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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눈이 내리고
단풍과 꽃잎이 닿고
온 짐승이 할짝대도
물결은 한결같았다
얼지 않고 마르지 않는 샘물에서 발원해
속 깊은 연못에게는
모든 게 똑같이 밉지도 고우지도 않았느니라
연못은, 새벽녘 물가에 유난히 많은 별 시들던 어떤 하룻밤을 잊지 못하여
그 후 모든 게 밉지도 고우지도 않으니
밤이면 아직도 회상이 일렁인다네
당시엔 아름다울 게 풍족하여서
낱낱이 존귀한 줄 몰랐을 때다
울창한 나뭇잎 사이 은은한 솔향과
해말간 봄볕 쬐며 지저귀는 새들과
가교 놓는 만물의 색 무지개와
계절마다 옷 바꿔 피는 꽃씨, 이슬 긷는 풀벌레,
그런 열거한 것들이 어련히 찾아드니
삼백 리 안에서 가장 운치 있는 못이라 할 만 하고
덧없이도 꿈이라 할 만치 복에 겨운 시절이었다네
참 욕심 많았더라
그러게 그쯤이면 족하고 심미안도 거둘 걸
세상 넓다고 더 강렬한 걸 원한 탓에
연못은 그 투명한 망막으로 밤새 내내 찾다가 기어코 엿보고야 만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돼버렸기에
도저히 표현치 못할 감당의
영롱한 빛을...
허접한 뭇별과는 다른 자극이어서
이번 생애 다신 안 올 별똥별인 걸 알면서도
연못은 그날 이후 땅거미가 잠들면 더욱 찰랑거리게 되었다네
혼자 빌어본 사랑 외엔 모조리 밉지도 고우지도 않느니라
이젠 무엇도 성에 찰 만치 설렐 수 없고
무엇도 그 단 한 번의 빛에 관한 애증만치 미울 수가 없다
밤이 또 떠밀려 오자 연못은
얼지 않고 마르지 않는 눈물로 애타게도
기억과 닮은 별 비추려 발악이다
애벌레부터 번데기까지
연못을 지켜봐 온 나비 한 마리가
수면에 닿을락 말락 날아든다
" 별은 아니지만, 내가 왔어 "
못은 단호하다.
" 안 된단다. 이 물에 젖지 마라 "
못은 속으로 생각한다.
( 넌 내가 사랑하면 죽게 된다 )
나비는 물길을 읽는다.
" 죽을 만큼인데도? "
못은 심호흡하고, 완벽히 잔잔해진다.
" 나비여, 너는 물에 비친 너의 모습을 사랑하고 있는 거란다
이렇게 고인 내 눈물처럼 동정심과 동질감뿐인 착각 말이다 "
언젠가 내게로 날아든 나비여
세상에서 넌 아름답지만
나는 세상에 없는 걸 사랑했단다
그러니 안된단다
나는 평생 어리석게 살고 싶단다
그것이 내 첫사랑이다
무슨 수로도 손 쓸 수 없는 미련함이지만
난 그것마저 추억으로 간직할 테고
넌 이 눈물과 부둥킬 수 없다
새벽녘 물가에 유난히 많은 별 시들던 날
그때처럼 아직도 한 오라기 빛만이 애증의 대상이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