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게 되는 수수께끼를 기어코 풀어, 모른 채로 죽진 않을래.
뭘 모르겠냐고? 죽게 되더라도 태어난 이유를 알고 싶단 말이야.
내 안의 멸망의 앞잡이는 깊은 미로 속에 갇혀 메말라야 해. 홀로 속삭이거든.
소중하다고 여긴 그 모든 추억까지 끝장내고 말 자괴감이란 녀석이거든.
알아, 잘못한 일을 반성하려면 자괴감이 애매하게 필요한 것도 인정하지만, 통제를 벗어났어.
어째서 잘못하지도 않은 것 때문에 자괴감에 잡아먹혀야 하는데? 아니면 살아있는 게 잘못한 거야?
밀려오는 슬픔이란 늘 그랬어. 어디부터 잘못된 걸까 이유도 모른 채 얼마나 무력했는지를, 침묵에 불을 질러,
파고드는 환청 속을 배회하고 비난의 목소리는 누구 입인지 모르게 화만 나! 방향성 없는 증오가 날 뜨겁게 해.
분노가 계속 번지니깐 주위를 좋게 볼 수 없어. 사랑할 때 필요한 일부가 소실돼 느낄 수 없어. 그래서 더 심하게 모른 체했지.
모두를 속인 거야.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 사랑이란 걸 아는 게 너무 무섭고 낯선 나머지 손길을 모른 체한 거야.
하루와 하루가 이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망가진 어제가 오늘과 단절됐으면 흔쾌하겠어.
오늘 다친 건 오늘로 끝나서 내일이 오는 게 싫지 않아졌으면 좋겠어. 서서히 잠에 빠져.
점점 내가 바보인지 도둑인지 헷갈려. 갖고 있으면 악몽을 꾸게 되는 걸 훔친 건가 싶다고.
희망을 품는 게, 마치 내 것이 아닌 운명을 차지하려 한 부작용처럼 내심 초조해지기만 한걸.
신호가 안 잡히던 전화가 혼자서 연결되더니, 다짜고짜 남은 수명을 셀 동안 숨을 참으라 말해. 혀가 마비된 기분이야.
자괴감이란 녀석이 냄새 맡은 게 분명해. 전화기 너머 목소리는 희망을 품은 걸 자수하라 했어. 그때 빈손은 권총을 쥔 모양이었지.
1분 버티기도 요원해. 총알 구멍으로 들이쉬고, 내쉬어. 내 삶은 불안이 동력이라서 희망을 품는 건 숨을 참는 일이나 다름없나 봐.
없는 태어난 이유로 골머리 앓는 대신, 닿지 못할 별빛이나 꿈꾸며 현실을 억지로 마취한 동안 숨 참는 상태로 자화상을 그려.
내가 어디에 속해있는지 스스로 물었지. 나는 나에게 어떤 존재인지, 무슨 꿈을 꾸는지 물었을 때 내 정체가 내 상처가 되고,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어서 두려움을 못 놓는 거라고 내가 만든 나에게 강요받아 울면서 자백했어. 붕대를 풀고 새 살을 갖고 싶었어.
아무도 슬퍼해줄 사람 없어. 침묵에 불을 질러 모든 게 끝났을 때 내게 있는 것은 내 안에 흐르는 검은 풍경, 괴물로 폐허가 된 세계.
보이지 않은 힘의 인도를 받아 그 빠져나갈 수 없고 숨을 수 없는 어둠의 영토로 언제나 돌아왔지.
내 안의 멸망의 앞잡이는 검은 바람이 부는 폐허에서 잿가루를 가지고 노는 어린 애일 뿐이야. 자기밖에 모르거든.
사랑할 때 필요한 일부가 소실돼 재생조차 할 수 없어. 깊은 미로 속에 갇혀 메말라야 해. 나밖에 모르는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