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카구라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다시는 볼 수 없었을 거라 생각했던 손이 보인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시는 느낄 수 없었을 거라 생각했던 바람이 볼에 느껴진다.
살아있다.
죽은 줄 알았던 자신이.
카구라는 걷고 또 걸었다.
예전 자신이 썼던 능력들은 지금 사용되지 않는다.
몸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
그냥 보통의 인간 같은..
나약하고도 한없이 나약한..
그런 몸이다.
자신의 발로 하루종일 걸으면서 통증이 느껴졌다.
그러나 즐겁다.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오랜만이고,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체감해준다.
그러나 그 고통은 살며시 전신에 퍼진다.
단순히 걸으면서 느껴지는 다리의 통증이 아니다.
몸의 이상이 그냥 지나갈 일이 아님을 느끼게 해주는 통증이다.
무리가 가면서도 그녀는 움직였다.
무엇을 위해? style="font-size:>
누군가가 시켜서?
아니다.
이제는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고,
자신이 가고 싶은 데로 갈 수 있다.
그저 발길이 닿는 곳으로 움직일 뿐이다.
그녀는 그토록 만끽하고 싶었던 자유가 지금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유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걷는 건 아니다.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어.'
단 한명.
참으로 그리운 그가.
그러나 그녀는 만나지 못했다.
몸은 예전같지 않았고, 시간은 흘러만 갔다.
사실 요괴였던 자신이 이젠 평범하다못해 쇠약한 몸이 되니 어찌할 방도를 모른다.
그녀는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낯선 마을에 도착했다.
들어가서 사람들과 얘기할까 하다가 이내 멈추었다.
시간 낭비다.
되려 골치아픈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녀를 붙잡았다.
'이젠 어디로 가야할..까.'
그녀는 고민하다가
마을 뒷산으로 올라갔다.
왠지 산에서 불어오는 꽃내음의 향기가 그녀를 불러들인다.
향긋한..
꽃내음.
꽃내음이 이끈 곳으로 발길을 옮기니,
꽃밭이 만개하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흘렀다.
'내가 소멸할 때의 그 곳..'
그 곳과 너무 닮았다.
조금은 슬퍼진다.
자신의 최후가 있었던 그 곳과 너무 닮으니까.
하지만 자신을 마지막으로 지켜본 이와 함께 있던 장소이기도 하다.
'누구지?'
눈물을 훔치고 나니, 꽃밭에서 한 아이가 나비를 쫓으며 뛰어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한 7살은 되었을까?
조그마한 아이가 친구들도 없이 혼자 뛰며 논다.
'얼마만에 보는 사람이지.'
카구라는 아이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러다 흠칫 놀랬다.
'저 아이는.. 미묘하게 그와 닮았구나. 아니, 그를 쏙 빼닮았어.'
자신이 찾고 싶었던 그와, 너무나도 닮았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아이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너 이름이 뭐니?"
아이는 나비를 쫓다가 소리없이 다가간 그녀를 알아채곤 깜짝 놀랬다.
"....누구세요?"
약간의 경계심을 가지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그녀는 허리를 숙이고 무릎에 손을 얹었다.
누구냐는 질문에 뭐라고 설명해야될까, 망설이다가 이내 아이를 보며 미소 지었다.
"응. 그냥 지나가는 누나."
"흐음.. 우리 엄마가 아무하고 말섞지 말라고 했는데."
"그래? 아쉽구나."
그녀는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이내 아이를 바라보았다.
절로 미소가 나왔다. style="font-size:>
왜 그런지는 모른다.
아이가 귀여워서?
참으로 오랜만에 내가 아닌 누군가를 보게 되서?
이유가 뭐가 됐든, 아무것도 중요치 않다.
'자신이 이렇게 마음 놓고 미소 지어본 적은 언제였을까.'
아이의 경계에도 불구하고 생글생글 웃으며 바라보니
이내 그는 다시 나비를 쫓으며 말했다.
"쇼린이라고 해요."
쇼린이라..
"...아까까지만 해도 아무하고 얘기하지 말라 하지 않았니?"
쇼린이라고 소개한 아이는 잠깐 뒤돌아서서 그녀에게 웃어 주었다.
"누나는 이뻐서 괜찮아요."
아이는 누구보다도 해맑게 웃어 준다.
'웃는 모습이 참으로 이쁘네. 그가 웃는다면, 이런 얼굴일까.'
카구라는 이내 자신의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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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웃는 모습이라니. 내 상상도 괴랄해졌네.' style="font-size:>
그래도 상상하는게 싫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늦은 시간인데 집에 가봐야되지 않아? 해도 곧 저물겠는데."
"괜찮아요. 조금 있으면 아빠가 데리러 올 거에요."
"아빠?" style="font-size:>
'설마..' style="font-size:>
그녀의 뇌리에 스치듯 무언가가 생각났다. style="font-si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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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야. 아빠 이름이 뭔지 물어봐도 되겠니?" style="font-size:>
"제 이름은 꼬마가 아닌데요."
"미안, 미안. 쇼린. 이 누나, 한 번만 봐줄 거지?"
"음...셋쇼마루에요! 엄청 강한 사람이죠!"
듣고 싶었다.
그 이름..
셋쇼마루..
