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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단편소설] 무더위
게시물ID : readers_3281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국백휴
추천 : 2
조회수 : 198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8/12/22 20: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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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워! 더워요!!! 더워!”
 

나른하게 내려앉은 오후의 공기를 흩트리는 소음이 들려왔다. 나는 커피를 입가로 가져가려는 행동을 멈춘 채, 근원지를 바라보았다. 웬 추레한 행색의 남자가 괴성을 지르며 거리를 뛰어다니는 광경이 보였다.
 

머리는 언제 감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서로 엉겨 붙어있었고, 몸과 옷에는 각종 이물질로 물들어 있었다. 실제로 풍기지는 않았지만, 쿰쿰한 냄새가 날 것만 같았다. 호기심이 일어 편한 자세로 고쳐 앉은 뒤, 커피를 내려놓았다.
 

남자는 한눈에 보더라도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것은 나뿐만이 아니라 주위에 있는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지금 남자와 부딪힌 청년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뭐야, ! 무슨 냄새야.”
 

청년은 한껏 인상을 찡그린 채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경멸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오로지 냄새만이 신경을 자극한 것일까? 남자가 불편하다는 이유도, 작고 왜소한 몸집의 소유자라는 이유도 겸해졌을 것이다. 청년은 높은 불쾌지수를 해결하고자 하는 얼굴로 남자에게 다가갔다.
 

, 일어나봐.”
 

남자는 청년과 부딪힘과 동시에 바닥에 넘어지더니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시끄럽던 괴성이 사라져 잠잠해진 거리에는 수많은 유흥의 눈길만이 가득했다. 청년 또한 시선을 느낀 모양이었다. 자기 딴에는 멋있게 보이고 싶다는 생각인지, 남자를 툭툭 건드리며 시동을 걸었다.
 

병X새끼야. 일어나보라고. 부딪혔으면 사과를 해야 할 것 아니야.”
 

청년이 발로 걷어차는 강도가 거세졌지만, 남자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아니, 자세히 살펴보니 입은 움직이고 있었다. 청년도 입 모양을 확인하고 허리를 숙여보았다.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야. , 뭐라고?”
 

남자는 줄곧 한 방향만 바라보고 있었다. 충돌과 함께 떨어트린 청년의 아이스티. 편의점에서 1000원이면 구할 수 있는 얼음 컵에 담겨있는 아이스티였다. 남자의 목소리는 점점 커져 시선들의 위에 안착했다.
 

. . 얼음. 얼음! 얼음은 차갑다! 차갑다! 얼음!!!”
 

남자는 다시 괴성을 지르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 바람에 허리를 숙이며 귀를 기울이고 있던 청년에게 박치기를 가한 꼴이 되었다. 나와 같은 카페 테라스에 있던 손님들 몇몇이 킥킥대며 웃음을 흘렸다. 의도치 않게 일격을 당한 청년은 코를 붙잡고 신음을 토해내었다.
 

씨X! 머저리 같은 새끼가 미쳤나!”
 

청년은 자신의 자존심이 뭉개졌다고 느꼈는지, 코를 잡은 손을 내려놓고 남자를 밀쳐 넘어뜨렸다. 좀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구타가 이어졌다.
 

. 아프다. 아프다!”
아파? 씨X, 아프다고? X 같은 새끼!”
 

남자는 한껏 몸을 수그려 구타를 방어해 보았지만, 청년은 쉽사리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슬슬 주변에서 너무한 거 아니야? 누가 좀 말려 봐! 같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나도 더는 바라볼 수가 없어 관망하던 자세를 풀고 일어나려는 찰나에 구원자가 등장했다.
 

마침 길거리를 지나가던 장한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사내였다. 헬스 트레이너 느낌의 사내는 민소매만 걸치며 자신의 근육을 마구 과시하고 있었다.
 

어이, 그만하지?”
 

사내는 청년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넌 또 뭐.”
 

폭주하던 청년은 뒤를 돌아보며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카리스마 있는 눈빛을 쏘아 보냈지만, 1초 만에 자취를 감추었다. 약자를 무참히 짓밟던 청년은 강자가 나타나자 곧바로 꼬리를 내렸다. 하지만 이대로 말없이 물러날 리가 없었다. 마지막 자존심.
 

재수가 없으려니, !”
 

사내는 자신의 시선을 피하던 청년이 마지막 말과 함께 빠른 걸음으로 사라지는 걸 지켜만 보았다. 마침내 청년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조용히 뒷주머니에서 티슈를 꺼내 청년의 침이 묻은 남자의 팔을 닦아주었다.
 

남자는 여전히 웅크려서 벌벌 떨고만 있었다. 자신을 향한 폭력이 사라진 것도 모른 채 말이다.
 

걸을 수 있겠나?”
 

