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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받지 못하는 20대에게
게시물ID : sisa_33051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이태연
추천 : 1
조회수 : 21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12/21 02:46:18

20대는 묘하다. 어렵다. 

먼저 산 이들의 경험을 존중하고 그들의 말을 따라야 한다고 배웠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어른의 말에 순종하라는 뜻이었다. 
어른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는 것은 버릇없는 말대꾸라고 화살이 되어 돌아왔다. 
나이가 주는 권위, 어려서부터 권위주의 앞에서 위축되고 패배감을 맛봐야 했다. 

머리에 피도 마르기 전에 무한경쟁체제에 던져져 "우리"보다는 "나 하나만"이 중요하다고 몸으로 깨달았다. 
교과서에서는 모두가 행복하고 이웃을 위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이 사회는 남을 짓밟지 않으면 내가 짓밟히도록 이미 짜여져 있었다. 모순이었다. 
군대에선 상명하복이 절대진리지만 이상하게도 군대가 아닌 회사에서도 그 원칙이 통용되고 있었다. 

평생 자기 자신을 찾아도 시간이 모자랄 텐데, 자아를 숨기고 복종해야 무한경쟁사화에서 살아남음을 체득한다. 
회사를 위해, 사회와 국가를 위해 나의 여가와 행복은 얼마든지 무시되도 좋은 세상이다. 
윗사람에의 순종, 먹고 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이기주의, 권위주의, 무한경쟁, 절대복종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을 거다. 답답했을 것이다. 
그런데 살다 보니 그렇게 부당하다 느꼈던 일이 당연하단 생각이 들게 된다. 
스스로 생각하고 비판하고 비판받고 발언하는 것보다 수동적으로 따르는 것이 훨씬 쉬우니 점차 그것에 익숙해진다. 
그렇게 나라가 원하는 노동력으로 길들여지고 안주한다. 사고하는 인간이 아닌 그저 효율과 원칙에 순응하는 하나의 부품으로. 



같은 20대로서, 난 우리가 딱하다. 
왜 우리는 배워온 것과 정반대인 세상에서 소모되어야 하는 것일까. 
역사의 주인공은 나여야 함이 마땅한데, 이 세상 그 어디에서도 나는 없다. 

결국 해답은 스스로에게 있었다. 
어쩔 수 없다는 무기력함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사회에서 변화와 희망에 대한 싹을 잘라냈다고 해서 내 안에 다시 싹이 트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나는 행동할 수 있고 우리는 변화시킬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 아직 많은 20대들의 안에 작게나마 싹이 남아있음을 발견했다. 
난 이번 대선이 실패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시작이다. 

우리는 변화의 바람을 불러올 수 있다. 
언제나 변화의 중심엔 20대가 있었다. 
지금 당장은 또다시 무력감이 스스로를 좀먹고 있을지라도 움직인다면 변화할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 

수동적인 삶보다는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삶에서의 행복이 분명 더 크고 아름다울 것이다. 
한 표씩 던질 때 품었던 저마다의 희망, 그것은 어쩌면 희열과 같을 것이다. 
희망을 놓지 않는 한 우리는 더욱 행복해질 수 있다. 

이제는 다들 자신을 찾고 스스로 일어섰으면 한다. 
권위가 아닌 존중으로 대하는 어른들의 말을 새겨들으며 자신을 키우고
감히 어린 녀석이, 하며 혀를 차던 어른들에게 스스로 일어날 수 있음을 당당하게 보여야 한다. 
사회의 변화 그 중심엔 언제나 자기 자신이 있음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말과 행동이 다른 교육과 현실, 그 안에서 좌절하고 고민하고 그래도 꿈꿨던 많은 젊은이들에게
아직은 꿈을 접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우리가 꿈을 펼칠 시간은 아직 무궁무진하니까. 
포기하지 않는 한 변화의 끈은 언제나 우리 손에 있다. 



인형으로 살아가야 편한 세상 속에서 꿈을 잃지 않아줘서 너무 고마워요. 수고하셨어요. 조금 더 힘내봐요.
그리고 나도 수고했어. 기특해. 잘 한 거야.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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