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날짜로 정착한 난민입니다.
하루 지나니 한결 적응하는 듯 싶네요.
오유분들께 드릴 건 없고 저의 소소한 라이딩 후기나마 올려 드릴까 합니다.
처음 카메라를 마련했던건 아래 사진속의 아들이 태어나면서였습니다.
신생아실에서 찍은 디카 사진에 만족하지 못해 이리저리 알아보다 DSLR 카메라를 장만하게 되었고 SLR CLUB을 알게되었습니다.
고수들의 강좌와 에세이, 사용기를 보며 사진 기술과 보정 기술을 익혔고 사진 찍는 즐거움을 키웠습니다.
물론 그에 못지않게 자게질도 늘었지만요...
아이가 유치원 다닐 무렵이 되자 뭔가 같이 할 액티브한 취미가 필요하더군요.
아내의 권유로 처음에는 한강에서 자전거를 빌려 탔습니다.
기껏해야 3-4km 왔다갔다 하는게 다였죠.
유딩 체력이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러다 아이가 크며, 제 욕심도 생기며 한 삼년전 CX를 한대 장만했습니다.
자이언트 TCX2 2012 모델 소라급인데 주행성이나 내구성, 승차감 등등 두로두루 제격이더군요.
그때부터 아이를 끌고 간간히 한강을 달렸습니다.
그러다 한강 도장찍기 프로젝트를 가동하게 되었고 서해 아라뱃길에서 강천보까지 다녀왔지요.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습니다.
강천보 이후는 서울쪽과 다르게 교통편도 불편하고 편의시설이나 도로 사정이 좋지 못해 선뜻 다녀올 엄두가 안나더군요.
그러다 올 봄부터 다시 리스타트 합니다.
가능하면 당일치기로, 먼 곳은 1박 2일 코스로 하루 주행거리 80-90km 가량으로 목표를 잡았습니다.
지난주 첫 스테이지를 달렸습니다.
후암동 집을 출발해 지하철로 동서울터미널까지 이동해서 시외버스를 타고 여주로 갑니다.
여주부터 남한강 자전거길을 달려 강천보-비내섬-충주댐-탄금대까지 달렸습니다.
주행거리는 대략 80km가 조금 넘더군요.
간난아기였던 아들은, 유딩이었던 아들은 이제 초딩 4학년의 소년이 되었습니다.
중간에 퍼지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씩씩하게 잘 따라와 주었습니다.
기상청 예보는 구름이 많이 낄 거라 했는데 정작 달리다보니 햇살이 아주 따땃하게 비추어 팔과 다리는 노릇노릇 미디움 웰던으로 아주 잘 익더군요.
슈퍼 컴퓨터도 들여 놓았다더니...
강천보를 지나 남한강변을 달리다 공도를 달립니다.
다행히 차량 통행량이 많지 않아 위험하지는 않았습니다.
당장 조금만 수도권을 벗어나도 많이 한적합니다.
때로는 비포장 도로를, 때로는 논길 옆을 달립니다.
다양한 코스와 오르막 내리막, 구불구불 달리다보니 따분할 새도 없더군요.
아....
어딘지 아시겠어요 ?
강천섬입니다.
재작년 혼자서 찾았을때는 가을이라 낙엽진 모습이 일품이었는데 봄에 찾으니 푸르름이 절정이군요.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자전거 캠핑하기 최적의 장소입니다.
트레일러에 백패킹 장비 싣고 설렁설렁 갔다가 하루 자고 오기 딱이지요.
아들 녀석이 조금 더 크면 저도 자전거 캠핑쪽으로 넘어갈까 합니다.
무엇보다 섬이 참 예뻐요.
남한강 자전거길의 아니 강천보 이후 자전거길의 단점 중 하나는 편의시설간 거리가 너무 멀다는 겁니다.
편의점이나 식당간 거리가 멀다보니 자칫하다가는 끼니를 놓쳐 퍼질 수가 있습니다.
비내섬 휴게소에 다다른 시각이 12시 조금 넘어서였는데 30분 정도 지체되었다면 많이 힘들었을 겁니다.
중간중간에 가게가 더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여기는 수도가 없어요.