쇼린은 신이 나서 얘기했다. style="font-size:>
자신의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의 무용담. style="font-size:>
셋쇼마루와 이누야샤의 활약을 자신의 일인양 말해주었다. style="font-si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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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쇼린 또한 태어나기도 한참 전 일이기에, 직접 본 적은 없다. style="font-size:>
그러나 주위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고, 그는 항상 그 둘을 동경했다. style="font-si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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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작은 아버지가 작은 엄마를 안아들고..!" style="font-si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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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구라는 열과 성을 다해 이야기하는 쇼린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style="font-size:> style="font-size:>
셋쇼마루와 닮은 건 쇼린이 그의 자식이기 때문이다. style="font-size:>
그리고 묘하게 닮은 사람이 하나 더 있다.
'쇼린에서 쇼는 셋쇼마루의 이름에서 따온 건가. 그럼 뒤의 린은.. 말할 것도 없겠군.' style="font-size:>
그녀는 슬픈 웃음을 지었다. style="font-size:>
자신이 죽은지 상당히 많은 시간이 지났다. style="font-size:>
참으로 많은 일이 일어났고,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style="font-size:>
그 사실은 그녀에게 그렇게 달가운 일은 아니다. style="font-size:>
'나락은 죽은건가.' style="font-size:>
카구라에게 중요한 건 나락이 죽은 사실이다.
자신은 태생이 나락의 분신.
어떻게 자신이 다시 부활했는지는 몰라도..
나락이 죽은 지금, 본인도 그리 오래 살지 못할 거란 걸 깨달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점점 갈수록 고통이 심해지고 쇠약해져감을 느낀다.
'나는 왜. 다시 태어난 걸까.'
오늘 하루를..
아니, 지금 몸 상태론 한 시간도 버티기 힘들 거 같다.
다시 한 번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왜 신은 지금 나에게, 이런 짧은 삶의 기회를 주셨는가.
'조용히..'
그때처럼.. 소멸하겠지.
"누나는 타지 사람 같은데.. 어쩌다가 여기까지 온 거에요?"
"응?"
옆에서 쇼린이 자신을 똘망똘망하게 바라본다.
그녀는 쇼린에게 숨김없이 말해주었다.
"참 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어. 원래는 그 사람을 보고 싶어서.. 돌아다녔지."
쇼린이 '그 사람은 만났어요?' 라고 물으려는 찰나, 그녀가 먼저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됐어."
쇼린이 보기에 카구라의 표정은, 어딘가 모르게 좋아보이지 않았다.
처음에 자신을 대할 땐 상당히 밝고 이쁜 누나라고 생각한 쇼린이지만 지금의 그녀는 뭔가 마음 한 켠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보고 싶은 사람이라. 누나에겐 소중한 사람인가보죠?"
"당연하지." style="font-size:>
"소중한 사람이 있다면, 놓지지 말고 꼭 옆에서 지켜주라 했거든요. 우리 아빠가 항상 얘기해줬어요!" style="font-size:>
"그러니? 의외구나. 그는."
카구라가 생각하기에 셋쇼마루가 그런 말을 할 거라는 건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았다.
대체 얼마나 시간이 흘렀기에, 그가 그토록 바뀐 걸까?
턱-
쇼린이 카구라의 손목을 붙잡고 일으켜세운다.
"네! 그러니까 얼른 보고 싶은 사람을 보러 가자구요!"
카구라가 몸이 불편한듯 심각한 표정을 지으니, 쇼린은 카구라의 웃는 얼굴을 보고 싶었다.
"훗."
카구라는 일어서서 짧게 웃는다.
"꼬마야."
쇼린은 또 그녀가 꼬마라 말하는 통에 살짝 기분이 상해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카구라의 표정이 여전히 슬퍼 보여서, 굳이 타박하진 않았다.
"소중한 사람을 옆에서 지켜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카구라는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슬슬 몸에 오는 부담이 점점 걷잡을 수 없도록 커져가는 것이다.
"그사람이 행복한 모습을 그대로 지켜보는 것도 중요하단다."
쇼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통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거기다 지금은.. 시간이 없구나."
하루만 더 빨리 쇼린을 보았다면 혹시나, 그를 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몸은 점점 투명해져갔다.
이윽고 시간이 다됬음을 그녀는 깨달았다.
"누나 왜그래요?"
쇼린은 조금 당황했다.
눈앞의 존재가 점점 투명해져가니 어린아이에겐 받아들이기 힘들지도.
카구라는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 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누나가.. 가야 될 시간인 거 같아.."
"그래요?"
"응."
"내일 다시 볼 수 있을까요?"
"글쎄. 그럴 수 있다면, 참 좋겠네."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꼬마야. 너희 아빠에게 내 얘기 하나만 전해주겠니?"
목이 타들어간다.
그를 쓰다듬는 손도 점차 힘을 잃어가고 실체를 잃어간다.
"무슨 말이요?"
카구라는 있는 힘을 쥐어 짜내 말했다.
"바람은.. 항상.. 네 주변에 있으니까."
그러니까..
"그 바람을.. 잊어주지.. 말아달라고."
카구라가 생을 쥐어짜며 말하는 모습이
쇼린에겐 불안해 보였지만, 거절할 수 없었다.
"알겠어요."
쇼린의 대답에 그녀는 안심했다.
지금 상황에서 그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정말로 전해주고 싶었던 말이니까.
이제는 미련없이 떠날 수 있었다.
그렇지만 하나만 더..
욕심을 부려도 될까?
"염치없지만 누나가 하나만 더 부탁해도 되겠니?"
"뭔데요?"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웃어줄 수 있겠니? 날 처음 보아주었을 때, 그때처럼."
쇼린이 카구라의 진심을 읽어 주었는지
생긋 웃어주었다.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