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우리 둘 입장이 바뀌어 네가 군인이 되고 내가 고무신이 된다면 넌 절대 내게 기다려달란 부탁을 할 수 없을꺼라고 했었어..
날 믿지 못하느냐고 격분했을 때 너의 한마디 "이렇게 힘든걸 뻔히 알면서 어떻게 부탁을 하겠니........"
목이 메이는게 뭔지 절실히 느낀 날이었다.
나는 늘 웃고 있는 이모티콘이 가득한 편지를 받고 쾌활한 음성만 들어가며 통화를 하고 즐거운 소풍처럼 면회를 오는 너를 만나며 살았는데
너는 늘 고생했을 훈련 얘기만 가득한 편지를 받고 무뚝뚝한 데다가 군기까지 잡혀있는 재미없는 통화를 하고 먼길을 왜 고생하며 왔냐는 내 핀잔에 서운해하며 지냈겠지.
하지만 힘든 훈련 일정을 받아놓고 나면 늘 니 목소리가 그리워서 이병 주제에 객기 부려가며 행정반 앞 전화기에 줄을 섰었고 면회를 오겠다는 네 전화를 받고 나면 여자친구에게 잘 보여야 한다면서 선임들이 다려주는 A급 전투복에 각이 제대로 서지 않을까봐 그 날 오전은 늘 서서 지냈지.
택시에서 내리는 너를 보기라도 하면 군기고 나발이고 손을 높이 흔들어보이고 싶었는데 고작 멀리서 웃기만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