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 소리를 들었던가?
한 시간 동안 방 안에 맑은 소리를 울리게 했던 내 스마트폰 알람 소리가
진짜 한 시간 동안 울렸던 것인지 아니면 내가 마지막 2초정도의 소리만 들은 것인지 기억이 없다.
전날 밤의 게임은 그저 몸을 피곤하게 할 뿐이었고, 남은 기억이라곤 헤드셋 너머로 들려왔던
친구 부인의 닥달하는 잔소리와 아이가 새벽 1시 반에 깨서 응애했던 소리 뿐이다.
TV를 켜 놓고 잔 것인지 우측 상단에는 '외부입력' 이라는 녹색 글자만 붕 떠 있다.
케이블 TV 셋탑박스의 자체 절약기능으로 인해 저절로 꺼져버린 탓이다.
아버지는 늦잠을 잤느니 아침을 왜 안먹느냐 하시느니 맨날 지각을 한다느니 주저리 주저리 잔소리를 늘어놓으시곤
어느샌가 일터로 나가셨는지 보이지 않으셨다. 그 잔소리가 머릿속에 터빈 돌아가는 잡음처럼 계속 맴돌았고
찬물을 마셔야만 그제서야 멈춰버렸다.
육중한 기계가 세발자전거의 크락션을 울리며 플랫폼에 쳐들어왔다. 엄청난 풍압과 바람은 앞머리를 흐트려뜨렸는데
그럴 때 마다 내가 만화주인공 케릭터가 된 것 같아 지나가는 차창에 내 웃는 모습이 언뜻 언뜻 스쳐지나가는 걸 보게 된다.
이런... 길로틴의 날 같이 날카로운 쇠철문이 내 옷 앞자락을 물어버리곤 멀리 멀리 길을 떠나는 것이다.
내 소중한 스마트폰이 주머니에 들어있는데, 이게 걱정인지 내 옷이 걱정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둥둥... 둥둥... 덜컹 덜커덩' 아침마다 듣게되는 육중한 쇳소리는 800명? 아니 1000명 즈음의 몸무게를 감당하며
열심히 열심히 다음 정거장을 향한다.
누구라도 여기서 방귀라도 낄 참이면 참아야 할 것인데 오늘따라 방귀 냄새보다는 향수 냄새가 진동을 한다.
향수 냄새도 지독하면 방귀 냄새와 별반 다르지 않다. 프랑스에서나 볼 법한 희한한 펌을 한 어느 젊은 아낙의 뒷덜미에서
풍겨오는 지저분한 향수 냄새가 또 다시 월요일 아침의 어지러움과 혼돈을 배가시켜준다.
경보 경주에 참여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
난 다리가 기니까 궂이 경보를 할 필요 없이 호랑이 발걸음으로 성큼성큼 쿵 쿵 걸어간다.
사람들 맨 앞에 서게되어 왼편으로 오른편으로 좌향좌 우향우를 번갈아가며 다음 환승전철로 이동한다.
언뜻언뜻 지나가는 미녀들의 굴곡진 몸매와 혹은 아리따운 얼굴을 보다보면 강남에 일터를 잡은게 왠지
뿌듯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또 갈망을 하게되기도 하고 한숨이 나오기도 하고 내가 오유인인걸 알고있으니
이것 또한 슬픈 일이기도 하고 안생겨요 이런 제길 그 문구가 그런 아리따운 아낙들을 보고있노라면 떠오른다.
맨 앞줄에 서게되면 1등을 하거나 꼴등을 하게 되는데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막 출발하려는 전철에 몸을 실을 수 있는 특권이 부여된다는 뜻이다. 뭐 나도 그런 특권을 부여받은 셈이지.
이제 떠나려는 전철, 막 깨무려는 길로틴의 양 문에 잘리지 않도록 몸을 바짝 밀어부쳤는데
경악할 만한 건 내가 밀치지도 않았는데 왼편 여성이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난 아가씨를 밀친게 아니라 옆의 아주머니를 밀었다고. 사람들이 오해하지 않을까? 하지만 사람들 표정은 왠지 회색이다
온갖 회색
월요일 전철안은 마치 빼곡히 들어선 빼빼로가 생각나기에 충분했다. 그냥 그랬다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