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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함에 당한 병사들은 패전병이다! 1. 포클랜드 전쟁시 콩
게시물ID : military_426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빨갱이의피
추천 : 1/6
조회수 : 1979회
댓글수 : 28개
등록시간 : 2012/08/09 15:05:54


 
1. 포클랜드 전쟁시 콩커러함
   콩커러함이 격침시킨 제너럴 벨그라노와 섬너급 구축함 2척을 격침시켰을 때, 비유도방식의 Mk 8 어뢰는 첫번째 어뢰가 
   1번 포탑 하방 선체를 명중 뱃머리를 분리시켰고, 7초후 두번째 어뢰가 배 전체 길의의 3/4 위치를 강타, 그 폭발력이
   위로 치고 올라가 많은 수병들이 모여 있던 식당과 휴게실을 덮쳐 일시에 275명을 죽였음. 
   20분 후 함장이 이함 명령을 발령하고 배는 전복되었음. (천안함은 3분 안에 옆으로 쓰러졌음). 이때 어떠한 구조요청 
   전문도 없어서 같이 가던 호위 구축함들은 자신들의 기함에게 어떤 일이 난 줄도 몰랐음. 
   밤새 어뢰 회피기동만 수행했는데 이건 세번째 어뢰가 구축함에 맞고 불발되었기  때문....        
 
        
 
2. 포클랜드 전쟁시 산루이스
   유일하게 작전가능했던 209급 잠수함인 산루이스를 잡기 위해 영국해군은 당시 최고의 대잠전 능력을 보유했던 대영해군의 
   원정함대에서 최신형인 22형 호위함 브릴리언트와 12M형 호위함 야무스를 투입. 참고로 22형 호위함은 대잠전에 특화된 
   호위함으로 1981년 취역했고, 대잠무기로 시킹 대잠 헬기와 TYPE2050/2008 SONAR와 TYPE 2031 예인소나를 보유하고 있었다.
   시킹 헬기는 3대나 투입이 되었다.  당시 시킹 헬기는 세계 신기록의 체공시간을 비행하며 폭뢰 6발과 어뢰 2발을 발사했지만
   오히려 산루이스는 반격을 실시해서 어뢰 1발을 발사했다.
   10일후 , 포클랜드 해협을 강행정찰 통과하던 21형 호위함 얼래크러티와 애로우는 5마일 거리를 두고 항해 중 어뢰를 발사했지만
   애로우가 매달고 다니던 닉시 어뢰 기만기만 파괴했다. 하지만 두 함정은 자신들이 어뢰 공격을 당했다는 것을 나중에 닉시가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 나서야 알게되었다.         
 
        
 
3. 2차대전시 로얄 오크와 U-47
   2차대전 초기 로얄 오크가 정박했던 스카파플로 해군기지는 잠수함이 침투할 수 없는 항구로 알려졌었다. 하지만, U-47은 
   부상항해로 삼엄한 대잠 경계망을 뚫고 침투해서 로얄 오크를 격침했다.        
 
        
 
4. 한국해군과 RIMPAC
    1998년 이종무함은 세계에서 가장 막강하다는 미해군과 대잠전에 특화된 해상자위대 함대로 침투하여 13척 15만톤의 격침 
    판정을 받았다.
    1999년 이천함은 괌 근해에서 실시된 서태평양 훈련에서 퇴역 순양함 오클라호마시티(12000톤)을 선저폭발모드로 
    유도시켜 일격에 선체를 두동강 내 버렸다. 천안함의 배수량의 10배다. 그리고 버블제트 어뢰란 없다. 어뢰를 
    선저폭발모드(또는 침저폭발모드)로 유도하는 것이지...
    2000년 박위함은 황군 세력 잠수함 중 유일하게 끝까지 생존하면서 청군 세력 11척의 격침 판정을 받았다.
    2002년 나대용함은 비록 격침판정을 받았지만 그전까지 11척 10만톤의 격침 판정을 받았다.
    2004년 장보고함은 14척15만톤의 격침판정을 받았지만 대항군에게 거의 탐지되지 않은 완벽한 작전을 펼쳤다.        
 
        
 
5. 잠수함과 항공모함의 충돌
   1983년엔 한미 연합훈련인 팀스피리트 훈련에 참가한 7함대 소속 항공모함 키티호크가 구 소련의 빅토르Ⅰ급 공격용 
   핵잠수함과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충돌 당시 미군이 인지하고 있었는지는 불명이지만 최소한 핵심 보호 자산인
   항공모함 바로 밑까지 접근할 때 까지 호위 순양함/구축함/호위함/공격 잠수함들은 지켜내지 못했다.    
        
 
        
 
분명 천안함이 어뢰에 피격되었다면 전평시를 불구하고 작전 및 경계에 실패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천안함과 그 승조원들 그리고 지휘부가 무조건적인 비난을 받는 것은 문제가 있다.
 천안함은 당시 북한에 숫적 질적으로 밀리던 아 해군이 한정된 예산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만들어 낸 연안 해군
전력의 핵심이었다.
그리고 시작부터 북한에 비해 산업기반도 부존자원도 밀리던 상태에서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루어 왔지만 국력에 걸맞는
전력 증강의 기회를 제공받지 못한 결과의 산물이었다.
분명 대수상 전투에서는 북한의 어느 전투함보다 강력하지만, 그 낡은 스틱스 대함미사일조차 요격할 능동 전자전 장비도,
하드킬 무장도 달 수 없었고, 적의 잠수함을 쫓아서 액티브 핑을 날릴 수 있는 액티브 소나를 갖고 있었지만, 
그 능력은 매우 제한되었고, 매복한 적의 잠수함이 발사하는 어뢰의 항주음조차 확실히 탐지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다. 
또한, 노후한 중고기를 인수한 트래커 대잠 초계기는 이륙하다 공중폭발하였고, 겨우 도입한 최신예 오라이언 대잠초계기는
겨우 8대로 24시간 전방지역 대잠 초계도 불가능했고 십수년후 추가 도입하게된 비행기 마저도 사막에 버려진 중고기를 인수하여
개조해야 했지만, 1달전에야 겨우 초호기를 인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래봐야 16대 이걸로 24시간 동서해 초계는 불가능했다.
이것의 대안인 링스헬기는 견인식 부이 밖에 없는데다 댓수도, 탑재하고 작전할 수 있는 배도 한정이 되었다. 
탑재하고 작전할 수 있는 함정도 이순신급 이전에는 강제착함장치도 없어서 황천이 조금만 심해도 헬기는 돌아가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군의 지휘관과 간부들은 그러한 위험을 알면서도 국가의 생명선을 사수하기 위해 그들의 목숨을 걸고 NLL을
사수했다.        
 
열 순라꾼이 한 도둑 못 막는다고 했다.
비난도 할 시간에 할 곳에서 하되, 그들의 노고와 그들의 희생과 그들의 정열을 이해해 주면 안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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