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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박정희 혈서찾아다니는 구석기 선비분들을 위한 자료
게시물ID : sisa_21918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커피통
추천 : 1/2
조회수 : 661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2/08/10 23:19:46

여러분이 좋아하는 친일혈서를 보여드리겠습니다.

1939년 3월 31일 만주일보에 공개되었다네요.

[출처] [필독][퍼뜨려 주세요]박정희 대통령 친일 의혹, 그 더러운 진실|작성자 페뷔스

조갑제의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를 보면

문경 심상소학교 재직 당시 동료교사였던 유증선 씨의 증언이 나옵니다.

"1938년 5월 숙직실에서 만주군관학교 입학적령 20세에 걸려 고민하는 박정희에게 유증선이 충고하길

나이도 한 살 정도 줄이고 편지와 함께 혈서를 쓰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박정희는 그의 충고를 받아들여 즉석에서 면도칼로 새끼 손가락을 그어 '진충보국 멸사봉공'이라는 혈서를 바쳤고

만주신문에서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①만주군관학교 입학제한 연령이 20세라는 부분과

②나이를 한 살 줄였다고 말한 부분입니다.

일단, 만주군관학교 입학제한 연령은 몇 살이었을까요?

관련하여 쇼와 14년에 작성된

『陸軍預科士官學校生徒、陸軍經理學校予科生徒及陸軍幼年學校生徒召募告示の件』이라는 일제의 공문서를 확인해보았습니다.

[출처] [필독][퍼뜨려 주세요]박정희 대통령 친일 의혹, 그 더러운 진실|작성자 페뷔스

보면 응시자격 연령이 16세 이상 ~ 20세 미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유증선이 증언한 바 당시 1938년이면 박정희 나이가 22세일때인데,

한 두살 낮춘다고 응시자격이 생겼을리가 없겠죠.

이쯤에서 유증선이 소설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게다가 중앙일보 지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상유 선생의 지적처럼

박정희는 1939년 10월에 시험을 쳤기 때문에,

그로부터 1년 5개월 전에 혈서를 보냈다는 얘기는 여러모로 의심이 가네요.

당시에는 모집여부 조차도 알 수가 없었답니다.

왜냐하면 1939년에야 만주군관학교 설립에 관한 얘기들이 나왔기 때문이죠.

결정적으로 유증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박정희는 대구사범시절 재학시절 교련과목 이수자여서

하사관 자격이 있었습니다.

하사관 자격이 있는 자는 위의 제한연령 규정에도 불구하고 26세 미만까지 지원할 수 있었으므로 박정희가 나이 문제로 고민했네 어쨌네 하는 것은

개구라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안 믿으실까봐 증거자료 첨부합니다.

[출처] [필독][퍼뜨려 주세요]박정희 대통령 친일 의혹, 그 더러운 진실|작성자 페뷔스

(출처는 앞의 왜말 문서와 같습니다)

두번째로 나이를 한 살 줄였다고 한 부분을 보겠습니다.

1945년 일제가 작성한『임시육군군인군속계』상에 나타난 박정희의 생년월일을 보면 대정 6년(1917년) 9월 30일으로 되어있는데

이는 박정희 대통령의 실제 음력 생일과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박정희는 나이를 고친 적이 없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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