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석신부 나눔 다큐,감동 넘어 각자의 실천으로 가야 내전에 찌든 아프리카 수단의 최빈곤 지역 톤즈에서 8년간 헌신적인 삶을 살다 암으로 2010년 1월 ,48세에 너무 아깝게 세상을 뒤로한 고 이태석 신부(의사). 그가 설 연휴인 4일밤 한국을 울렸다. 지금까지 극장에서 40만명의 관객을 불러내 눈물을 흘리게했던 영화 '울지마 톤즈'가 4일밤 KBS 1TV에서 재방되면서 트위터와 미투데이 등 인터넷이 그의 삶에 대한 감동 글 수만개로 5일까지 가득했다. 사람이 사람에게 꽃이 될 수 있고,겸손한 헌신이 고통받는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행복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줘, 남성들도 눈물로 범벅되게 만드는 영화였다. 그는 의사이자 신부,음악인,선생님으로서 그가 가진 재능의 마지막 한톨까지 그들에게 쏟아부었다.'졸리 신부'는 그곳 주민들의 아버지이자 주민들이 처음 본 하느님이었다. 환자를 치료하고 병원을 짓고,공동체를 건설하고,학교를 짓고,수단 사상 첫 35인조 브라스밴드까지 운영한 그의 열정에 가슴이 저린다.이로 인해 변한 그곳 사람들의 삶이 생생하게 전달됐다. 특히 한센병 환자들에 대한 애정이 깊어 뭉그러진 그들의 발을 위해 처음으로 개인 맞춤형 가죽 샌들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오히려 그들에게 많은 것을 배운다며 감사해했다.본인도 행복했을 것이다.'이태석 리더십 신드롬'이다. 세상을 깨우고,우리의 뒤통수를 멍하게 만들고,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게했다. 여기서 이 다큐를 만든 KBS 구수환 PD의 말을 들어보자. "영화 <울지마 톤즈>는 강력한 고발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이 영화를 통해 이기심 가득한 우리의 삶이 얼마나 부끄러운지를 말하고 싶었고, 사회 지도층 인사들에게 사랑과 헌신의 진정한 의미를 보여주고 싶었다. 이태석 신부가 세상에 알려진 후 많은 사람이 그를 이야기한다. 교육계, 의료계, 정부 기관에서도 이 신부의 정신을 받들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중요한 것은 각자가 이 신부의 나눔 정신을 실천해나가는 것이다" 맞습니다.감동에 그치지 말고 내 생활속에서 실천하면 이 신부는 우리 곁에 영원히 있는 것입니다.이것이 그가 원했던 것이겠지요. 다행히 이태석 신부와 뜻을 함께해온 '수단어린이장학회'( http://durl.kr/5o82y)에 후원자가 몰리고 각계에서 '뜻을 잇자'는 움직임이 퍼지고 있다고 합니다. 용맹해 눈물을 수치로 여기는 딩카족들이 그의 죽음 앞에 눈물을 쏟고있습니다. "아버지 졸리 신부가 돌아가신 뒤 우리의 삶은 눈물"이라는 한 맹인 여성의 눈물을 닦아주어야합니다. ------------------------------------------------------------------------------------------ 다음은 트위터 등에 시민들이 올려 모두를 따뜻하게 해준, 울림이 있는 글들입니다.트위터가 세상을 살맛나게 해주는데 기여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합니다. ------------------------------------------------------------------------------------------ "그저 그들 곁에 함께 있어주는 것이 제일 필요했다는 얘기가 마음에 남습니다. 한 사람의 사랑과 헌신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마치 동화같은 사실에 가슴이 뜁니다" "이태석신부 말씀 '예수님이라면 이곳에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까, 성당을 먼저 지으셨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학교를 먼저 지었을 것 같다.'외형과 권세만 추구하는 우리의 교회들 맹성해야한다” "이태석 신부의 활동을 돕던 카페가 있네요. http://durl.kr/5o82y 그리고 수단 아이들을 후원해 주실분들은 02-591-6210 으로 문의하시면 될거 같습니다. 