화를 모티프로 삼았다는 구체적인 언급을 한 적은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워크래프트>에서 보이는 각각의 세계가 어디에 기원을 두고 있는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고, 다양하다. 이는 그만큼 개인의 경험과 느낌이 다르고, 게임에서 구현한 세계가 다양한 문화와 신화를 연상시킬 만큼 혼합되고 변형되어있음을 의미한다. 
  이렇듯 <워크래프트>시리즈는 기존에 익숙한 북유럽 신화를 기반으로 하면서 그 속에 다른 문화를 덧입히며 새로움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그 새로움에 낯설음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익숙한 실제 세계의 문화를 변형시켜 사용했다. 하나의 익숙함과 또 하나의 익숙함을 결합시켜 새로움을 만들어 내는 과정을 통해 <워크래프트>는 '낯설지 않은 새로움'에 대한 과제를 효과적으로 풀어가고 있는 것이다. 

문화에 따라 새롭게 변형된 영웅

  초기의 <워크래프트>는 휴먼과 오크의 갈등, 마치 중세 독일의 대서사시 니벨룽겐의 노래에 등장하는 아틸라의 훈(Hun)족과 게르만 민족의 전투를 연상시키는 종족전쟁으로 시작해 <워크래프트3 : 혼돈의 시대>에서는 서양과 비서양 문명 간의 충돌로 발전된다. 이렇듯 계속되는 충돌과 전쟁 속에서 많은 영웅들이 탄생하고 사라지는데, 이 영웅들은 기존의 게임과는 매우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워크래프트>역사상 가장 위대하다는 평판을 받는 영웅인 ‘쓰랄’의 종족은 오크다. 오크는 앞서 언급했듯이 몽골제국의 영향을 받아 구현되었다. 이 연장선상에서 쓰랄은 몽골제국의 건국자 칭기즈칸을 연상시킨다. 칭기즈칸처럼 부족 영웅의 아들로 태어나 동족에게 아버지를 잃은 쓰랄은 고생 끝에 흩어졌던 부족들과 옛 동맹종족들을 재규합하고, 다른 종족과의 동맹을 새로 맺으며 이들을 강력한 세력인 호드(Hordes, 묘하게도 유목민을 뜻한다.)로 발전시킨다. 이 호드 통합의 과정에서 샤먼 드렉탈의 도움으로 고대 샤먼을 받아들이는데, 이는 칭기즈칸이 부족을 통일할 때 샤먼 코르치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과 상통하는 부분이다.
  실제 세계의 역사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을 게임 상에 구현함으로써 영웅의 외모는 낯설지만, 이야기를 따라가 보면 플레이어는 영웅의 일생이 자신이 어느 정도 아는 어떤 이의 일대기와 유사함을 알 수 있다. 만약 칭기즈칸의 일생을 전혀 모른다고 하더라도, 쓰랄의 일대기는 조셉 캠벨이 다양한 문화권의 신화를 분석해 도출한 ‘원질신화(monomyth)’의 원칙을 상당부분 따르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큰 무리 없이 이야기를 이해하고 몰입할 수 있다. 이는 괴물로 대변되던 오크를 위대한 영웅으로 만드는 것이라는,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것에 접촉했을 시의 거부감을 완화하고 오히려 긍정적인 반응을 도출하는 하나의 방법이 된다. 
  휴먼의 경우에는 호드와 정반대의 영웅을 구현한다. 로데론 왕국의 촉망받던 왕자 아서스 메네실은 정의로운 기사였지만 악마의 세력인 스컬지에 유혹당하면서 잘못된 생각으로 백성들을 죽이고, 급기야 힘에 대한 탐욕만이 남아 아버지를 죽인 후, 스컬지의 군주가 되려 한다. 이 과정에서 온전한 자신이 되기 위해 자신을 만든 이를 제거해야 한다는 관념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기저에 내포되어 있다. 하지만 노스랜드에 이르러 강대한 스컬지의 군주 리치킹이 되었음에도, 결국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 리치왕의 분노>에서 리치왕 아서스는 죽음을 맞게 된다. 완벽한 힘을 얻은 것 같던 아서스가 죽은 이유는, 호머의 <오디세이>에서 언급되는 오디세이와 아들 텔레마코스의 이야기에서 짐작할 수 있다. 왕위에 올라 진정한 남성, 즉 아버지를 찾아가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가정을 꾸려 지킬 수 있는, 남자로서의 인정과 축복을 받기 전에 그를 죽임으로써 아서스는 ‘인정받지 못한 존재’로 남게 되기 때문이다. 아서스는 죽기 직전에야 자신의 최후를 지켜주는 아버지의 영혼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게 되고, 인정받게 된다.
  쓰랄과 아서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선한 영웅과 악한 영웅의 이야기를 따라가지만, 그 영웅의 모습이 우리가 알던 것과는 정반대로 형상화되었기 때문이다. <워크래프트>시리즈는 게임 속의 각 종족마다 우리에게 친밀한 각각의 문화를 부여하였고, 이를 통해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모습을 구현하였다. 그리고 그 각각의 문화 속에서 원형을 찾을 수 있는, 기존의 그 종족이 가지고 있던 이미지와는 상반된 영웅의 모습을 통해 익숙하면서도 새롭게 느껴지도록 만드는 효과를 극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항상 새로울 수 있는, 익숙한 것의 변형

