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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입장을 고수했던 사람으로서 처음으로 글을 써봅니다.
게시물ID : star_33116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아니쥬
추천 : 12
조회수 : 1201회
댓글수 : 122개
등록시간 : 2015/11/10 11:55:48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 일명 '아이유-제제' 사건(?)에서 초반부터 비판적 입장을 고수했던 사람으로서 비판적 입장의 사람들을 전부 싸잡아 악플러로 매도하는 사람들에게 저 또한 의견을 나타내고 싶어서 처음으로 글을 써봅니다. (댓글은 몇 번 달았지만요) 제가 블로그에 썼던 글을 조금 수정하여 써봅니다.
 
 일단 저는 소소하게 문학작품과 이슈를 엮어서 글을 쓰는 것을 상당히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저는 아이유의 몇몇의 노래를 즐겨 듣고, 그녀가 똘똘하다고 하는 평에 대해서는 방송에 나오는 그녀가 본인의 이미지를 아주 잘 알고 있고 잘 써먹을 줄 아는구나~ 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소 공감하는 편입니다. 딱히 팬은 아니지만 악감정이 있는 정도도 아니라는 것이죠.
 
 이번 앨범에 관해서도 처음에는 별 다른 생각이 없었지만 문학작품을 연관지어 곡을 만들었다는 소리에 흥미가 일었습니다. 앞서 말했듯 저 또한 문학과 이슈를 연결해 글을 쓰는 사람이니 남들과 다른 삶을 겪어온 스물 셋의 작은 여가수가 바라본 작품들의 세계와 그것의 재구성은 꽤 궁금했습니다. 제가 가장 기대했던 곡은 '무릎'이었습니다. 저의 인생의 책 한권이 『데미안』이기 때문이지요. 처음 무릎의 가사를 보고 솔직히 든 생각은 '멜로디는 좋은데 가사는 크게 깊이 있진 않구나.' 였습니다. 데미안이 잘 느껴지진 않더군요. 기대를 많이 한 탓이었겠지요. 특히 '제제'를 듣고서는 아이유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깊이 있게 읽긴 한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아이유 양이 그렇게 생각했다면 생각한 것이겠지만 솔직히 공감이 가지 않았습니다.  
 
 불안하고 어두웠던 10대 시절에 저는 소설 『테스』를 읽고 나름대로 현대적으로 재구성하여 시를 썼습니다. 그 내용이 무엇인가하면 한 여성이 어린 나이에 남자친구와의 불장난으로 아이를 갖고, 낙태를 하고 (작품에서는 아이의 죽음으로 나타납니다). 그로 인해 밑바닥 삶을 살다가 강간을 당하고 결국 목을 매달아 죽음에 이르는 시를 썼습니다. 다들 공감하시나요? 테스의 예술적이고 의미있는 해석과 재창조로는 볼 수 없는 내용이지요. 작가의 의도를 완벽히 무시하였고, 성적인 코드를 집어 넣으면 특별하게 느껴질 것 같았떤 오만으로 쓴, 모든 이에게 공감을 얻지 못하는 명백한 오독과 오해석의 재창조였습니다. 제게도 해석과 표현의 자유는 있었지만 매우 불안하고 어두운 나만의 세계에서 받아들여 재구성한, 굉장히 조악하고 질이 낮은 해석과 표현이었던 것이지요.
 
제가 생각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아이유양은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를 어떤 식으로든 해석할 자유가 있고 어떤 식으로든 표현할 자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아이유의 제제는 이번에 대중들에게 곰감을 얻지 못하고 결국 설득에 실패한 것 뿐입니다. (물론 누군가는 그녀의 제제에 공감하지만 바스콘셀로스의 제제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는 소리입니다.) 하지만 단지 그 뿐인거지요. 확실히 지금 음원을 폐기해야 하네 뭐하네, 아이유가 사과를 해야 하네 어쩠네 (명백한 오해석, 오독이라고 쳐도 왜 사과를 해야 하는지) 하는 의견들은 솔직히 너무 나아갔다고 봅니다. 그리고 또한 옹호하는 입장에서도 그녀의 제제를 이해 못하는 사람들을 무지한 대중으로 몰아가며 마치 몰라서 그런다는 듯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라는 둥 가르치려하는 태도는 잘못된 태도라고 생각하고요. 솔직히 그러한 태도가 악플러와 다를게 무엇인지요.     
 
저는 예술 작품의 해석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인정합니다. 단 하나의 해석만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작가의 본래 의도가 고려되지 않은 해석과 재창조가 대중들에게 어떤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설득을 시킬 수 있는지 고려해야 하는 문제는 오롯이 그 자신에게 남습니다. 게다가 순수 예술이 아닌 대중 예술이라면 더욱 당연하지요.
 
제가 문학을 사랑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소설은 자신이 만들어온 나만의 세계를 통해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결국 여럿의 독자가 읽은 하나의 작품은 독자마다 다 다른 의미를 갖게 됩니다. 아이유 양은 평범한 사람들이 응당 겪어왔던 경험을 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자신을 어린 아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웬만한 사회보다 훨씬 더 더러운 사회를 겪고 그 자리에서 정상에 오른 그녀는 자신을 때가 탄 어른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지요. 그 혼란스러움을 투영한 것이 아이유의 제제와 이번 스물 셋 앨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에게 제제는 어린 나이에 삶의 고통을 받아들여야 했던 가엾은 제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만일 제가 글을 썼다면 '이 세상의 모든 제제를 위하여'라고 썼을 것이 분명하니까요. 그렇게 각자의 의미는 다른 것이지요.
 
아이유 양의 해석과 재창조를 인정합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저는 그녀의 제제에 공감할 수 없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음악을 선택하지 않을 권리가 있을지언정 그녀를 비난할 권리는 제겐 없지요. 그건 누구나 다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는 그녀가 많은 경험과 성찰을 통해 그녀만의 철학을 쌓고 그녀 자신만의 세계를 커다랗고 멋지게 구축해 나가길 바랍니다.
지금의 저의 세계에서 테스는 더이상 '처녀성이 더럽혀진 정조를 지키지 못한 여성'이 아닙니다. '사회적, 성적 억압을 극복하려 했던 주체적 여성'입니다. 저는 아이유 양이 언젠가 다시 한 번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를 읽기를 바랍니다. 대중이 공감하고 설득할 수 있는 탄탄한 철학을 바탕으로 다른 제제를 만들어주길 바랍니다. 거대한 연예계에서 교묘히 만들어진 꼭두각시가 아닌, 진짜 아티스트로 인정받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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