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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바보[중복x100%][bgm]
게시물ID : humorbest_32742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부활구로구청
추천 : 63
조회수 : 10062회
댓글수 : 3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1/01/27 19:38:34
원본글 작성시간 : 2011/01/27 19:22:30
2009년 11월 10일 오후 6시 25분, 독일 하노버 인근 철도에서 한 남자가 달려오던 기차에 자신의 차에 탄 채로 치였다. 그리고 즉사했다. 남자는 심각한 우울증을 앓아 왔다는 점과 일부러 철길에서 차에 탄 채 머무르고 있었다는 점 등 여러 정황을 미루어 그의 죽음은 자살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렇게 생을 마감한 그는 바로 독일 前 국가대표팀 주전 골키퍼 ‘로베르트 엔케(Robert Enke)’였다 왼쪽부터 마누엘 노이어, 레네 아들러, 팀 비제, 티모 힐데브란트 유독 위대한 골키퍼가 많이 배출되는 독일에서 ‘올리버 칸(Oliver Kahn)’, ‘옌스 레만(Jens Lehmann)’의 뒤를 이을 차기 국가대표 No.1의 자리는 엔케를 비롯해 ‘레네 아들러(Rene Adler)’, ‘팀 비제(Tim Wiese)’, ‘마누엘 노이어(Manuel Neuer)’, ‘티모 힐데브란트(Timo Hildebrand)’ 등 어느 팀에 가도 주전으로 활약할 수 있는 쟁쟁한 경쟁자들이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엔케는 그들보다 한 발짝 나가 있던 것으로 평가 받는 훌륭한 골키퍼였다. 그런 그가 목숨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977년 8월 24일, 독일에서 태어난 로베르트 엔케. 어린 시절 지역 유스팀에서 활약하다가 1995년, 독일‘칼 짜이즈 예나’에서 본격적인 축구 인생을 시작한다. 이듬해 분데스리가(독일 1부리그)의 '보루시아 MG'에서 프로 데뷔를 한 엔케는 큰 활약을 펼치기 시작했고 1998년, 포르투갈의 명문 구단 ‘벤피카’ 로 이적해 같은 독일 출신의 감독 ‘유프 하인케스(Josef Heynckes)’의 지도 아래서 3시즌 동안 77경기를 뛰며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려 나갔다. 하지만 엔케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로베르토 보나노(Roberto Bonano)’ 골키퍼와의 주전 경쟁에 밀려 극도로 적은 출전 기회밖에 잡지 못했고 결국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뽐내지 못한 채 2003년에 터키의 ‘페네르바흐체’로 임대를 가게 된다. 하지만 단 한 경기만을 치루고 그 해 겨울 바르셀로나로 임대 복귀한 뒤 바로 스페인 2부 리그팀인 ‘테네리페’로 또 다시 임대를 가지만 끝끝내 기량 회복을 하지 못해 결국 고국인 독일로 돌아온다. 극심한 부진의 끝에 돌아 온 고국, 마음의 안정을 찾아서 일까? 엔케는 분데스리가의 ‘하노버96’과 입단 후 말 그대로 ‘맹활약’을 펼치며 골키퍼로서의 자신의 진가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안정적인 수비 조율, 1대 1 상황에서의 슈퍼 세이브 등을 선보이며 전성기의 기량을 보여주며 지난 2007년, 서른의 나이에 늦깎이로 국가 대표로 차출 되었다(바르셀로나 이적 이전에 차출된 적이 있지만 단 한경기도 출전하지 못했음). 그 후 소속팀과 대표팀을 오가며 큰 활약을 펼쳐 나가며 나이를 먹을수록 기량이 저하되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점점 나이를 먹어가면서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던 로베르트 엔케. 그랬던 그는 왜 자살이란 극단의 선택을 한 것일까? 이유는 바로 그의 사랑하는 딸 ‘라라(Lara)’의 죽음 때문이었다. 엔케가 독일로 돌아와 제 기량을 찾아가던 시기에 부인 테레사와의 사이에서 '라라'가 태어났다. 하지만 라라는 ‘좌심 형성부전 증후군’이라는 선천성 질환을 안고 태어났고 결국 병을 이기지 못하고 2006년 9월 17일, 고작 2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라라의 죽음은 독일 전역에서 큰 이슈가 되었고 많은 이들이 추모했다. 팬들은 딸의 사망으로 엔케가 흔들릴 것이라고 우려했지만 그의 경기력은 라라를 잃은 후에도 변함없었다. 그래서 구단주와 감독은 그는 시련에서 이겨낼 강인한 사람이라며 칭찬했고 팬들은 엔케를 두고 어떤 시련도 이겨내는 강인한 정신력을 가진 선수로 존경했다. 하지만 그는 우울증을 앓았다. 그의 아내 테레사의 말에 따르면, 엔케는 우울증 증세가 언론에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했다고 한다. 선수생명으로서의 문제나 라라를 잃은 후 입양한 8개월 된 딸 ‘레일라’를 다른 사람에게 뺏길 수도 있다는 걱정 등 여러 문제로 엔케는 자신의 우울증에 대해 철저히 숨겨왔다. 수많은 시련을 이겨낸 강인한 선수라는 엔케의 이면에는 시련과 고통을 짊어진 채 버텨내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 또한 존재 하고 있던 것이다. 결국 라라를 잃은 뒤 더욱 극심해진 우울증을 극복하지 못한 엔케는 라라의 묘와 불과 20m 떨어진 철도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라라의 묘에 다음의 단 한 문장의 글귀를 남긴 채. "Lara papa kommt.(라라 아빠가 갈께)" 하지만 고인이 된지 벌써 반년이 지난 엔케는 이번 2010 남아공 월드컵에 독일팀 대표로서 당당히 참가했다. 비록 경기를 뛰진 못했지만 동료들에 의해 유니폼으로나마 벤치 한 자리를 차지한 엔케. 그는 독일팀이 4:0으로 이긴 호주전에서는 동료들과 함께 웃었을 것이며 0:1로 진 세르비아전에서는 함께 안타까워했을 것이다. 어쩌면 “나였으면 막는 건데!”하며 온몸이 근질 거렸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멋진 선방을 다시는 볼 순 없지만 천사가 된 딸 라라를 따라간 엔케는 이제 현역이 아닌 수호천사로 영원히 독일팀과 함께 할 것이다.
http://www.diodeo.com/fernando/001568376 추모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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