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천구청 역에서 내려 바로 앞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6617번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전 지하철에서 내린 사람들과 이번 지하철에서 내린 사람들의 대부분이 타기 때문에
버스 안은 사람들로 꽉꽉 찼습니다. 저는 뒷문쪽에서 멜론 1월 셋째 주 100위 노래들 중 삭제할 노래들을 걸러내는 작업을 하며(아이팟에서 별1개를 줍니다) 봉을 잡고 서 있었습니다.
제 11시 방향에는 한 여고생으로 보이는 소녀가 있었습니다. (대학생일수도 있었습니다만 어려보였습니다.)
여고생으로 보이는 소녀 뒤에 한 아저씨가 있었는데 약간 술에 취한건지 피곤한건지 몸이 약간 축 쳐져있었습니다. 네, 봉을 잡고 있는 손에 체중을 실은 듯한 포즈로 있었고
앞에 있는 여고생으로 보이는 (혹은 동안의 대학생) 소녀가 핸드폰으로 뭘 하고 있는지 보고 있었습니다.
소녀는 열심히 문자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저씨는 어깨너머로 그 내용을 보고 있었구요. 아저씨는 정장차림이 아니라 그냥 허슬렁 하게 입고 나온 평범한 아저씨 복장으로 '아저씨다!' 라고 단박에 정의내릴 수 있는 복장이였습니다. 소녀는 얼굴은 고등학생인데 청바지에 긴팔을 입은 약간 대학생 같이 입은 (대학생일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소녀였습니다.
음악을 들으면서 눈에 채이는 그냥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평범한 귀가길.
양천구청 역에서 타는 6617번 버스는 종점까지 3정거장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미 양천구청 역이 거의
'어?' 싶었는데 '뭐지?' 뭔가 위화감만 느꼈을 뿐 순간 상황파악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소녀는 깜짝 놀라며 몸을 돌렸고 무척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리곤 무척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미친 새...'
전 아이팟으로 음악을 듣고 있었지만 사람들의 입술을 읽고 내용을 파악하는 훈련을 해왔기 때문에 (전 BMW족인데 지하철을 많이 타다보면 시간이 오래 걸리면 심심합니다. 처음에는 책을 보려다가 자리가 안 나면 그것도 여의치 않아 이제는 음악을 듣는 편인데. 그것마저 심심해져 지하철을 타며 오고가는 시간동안 재밌는 훈련을 해보자고 한게 그 계기가 됐습니다.)
소녀가 기분 나빠하며 흘린 소리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덩달아 저도 기분이 나빠졌습니다.
어제는 카라가 1위를 해서 오유가 지금 난리났겠구나 싶어 빨리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기분 좋게 돌아가는 길이였는데 이렇게 하루를 마감하며 치한짓을 목격하게 되다니.
그 아저씨, 왠지 아저씨가 추행한 소녀만한 딸이 있을법한데도 추행을 하다니.
마침 지하철에서 본 공익광고가 생각났습니다. 성폭력에 관한 광고였는데 마지막 멘트가 인상적이였습니 다. '모두가 내 자식입니다.'
모두가 내 자식입니다. 아저씨
아저씨에겐 그저 스쳐지나간 성욕의 대상이였습니까? 집에 가면 그런 나이의 딸이 '어서오세요' 라고 하지는 않나요? 딸이 있다고 생각하면 도저히 그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저씨 덕분에 그 소녀도 하루의 마지막을 기분 나쁘게 마감했고 저도 무척 기분이 상했습니다.
그러지 마세요. 아저씨 자식에게는 그러지 않으시잖아요 모두가 내 자식이라고 생각하고 소중히 대해주세요.
제 동생도 여고생이라 이런 일을 당하면 얼마나 당황해 하고 기분이 나쁠까 또 생각해 보니 더욱 착잡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