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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소설] 달래 이야기
게시물ID : panic_3282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자칸13
추천 : 2
조회수 : 1522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2/07/08 14:34:27
달래-추정 나이 4세-는 지금 몹시 당황스럽다. 요크셔 테리어와 미니 핀셋의 잡종인 달래는 매우 순하지만 겁도 많다. 그래서 반복되는 일상에서 조금이라도 뭔가 엇나가면 어쩔 줄 모른다. 지금이 바로 그런 때이다.
주인이 계속 피를 흘리고 있기 때문이다. 달래가 늘 깔고 안는 주인의 하얀 드레스 셔츠가 빨갛다. 냄새도 고약하다. 달마다 주인에게서 나는 냄새와 같았지만, 그것보다 훨씬 지독한 양이다. 무엇보다, 주인이 계속 피를 흘리며 움직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개들이란 본디 주인이 무의식 중에 풍기는 호르몬으로 그 심중을 파악한다. 어떤 예민한 개들은 그 호르몬을 마치 자신의 감정인 것처럼 착각하기도 한다. 지금, 달래가 공유하고 있는 주인의 감정은- 공포와, 고통이다.
개들에게는 ‘죽음’이라는 개념이 없다. 다만 달래는, 너무도 주인을 사랑한 나머지 그 고통을 조금이라도 없애주려고 했다. 그래서 달래는 주인의 피를 모조리 핥아 마셔 버렸다. 피만 없어지면 주인의 고통도 사라지리란 경험 상의 믿음이었다. 주인의 피는 주인의 왼쪽 가슴, 젖꼭지 약간 위쪽에서 비스듬히 흘러내리고 있었다. 달래가 그 부위를 핥자, 주인이 몸을 움찔거렸다. 반응이 있다고 생각한 달래는 더욱 열심히 혀를 움직였다. 역하고 비린 내가 코를 찔렀지만 그게 주인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때는 여름이었다. 달래는 더욱 당황했다. 피는 더 이상 흐르지 않았다. 달래의 입 주변 털이 처음에는 주인의 피로 붉은 색 진창이었다가, 나중에 갈색으로 말라 붙을 때까지 시간이 흘렀다. 목이 마르면 화장실로 들어가 욕조 대신 주인이 사용하는 물 바가지 안의 물을 마셨다. 이제 그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 배가 고팠지만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주인의 몸에서 썩은 내가 진동하고 있었다. 달래는 주인의 몸이 더 심하게 아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썩은 냄새가 풀풀 풍기는, 그 부위를 자신이 먹어 치우기로 했다. 냄새가 사라지면 주인이 다시 일어나 웃으며 자기 머리를 쓰다듬어 주리라 생각했다.

밤이 여러 번 지났다.
그 동안 몇 번이나 주인의 물건에서 노래가 들려왔다. 주인은 자주 자신보다 그 물건에 관심을 가진 듯 보였기에 달래는 속으로 질투하곤 했었다. 몇 번은 누군가 집 앞을 찾아오기도 했다. 발소리에 달래는 반가워하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와 주었으면 했다. 그러면 자신이 한 일을 자랑스레 보여주리라. 주인은 더 이상 피를 흘리지도 않고 썩은 냄새도 나지 않는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며 자신을 칭찬해 주길 바랐다. 하지만 문 앞의 방문자는 문을 몇 번 두드리더니 다시 계단을 내려갔다. 그때마다 달래는 실망하여 다시 주인 곁으로 돌아왔다. 달래는 주인 옆에 바짝 몸을 붙이고 잠이 들었다. 크게 숨을 몰아 쉬자 금세 잠이 쏟아졌다. 

달래는 눈을 떴다. 계단으로 많은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이번에는 수가 많았다. 달래는 현관 앞에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이번에는 정말로 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았다.
문이 열리고, 달래가 예상했던 것처럼 꽤 많은 수의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처음 보는 이들이었다. 한 사람, 가끔 집을 찾아오던 남자가 있었다. 하지만 문 앞에 잠깐 서있다가 돌아가던 남자로, 주인이 그를 집안에 들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쨌건 기억에 있는 냄새이기에, 달래는 있는 힘껏 그를 향해 꼬리를 흔들었다.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이 이상했다. 처음 보는 남자들은 허락 없이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그들의 속에 있는 것을 게워냈다.
잠시 후, 집 안이 시끄러워졌다. 더 많은 사람들이 집으로 찾아왔다. 남자 두 명이 주인을 데려갔다. 달래는 실망했다. 주인이 더 이상 피를 흘리지 않는 것도, 냄새가 나지 않는 것도 다 자기가 그렇게 한 것인데. 누구 하나 칭찬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구도 자기에게 잘했다며 간식을 주지 않았다. 대신 철창에 가뒀다. 달래는 포근한 잠자리가 있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철창은 너무 차가웠다.
그때였다.
냄새가 났다. 또 다른 냄새.
누군가 집으로 들어온 순간, 그 날의 기억이 달래의 신경 마디마디 퍼졌다. 
냄새다.
주인과 다툰 사람의 냄새.
달래는 순하디 순한 성격으로, 도통 짖지 않는 개였다. 하지만 지금 순간만큼은, 달래는 온 몸으로 자신의 분노를 표현했다.
“미친 개새끼. 이젠 주인도 몰라 봐?”
달래는 쉬지 않고 짖었다. 철창이 흔들거렸다. 보다 못한 누군가 철창 째 달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오랜만에 맞는 바람. 바깥 공기. 거기에 상관없이, 달래는 계속해서 짖었다. 저 사람이에요, 저 사람이에요, 저 사람이에요.

주사바늘이 다가온다. 달래는 눈을 크게 껌뻑였다.
개들에게는 죽음이란 개념이 없다. 하지만 바늘이 피부를 뚫고 들어오고, 그리고 뭔가 차고도 시린 것이 혈관을 밀고 들어오는 동안, 달래는 주인이 자신을 반겨주는 광경을 떠올렸다.
이리 오렴, 어서 와 달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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