월 5천원이면 한 아이의 교육비,급식비가 된다고 하네요" (수없이 리트윗됨) "<울지마 톤즈>는 어떤 픽션도 주지 못할 감동적인 다큐입니다. 아이들에게 꼭 보여주세요. 아이들 일생동안 기억에 남을 겁니다“(시골의사 박경철) "이태석 신부가 아름다운 이유는 선행, 자선을 넘어 빈곤의 삶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학교를 세우고, 함께 노래를 부르고, 인간다운 삶에 대한 열망을 키워냈던 것. 삶의 의지를 일궈냈던 것. 그 아름다움에 난 죽도록 울었었다. " "이태석 신부야말로 진정한 엄친아셨네.그 많은 재능 한 톨도 남김 없이 남을 위해 쓰고 가셨다.내 알량한 재능이나마 남을 위해 사용한 적이 있었는지 아프게 돌아보게 된다." "행복은 소유에 있지 않고 나눔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줌. 정말 아름다운 삶을 살다 가신 이태석 신부님을 존경합니다." "고 이태석 신부가 마흔살 사내의 가슴을 울리다." "삶을 가치있게 사는게 무엇인가 반성하게 되네요 애휴 이태석 신부님이 정말 많은 씨를 뿌리셨네요 대단하셨습다" "울지마 톤즈의 엔딩 .. 가장 낮은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 나에게 베푸는 것이라는.. 예수의 말씀과 이태석 신부의 웃음이 너무 여운이 크네요.. 감사하다는 말 밖에 .. " "이태석 신부님!! 나도 그거 보고 우리 가족들 다 눈이 퉁퉁.." "못본 분들 인터넷에서라도 꼭 보세요.인생이 바뀝니다" -------------------------------------------------------------------------------------- 다음은 멋쟁이 구수환 PD가 지난해 열린 서울 TEDX 컨퍼런스에서 발표한 내용을 담은 영상입니다.영화 장면도 압축되어 있습니다. --------------------------------------------------------------------- 울지마 톤즈 영화 홈페이지 : "수단의 슈바이처 이태석 신부, 우리는 그를 사랑이라 부른다." www.dontcryformesudan.com --------------------------------------------- 다음은 시사저널 정락인 기자가 정리한 이신부의 음악적 재능에 대한 글입니다. 동요에서 성가까지…이태석 신부가 만든 노래들 이태석 신부는 음악적 재능을 타고났다. 초등학생 시절 피아노 소리에 이끌린 그는 집안 형편상 피아노를 배울 수 없자 대신 성당에서 풍금을 배웠다. 두어 달 만에 그는 미사 반주를 할 수 있는 실력이 되었다. 이때부터 작곡도 시작했다. 초등학생 때는 <해> <별> 등 쉬운 동요를 만들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여러 경연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부산시가 주최한 대회에서 성악 부문 장려상을 받는가 하면, 작곡 부문에서는 대상을 받았다. 당시 작곡한 곡으로는 <아리랑 열두 고개>와 같은 서정적인 곡과 함께 <묵상>이라는 청소년 성가가 있다. <묵상>은 이후 그의 삶을 예언이라도 한 듯이 보인다. ‘난 사랑하리라, 내 모든 것 바쳐’라는 노래 가사처럼 그는 의사이면서 신부가 된 후 모든 것을 바치며 사랑의 삶을 살았다.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이들, 총부리 앞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 가는 이들, 왜 당신은 보고만 있냐고 눈물을 흘리면서 주께 물었네’라는 대목은 그가 아프리카 오지로 가게 될 것을 미리 결정이나 한 것처럼 보인다. 의대에 다닐 때에도, 신부가 된 이후에도 그는 늘 음악과 함께했다. 수단이 20년 동안 지속되었던 내전을 종식하고 2005년 평화협정을 맺었다는 소식에 감격해 <슈쿠란 바바(하느님 감사합니다)>라는 곡을 짓기도 했다. ‘평화’의 가장 큰 장애물이었던 ‘전쟁’이 일시적으로나마 멈췄다는 소식에 감격해 지은 노래이다. ------------------------------------------------------------- 이태석 신부의 책 "친구가 되어주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