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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심한 남자의 어떤 이야기
게시물ID : humorbest_32708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나란존재는
추천 : 53
조회수 : 6464회
댓글수 : 7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1/01/26 14:40:46
원본글 작성시간 : 2011/01/26 02:23:40
형. 

무언의 존재인 당신을 형이라고 부르고 싶어.

형, 난 참 어리석게 살았어.

컴퓨터를 처음 접한건 13살때 였어. 

스타크래프트가 나오고 이어서 나온 PC방. 

어린 마음으로 4층인 PC방을 올라가던 장면과 처음 첫 PC방 자리에 앉아서 스타게임을 하던

그 두근거리던 기억을 난 아직 잊지 못해.

근데 그때부터였던 것일까.

타자를 배운건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를 했을 때 부터였어.

이게 내 14살때 이야기야.

그리고 15살이 되던 해에는 레인보우식스 게임 앞에 앉아 있었지.

그리고 16살이 되던 해엔 디아블로란 게임 앞에 앉아 있었어.

그땐 마냥 기분이 좋았어. 

뭔가를 이루어 나간다는 게, 게임을 통해서 내가 강해지고 있는 것만치 느껴지고 든든했거든.

가상속의 게임속에선 난 강해졌지만, 현실 속에서 난 그렇게 무너져 갔나봐.

사춘기를 게임 앞에서만 앉아 있었던 난 그래, 대인기피증이 생긴거야.

형, 난 근데 이 사실을 몇십 년이 지나고서야 알았어. 정말 웃긴 얘기지.

17살이 되던 해엔 메달오브아너란 게임과 거상 스폐셜 포스란 게임을 접했지.

그땐 그게 전부였나봐. 랜파티, 온게임넷 방송 출연, 숨쉬는 순간 전부는 오로지 컴퓨터 앞.

18살도 그리고 또한 19살때에 마져도.

형, 난 참 어리석게 살았나봐.

보수적인 가정속에서 난 그나마 게임에 위안을 삼으며 하루하루를 살았어.

그렇지만 흔히 말하는 불량아이들 처럼 일탈과 방황은 없었어.

단지, 내가 왜 학교를 나가고 내 꿈이 무엇이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는 모른 채

다만 마우스를 쥐었지.

이런 나에게도 대학의 문을 두드리는 순간이 오더라.

그때 난 나를 그대로 봐야만 했어. 근데 난 그러지 않았지.

아버지의 꿈과 할머니의 바람으로 난 신학대학교를 간거야.

형, 어린 아이가 자라서 학생이 되어서도 오로지 게임에만 몰두하다가

경건한 집단속에서 경건한 척 하며, 새벽기도에서 그래도 이 길이 혹시나 제 길이 아닙니까

하며 울부짖으며 기도하는 심정을 알 수 있겠어?

신학생 아닌 신학생으로 1학년을 보내고 휴학하여 반년을 또 피시방 속에서 살다 

군대를 갔어. 다행히 그나마 군대 속에선 서열과 위계질서를 알게 되더라.

그리고 인내도 몸에 베이게 되더라.

그렇지만 그 당시에 느끼지 못했던 대인관계에 대해선 어쩔 수 없었나봐.

전역을 하고서 무슨 용기 였는진 모르지만 일을 구해봤어.

호텔 벨보이, 새벽신문, 공장...

그러다 다시 난 어이없게 신학교를 복학했어.

하지만 내 길이 아니었나봐, 아니 난 진짜 내 길을 부정했는지 몰라.

결국 신학교 2학년 1학기는 올F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남기고서 휴학을 했지. 

그리고 1년이가고 2년이가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고, 이렇게 살면 안되겠단 마음이 느껴지고,

그리고 지금 난 공무원 준비를 하고 있어 형.

근데 있지 웃긴게 뭐냐면, 난 게임 중독자야.

게임을 하고 있으면 다른 건 잠시 잊을 수 있거든, 단지 그 뿐이야. 근데 형 난 어쩔 수 없나봐.

공무원 준비 공부는 반년 하다 집어치우고 다시 담배냄새 썩어나는 피시방에 앉았다가 

집으로 돌아가 자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지. 분명히 이러면 안되겠단 것도 알아. 

그리고 나중엔 후회할거란 것도 알고.

형, 살고 싶다 정말.

난 이것 뿐이 안되는 쓰레기지만, 쓰레기라도 인간답게 한번 살아보고 싶어.

내일이야.

다시 인간답게 살기로 한 날이 바로 내일이야.

형, 나 잘할 수 있겠지?

남들만큼은 아니어도 나도 가정을 꾸리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살 수있는 거겠지?

형, 정말 진짜 인간답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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