  <워크래프트>는 낯설지 않으면서도 새로움을 추구한다. 그렇기에 게임 곳곳에 숨겨진, 인간의 흔적을 발견하면서 플레이어는 익숙한 새로움을 발견한다. 괴상하게 생긴 캐릭터의 생활양식은 우리가 알던 어느 지방의 풍습과 비슷하고, 그들이 섬기는 신은 사실 우리의 옛 조상들이 섬기던 신과 유사하다. 푸른 피부에 커다란 송곳니가 튀어나온 한 영웅의 일생에서 우리는 인간적인 감명을 받는다. 또, 촉망받던 한 영웅이 어둠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세계를 위협할 악으로 몰락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를 떠올리기도 한다. 
  새롭다는 것은 항상 낯설음을 수반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새로움 속에서 익숙한 것을 찾고, 그것을 통해 친숙함을 느낀다. 이 '익숙한 새로움'을 느끼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대상을 ‘인간적’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인류가 쌓아온 환상적인 모든 것들은 인간과 닮아 있다. 그렇지 않은, 잘 알지 못하는 것들은 낯설음과 두려움을 수반하며 때로는 거부감과 함께 기피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이러한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과 익숙한 것에 대한 안주라는 모순된 욕구는 모든 창조적 행위의 난제다. 때문에 창조적 행위는 익숙함과 낯설음이라는 두 개의 장대를 들고 재주를 넘는 아슬아슬한 줄타기와 같다. 게임 역시 이 난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가 상상하는 모든 판타지 속에는 어떤 형태로든 '인간'이 존재하는 것은 바로 이런 연유에서다.
  일방적으로 제작된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아닌 직접 참여하는 게임은 우리가 꿈꾸어온 판타지를 가장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예술 장르이다. <워크래프트>시리즈는 우리에게 판타지라는 '새로운 세계'와 그 속에 살고 있는 '새로운 나'를 제공한다. 하지만 이 새로운 것들은 다분히 인간적이다. 북유럽 신화라는 익숙한 게임의 요소에 새로움을 주기 위해 사용된 요소가 바로 실제 세계의 문화이기 때문이다. 판타지 세계 속에서 익숙하지만 경험한 적은 없는 세계 문화를 즐기는 것. 익숙한 것의 변형을 통해 새로운 것을 구현해 낸 것이 바로 <워크래프트>시리즈의 기반인 것이다. 
  인간은 세계적으로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긴 역사 속에는 다양한 문화들이 존재하고 있다. 아직 <워크래프트>시리즈를 통해 우리가 발견한 것은 겨자씨만큼 작은 것에 불과하다. 앞으로 즐기고 생각할 여지는 무한하다. 그것이 <워크래프트>이든, 아니면 다른 새로운 게임이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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