사내가 겨우겨우 일으켜 세워주고 나서야 남자는 얼굴을 가리던 팔을 내렸다. 숨겨져 있던 얼굴에서는 전혀 의외의 표정이 드러나 있었다.
 

남자의 잇몸에서 흐르는 피 같은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잇몸이 보일 정도로 활짝 지어져 있는 미소가 시선을 빼앗았다. 손에는 청년이 떨어트린 얼음 컵이 함께였다.
 

***
 

오늘도 커피 한잔하기 위해 카페에 나와 있었다. 주문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나오고, 한 모금 들이키는 순간 사색에 빠졌다.
 

어제 이 시각, 이 장소에서 보았던 정체 모를 남자가 생각의 주체였다. 그는 왜 구타를 당하고도 미소를 띤 걸까? 그는 왜 얼음 컵에 집착하는 것일까? 그는 왜 저렇게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녔을까? ?
 

얼음!!! 덥다!!! 얼음이다!”
 

아무래도 근처에 거주하는 듯 보였다. 여전히 지저분한 머리에, 지저분한 옷차림이었다. 모든 행동이 어제와 같았지만, 단 하나의 차이점이 있었다.
 

남자의 품에는 어제 그 청년이 마시던 아이스티와 같은 얼음 컵이 한가득 안겨있었다. 언뜻 세어보아도 열댓 개는 가뿐히 넘어 보였다. 저 왜소한 품으로 많은 얼음 컵을 안은 채, 저런 속도로 달린다는 것은.
 

!”
 

넘어졌다. 남자가 안고 있던 얼음 컵들은 순식간에 주변에 흩뿌려졌다. 남자는 어제와는 달리 벌떡 일어나 회수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소리가 작아 들리진 않았지만, 입 모양으로는 끊임없이 덥다얼음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쯤 되니 궁금증이 몰려왔다. 남자의 사연이, 얼음 컵을 구매한 이유가 말이다. 남자에게 다가가려는 찰나에 그는 또다시 사고를 저지르고 말았다.
 

하필 남자가 넘어진 근처에, 하필 얼음 컵이 날아간 곳에 치마를 입은 2명의 여성이 서 있었다. 여성들은 신기한 눈으로 남자를 쳐다보고 있었고, 발밑으로 날아온 얼음 컵은 보지 못했다.
 

남자에게 치마나, 타인의 시선 따위는 당연히 안중에도 없었다. 남자는 무릎으로 기어가 얼음 컵에 도달했고, 그와 동시에 치마 밑으로 얼굴을 집어넣었다.
 

꺄악!”
 

치마의 주인이 내뱉은 비명이 거리를 뒤덮었다. 남자는 비명에 놀라 고개를 들었고, 동시에 옆에 있던 여성의 손바닥이 남자의 뺨으로 날아갔다. 모든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남자는 따귀에 밀려나 재차 바닥과 마주했다. 기껏 다시 모았던 얼음 컵들은 흩어지고 말았다. 일행은 너무 놀라 따귀를 때린 듯 보였지만, 치마의 주인은 화를 참지 않았다.
 

뭐야! 저질이야! 변태 같은 새끼!”
 

여성은 들고 있던 핸드백으로 남자를 마구 두들기기 시작했다. 어제와는 달리 주변에서는 아무도 말려야 한다며 수군거리지 않았다. 다만, 당연한 현상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뿐이었다.
 

남자는 방어하지 않았다. 아프지 않아서, 잘못을 뉘우쳐서가 아니었다. 두 여성의 하이힐에 얼음이 부서지는 모습, 햇볕에 녹아가는 얼음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음 컵이 발에 치여 날아가면 남자의 눈동자도 함께 따라갔고, 얼음이 녹아 물이 고여버린 웅덩이를 빠르게 훑고 있었다.
 

쉴 새 없이 하늘을 날아다니던 핸드백이 움직임을 멈추고, 여성들은 씩씩거리며 자리를 옮겼다. 순간 주변이 고요해지며 모두의 머리에 하나의 물음이 생겨났다.
 

남자의 다음 행동이 무엇일지 말이다. 나는 도와주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었다. 관심이 집중된 시선을 뚫고 남자에게 다가갈 용기가 없었다. 남자의 정체에 대한 호기심이 끓어올랐지만, 벌어진 상황 앞에 빠르게 식어갔다.
 

남자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초점을 잃은 눈으로 걸음을 옮겼다. 평소와 같은 괴성도, 어제와 같은 미소도 없었다. 살릴 수 없는 상태의 얼음을 한 바퀴 둘러보는 게 그가 한 행동의 전부였다.
 

