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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
게시물ID : phil_343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자유천사
추천 : 0
조회수 : 468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2/08/10 18:09:14

세상이 하나로 움직이는데 어찌 상대에게 자신을 주지않고
전체가 하나되어 움직일 수 있겠는가?

이 세상은 거대한 생명력이 하나로 순환하고 있는 율동현상이다.
모든 생명력은 전체와 인연을 맺음으로써 자신의 존재 이유를 다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은 자연을 기초로 그 속에 미생물과 식물이 생기고
이를 기초로 여러 가지 미물과 동물이 생기고
최종적으로 인간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생명력의 율동을 기초로
그 위에 상위구조인 의식의 흐름이 나타난다.

생명력이 흐르게 되면 그 기운 가운데서 의식의 기미가 나타나게 되고
이것은 식물과 미생물에서는 미미한 상태이나
동물에서는 희미하게 나타나고
인간에 이르러서 분명하게 나타나 본격적인 의식작용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의식작용의 본질인 업과 공덕은 인간에 이르러서 비로소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인간은 이러한 의식활동을 통해 바른 이치를 깨닫고 공덕을 쌓아
의식을 맑고 강하게 만들어 자신의 의식을 완성시킴으로써 의식의 열매를 맺는다.
이것이 바로 인간정신의 완성현상인 해탈현상인 것이다.

인간의 정신이 완성되게 되면
그 맑은 의식에 온 세상이 모두 비쳐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고
강한 의식은 용기와 힘을 지녀 어떠한 고난도 극복하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의 몸을 지니고 인간정신을 지니고 태어나는 것이
끝없는 윤회과정에서 매우 큰 복인 것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사람의 몸을 지니고 태어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태어나더라도 부처와 만나 정법의 인연을 맺는 것은 더 더욱 어렵다고 했던 것이다.

사람의 의식을 가지고 태어날 때에만 공덕을 쌓을 수 있어 완성에 이를 수 있는데
이때에도 정법과 인연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운명을 바꾸는 선업을 지어
완성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럼 생명과 의식의 흐름을 다시 생각해보자.

식물이나 미물의 의식은 거의 존재치 않을 정도로 거의 미미하다.
그래서 이러한 생명체들의 의식은 생명력에 내포된 정도이거나
미미한 동물의 의식체가 형체도 없이 흩어져 무기 상태로 스며들어 있는 정도이다.

그래서 식물체를 섭취하게 되면 거의 성질이 없는 순수한 기운형태의 의식이기 때문에
몸에 큰 저항없이 순수하게 섭취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육식동물이 초식동물을 식사하는 것도
의식작용이 희미한 두 동물이
거대하게 순환하는 우주적 생명력을 서로 교류하는 현상이기 때문에
이 속에는 큰 업이나 살생과 같은 의미는 존재하지 않는다.

업과 살생과 공덕의 문제는 인간의 의식에 이르러서 비로소 의미가 나타나는 것이다.

인간의 의식은 강한 힘을 가지기 때문에
하나하나의 생명활동이 모두 인간의 의식에 업이나 공덕으로 작용한다.

바른 이치로 세상에 공덕을 지으면 점차 맑고 강해지지만
탐욕스럽고 흐리고 게으르게 살면
그 마음이 탁하고 냄새나고 약해져 불행한 운명을 겪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부지런히 일하면 부족함이 없게 되고
매사를 준비하면 위태로움을 방지할 수 있게 되고
잘못된 일을 밝혀 원인을 치유하면 모든 일이 문제없이 풀리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자연의 순리와 이치에 따라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여 지혜롭게 세상의 문제를 해결해 나갈 때
세상이 보이고 자신과 주변이 밝아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치에 맞지 않은 욕망을 품어 자신의 영혼을 어둡게 하거나
남에게 억울한 짓을 하여 한을 품게 하거나
어리석어 남에게 원통한 일을 당하게 되면
그 한과 집착이 깊어져 윤회를 하지 못하게 되고
유혼이 되어 세상을 떠돌다 영혼을 망치고
마침내 의식이 산지사방 흩어져 미물이 되거나 식물에 깃들어
다시는 인간의 의식을 얻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업과 공덕을 쌓아 생명의 정수인 의식을 완성해 나가는 것은
인간의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선악이 뒤섞인 세상 속에서 이치를 살펴 공덕을 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모든 일이 선악이 혼재되어 있어 순수한 선과 공덕을 행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전쟁을 할 때 사람을 죽이는 것은 살생이지만
내 민족을 살리기 위해 적을 죽여야 하는 것은 정의인 것이다.

부족을 이끌고 황야를 헤매는데
먹을 것이 가축 밖에 없다면
굶어 죽을 것이 아니라 가축을 식용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살생이 아니라 전 부족을 살리기 위한 현명한 판단이며 공덕인 것이다.

사실 육식을 하는 것은 업이 되지만 큰 업은 아니다.
먹기 위해 의식이 약한 짐승을 살생하는 것보다
힘을 얻어 좋은 공덕을 행함으로써 쌓는 공덕이 수만배 더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말씀에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중요하다 했던 것이다.
말과 의식의 흐름이 중요한 것이지 무엇을 먹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닌 것이다.

내일 올림픽에 나가거나 가족의 운명이 걸린 취직시험을 쳐야 하는데
방안에 모기가 있어 잠을 설친다면
그 모기를 잡아야 할까?
아니면 살생을 할 수 없어 밤새 뒤척이다 인생을 망쳐야 할까 ?

모기를 잡고 편히 자야 한다.
모기를 잡는다고 큰업이 되지 않는다.
모기의 의식이 미미할 뿐 아니라
내일 시합이나 시험을 잘 쳐 세상과 가족에게 짓는 공덕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우리는 참된 행복과 진리를 찾기 위해 사실에 충실해야 한다.
전체를 살펴보고 그 속에 있는 큰 흐름을 볼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선택을 통해 더욱 현명해지고 바른 이치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세상을 보는 눈이 생기고 세상의 인과를 볼 줄 알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관념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어렸을 적부터 살생을 해서는 안된다는 추상적 설교를 듣고 자라와
맹목적으로 이를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살생은 가려서 해야 하는 것이지 무조건 금지된 것은 아닌 것이다.

너무 관념화되면 인도 자이나교 승려처럼 비현실적이 된다.
인도 자이나교의 승려는 땅의 개미나 벌레를 해칠까 걱정하여 항상 비짜루로 쓸고 다닌다.

그러나 그러한 작은 업을 두려워하는 것보다 큰 공덕을 짓는 것을 중요하다.
활발히 활동하여 세상에 진리를 전하고 공덕을 짓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개미나 벌레가 자신도 모르게 발에 밟혀 생명을 잃는다고 해서
그것이 큰 업이 되지 않는 것이다.

관념의 노예가 되지 마라.
살생을 하지 말라고 생활 자체를 비정상적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생명을 함부로 해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살생을 가려서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살생은 생명력이 하나로 순환하는 흐름에 있어서 필수 불가결한 일이다.
식물체를 먹는 것도 실상 알고보면 생명을 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너무 살생을 해서는 안된다는 관념에 얽매여서는 안된다.

다만 함부로 생명체를 꺽거나 해쳐서는 안된다.
이유없이 생명력을 함부로 해치는 살기를 갖게 되면
그 살기가 상대의 공포를 불러 일으켜 자신을 해치게 되며
모든 생명체를 해치는 큰 업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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