더운 여름에 세수를 하거나 손을 씻는게 불가능하지요.
화장실 사용 후 씻을 수도 없구요.
음식 가격이 비싼건 이해되지만 수도시설은 확충되었으면 좋겠더군요.
아마 여기 구간이 도로 상태가 불량할거예요.
포장 이후 관리가 되지 않아 울퉁불퉁 길입니다.
더위를 피해갈 작은 쉼터인데 그늘이 있어 좋았습니다.
외양도 그럴듯한 정자라 운치도 있어 보이구요.
아들에겐 최대의 실망, 저에겐 최고의 안심 포인트입니다.
원래 충주댐 도장찍는 박스는 여기보다 약 2km 위에 충주댐 주차장에 있었죠.
그러다 최근에 공사한다고 여기로 임시로 옮겼습니다.
건축물이나 교량, 댐에 관심이 많은 아들은 충주댐을 보지 못하는 실망감이 역력했지만 제게는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왜냐면 여기부터 원래 있던 곳까지는 2km 정도의 꾸준한, 막판에는 좀 많이 힘든 업힐 구간이거든요.
이미 여기까지 70km이상을 달려온 상태라 체력도 왠만큼 소진된 상태였는데 원래 장소까지 업힐했다면 이녀석 거기서 퍼졌을겁니다.
저요 ? 물론 저도 퍼졌겠죠.
탄금대 가기전 안내도입니다.
표지석 삼아 찍어봤어요.
아들이 타고 있는 자전거는 첼로 부스터24 2012 모델입니다.
최초 발매가 약 45만원 가량하던 나름 고가의 자전거인데 6000번대 알루미늄 프레임에 21단 MTB 기어비, 기계식 디스크 브레이크입니다.
타이어는 24인치 1.75로 교체했는데 샥이 있어 승차감도 좋고 주행성능도 꽤 괜찮습니다.
2년전쯤 1년 지난 재고를 38만원 주고 구매했는데 그 이후 발매된 모델보다 스펙이 더 좋더군요.
휠셋만 바꾸면 더 좋겠는데....
오늘의 목적지 탄금대 도장찍기 박스입니다.
여기까지가 80km 조금 넘는 구간입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스럽고 뿌듯한지 눈빛이 좀 많이 거만스럽군요.
우쭐거릴때 짓는 표정입니다.
아마 한동안 자랑스러워 할 겁니다.
또래들 중에 자기같은 애들이 많지 않다는걸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고생한 찍사도 같이 한장.
어른에겐 어렵지 않은 코스이겠으나 초딩 4학년에겐 분명 쉽지 않은 길이었을 것입니다.
한번 해보고 두번 해봐서 목표 달성의 성취감을 맛보고 익숙해진다면 도전이 두렵지 않고 승리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눈앞의 어려움을 견뎌낼 여유가 생길 것입니다.
저는 선친께서 일찍 돌아가셔서 이런 경험을 쌓을 기회가 없었거든요.
만약 제 아이가 어린 시절부터 비록 작지만 성취감에 대한 경험이 쌓인다면 제 나이쯤 되었을 때 지금의 저보다 한결 도전하고 낙관적인 삶을 살 수 있겠지요.
아빠라는 존재가 아이들에게 특히 아들에게 물려 줄 유산 중의 하나가 이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다음 스테이지는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대구쪽으로 갈지 아니면 방향을 틀어 금강쪽으로 갈지는 생각해 봐야하겠습니다.
어느 쪽이든 1박 2일 이상 코스인데 이화령이 아이에게 부담되기도 하고...
저희의 라이딩은 계속 이어집니다.
오유에도 기회 닿는대로 후기 올리겠습니다.
이곳분들 모두 굿 스피드 !!
벵가 !! 벵가 !! 벵가 !!
P.S 아들 져지와 팬츠, 제 져지는 영국 쇼핑몰 위글에서 구매하였습니다.
개당 2-3만원짜리 저렴이입니다.
퀄리티는 아주 좋지는 않습니다.
그저 아이와 같이 입을 수 있는 팀복이면 족합니다.
아이 있으신 분들께 도움이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