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도 너무 몰라...
1. 정전협정에서 해상경계선을 정하지 않았다?
남한엔 이북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가 없어요...
정전협정문 마저도 중요한 부분 빼버리고 왜곡해서 기재했거든(어용교수들이)... 이걸 잡아낸 이가 강정구 교수....
그래서 지금은 인터넷으로 뒤져도 협정문 제대로 나오는데...
변이나 중궈니나 그거 한 번 못 본 모양....
해상경계선은 다음과 같이 정해집니다.(좀 황당해요)
ㄱ. 50년 6월 24일의 해면과 해안도서를 각자의 관할수역으로 한다. (38선이란 얘기지)
(그럼 동해안은 주문진에서 속초방향으로 가다보면 있는 38선 휴게소가 경계가 돼요. 속초에는 어항이 없고 주문진에 대규모 어향이 있는 이유가 이것임)
ㄴ. 서해안은 "황해도와 경기도의 경계선을 기준으로 북쪽의 도서는 중공군과 북한군의 관할하에 둔다. 단 서해5도는 유엔군의 관할하에 둔다. 이 경계선 남쪽의 도서는 유엔군의 관할하에 둔다. (정전협정문에 지도까지 그렸어요)
그래서 북한은 동해안은 38선 위쪽을 지덜꺼라고, 서해안은 도 경계선 위쪽을 지덜꺼라고 하는 것...
그런데 한 달 뒤에 클라크가 NLL을 그었어요. 그래서 남한 어부들의 비극이 발생하죠...
2. 남한이 NLL을 실효적으로 지배해왔다?
기가 막혀... 굳이 따지자면 '실제 행동'으로 지배해온 건 북한이지...
얼마나 많은 남한 어선들이 거기서 고기잡다가 북으로 끌려갔나?
아찌가 어렸을 때 어선 납북됐다는 기사가 80년대 대학에서 데모했다는 기사보다 더 많이 떴어...
남북어부 3825명,
55년부터 시작돼 65년~73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일어났고 97년에도 있었지...
그땐 북이 남보다 최대 3배 잘 살았고, 지금처럼 왕조체제도 아니었고, 갑산파가 관료조직을 지배하던 시기... 소위 사회주의 모범국 소릴 듣던 때라... 체제 자신감이 있던 때지.(못본 애들 KBS에서 만든 다큐 김정일 봐봐. 그런 얘기 나와.)
NLL 한참 남쪽에서 고기잡이 그물 끌어올리고 있는데, 구경하듯 다가온 배에서 여성이 화알짝 웃으며 말하는 거지.
"남조선 동포 여러분, 조국의 품으로 귀순한 것을 환영합니다."
그리고 데려가 대남공작 귀순자 프로그램을 돌렸던 거지...
5~6개월간 관광시키고 사상교육하고... 남으로 가겠다면 돌려보내줬지.
못돌아온 이들은 통일부 통계로 470명... 탈북어부 얘기로는 더 많다고 하대. 당연하겠지... 북에 남더라도 남한 부모 걱정해서 감춰달라 신신당부했겠지... 대부분 10대이더만... 13살, 14살... 초등학교 어린아이들이 돈 벌려고 험한 배탔다가 .그리된 것이지.. 아, 눈물 나.
72년 정일이가 친위구테타로 갑산파 숙청하고 왕조체제 만든 후 지금까지 고생했겠지... 불쌍해라...
남으로 돌아온 어부들은 어찌 됐나?
그중 16명이 간첩으로 몰려서 감옥에 갔지...
말 한마디 잘못해서 막걸리 보안법으로 잡혀간 줄 알았는데... 최근 무죄판결나는 내용 보니까 그것도 아니여...
이권 다툼 관계에 있는 경찰 마누라가 허위신고해서 감옥 살고, 중정요원 승진용으로 고문 희생당해서 간첩된 것이더구만...
NLL... 눈물나는 비극의 역사...
우리 어선이 저리도 많이 피랍될 때에 남한 해군은 뭘 했나?
해군도 당했더만... 서해에서 해군함정이 납치된 일도 있었더만... 동해에선 북한 폭격으로 침몰된 일도 있었더만... (이런 일은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어)
그런데, 북한은 정전협정에서 73년까지 일절 NLL언급을 안 했더만... 왜 그랬을까?
모른체 가만 있으면 귀순자들이 저절로 들어오는데... 왜 안 그랬겠어...
(65~73년까지 피랍과 도발이 집중되는데, 그건 베트남전쟁 때문이여. 호치민 도와주는 전략이었지.)
아이러니하게도 최초로 행동으로 NLL을 지킨 이는
빨갱이라 불리던 김대중이여...
1차 연평해전이 최초의 군사적 충돌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