***
 

한바탕 비가 쏟아지면서 찌는 듯한 더위는 한 발 물러갔다. 모두 빗소리를 즐겼고, 살짝살짝 불어오는 바람을 즐겼다. 하지만 나는 그 재미에 동참하지 못했다. 느긋하게 커피를 즐기지도, 물러간 더위를 느끼지도 못했다.
 

초조한 마음에 씹고 있던 빨대를 뒤늦게 알아채고 내려놓았다. 땀이 한 방울 흘렀다. 시계의 시침이 어제와 그제의 시간보다 2칸은 더 지나간 후였다.
 

커피의 얼음은 진작에 녹아 없어졌고, 빨대를 쓰임새를 다 하지 못하고 무수한 이빨 자국과 함께 널브러졌다. 함께 받았던 휴지는 조각조각 찢어져 있었다. 자책감이 들었다.
 

어제 남자에게 다가갔더라면, 시선의 공포를 뒤로하고 남자에게 손을 내밀었다면! 아무리 둘러보아도 남자가 나타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빠르게 타올랐던 호기심을 매듭짓지 못한 채 마무리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렇게 머그잔이 놓여 있던 쟁반을 들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익숙한 괴성과 익숙지 않은 괴성이 동시에 터져 나온 건 그때였다.
 

얼음!!! 냄새!!! 아프다!!!”
도둑놈아! 아이고, 도둑 잡아라!”
 

멀리서 흐릿하게 다가오는 윤곽이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이 정도의 비는 방해의 축에도 들지 못한다는 듯 맨몸이었다. 먼저 뛰어오는 건 정체 모를 남자였고, 뒤따라오는 건 아주머니였다. 아주머니가 입고 있는 편의점 조끼가 상황을 암시해 주었다.
 

얼음 컵, 섬유 탈취제, 에어 파스. 조화롭지 못한 3가지 물건이 남자를 틀 안에 들어가 있었다. 남자는 빠른 속도로 어느새 길 중앙까지 나와 있던 내 곁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뒤따라오는 아주머니의 걸음을 멈춰 세웠다. 의문스럽게 나를 바라보며 숨을 고르고 있는 아주머니의 눈에는 의구심이 가득했다.
 

***
 

좀 오버했나? 10만 원까지는 안 될 것 같은데.”
 

한결 가벼워진 지갑을 손바닥으로 어루만졌다. 그리고는 점점 더 거세지는 빗줄기가 몸에 닿지 못하도록 우산을 끌어당겼다. 시내 근처에 살 것이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남자는 번화가를 벗어나 작은 다리를 건너, 아파트 단지를 지나도록 20분째 걷고 있었다. 마침내 도착한 곳은 일명 판자촌이라 불리는 동네였다. 거지 동네, 병신 집합소, 구렁텅이. 철없은 학생들이 붙인 갖가지 별명이 지어져 있는 곳이었다.
 

처음 와본 사람이라면 무조건 길을 잃을 것 같은 복잡한 동네였다. 그러나 남자는 좁고, 갈래가 많은 길을 지나며 발걸음의 속도를 높였다. 이윽고 주저앉기 일보 직전의 집으로 향했다.
 

담은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거미줄처럼 금이 퍼져있었다. 쇠창살에 막혀있는 유리로 된 창문은 유리가 반도 붙어있지 않았고, 여기저기 녹슬어있는 현관문은 망치로 두들긴 것처럼 찌그러져 용도 자체에 의심이 들었다.
 

닫혀있지 않은 현관문 틈새로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서럽고, 악에 받친 울음소리였다. 물고 있던 사탕을 빼앗긴 아이처럼 온 힘을 다해 울어댔다. 더는 참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집안으로 향했다.
 

끼이이-
 

녹이 그득한 모습과 어울리게 현관문에서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걸음 내딛기가 무섭게 악취가 코를 찔러왔다. 어디에서도 맡아본 적이 없는 악취였다.
 

쓰레기와는 조금 다른 아주 역겨운 냄새였다. 혼미해져 가는 정신을 겨우 붙잡았다. 다행히 깊숙이 들어가지 않아도 되었다. 울음소리를 따라 왼쪽으로 꺾자마자 보이는 풍경이 눈에 박혔다. 절대 잊을 수 없도록 뇌리에 강렬히 각인되었다.
 

우으으으으으으어어어어!!!!!!!!!!”
 

남자의 울음소리는 어느새 동물의 그것과 같아졌다. 악취와 풍경과 괴음에 닭살이 돋아났다. 휴대전화를 들어 경찰을 부르지도, 남자의 말릴 생각도 없이 멍청하게 서서 바라보았다.
 

언제부터 부패되었는지 가늠도 안 되는 시체가 있었다. 입을 벌린 채 누워있는 한 여성의 시체에 남자는 바삐 손을 놀려댔다. 얼음 컵에 담긴 얼음을 붓고, 섬유 탈취제와 에어 파스를 뿌리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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