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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골품제도. 그리고 '성골' '진골'
게시물ID : history_531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Persona
추천 : 12
조회수 : 3175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2/08/11 12:09:57

신라의 신분제도는 골품제라는 것은 대부분 알고 있다.

하지만 골품제에서 성골과 진골에 대해서는

흔히 '부모가 모두 성골이면 자식도 성골', '둘중 한명이 진골이면 진골' 이런식으로 이해하고 있다.


일단 국어사전부터 살펴보자.(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참조)

[성골 : 신라 때에 둔, 골품의 첫째 등급. 부모가 모두 왕계(王系)인 사람으로 시조 혁거세부터 28대 진덕 여왕까지가 이에 속한다.]

흔히 우리가 알고있는 성골이다.

이는 일제시대에 일본 역사학자들이 단편적인 지식만으로 만든 것으로 현재까지도 대부분 이렇게 이해하고 있다.


이번에는 백과사전을 살펴보자.(다음 백과사전 검색 참조)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do?docid=b12s0628a

국어사전과는 다소 다른 견해가 보인다. 찰제리니, 진종설화니, 어려운 말들도 보인다.

현재 이 학설이 학계에서 가장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학설이다.

이 학설에서 말하는 성골의 실체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신라 왕족 계보도 : 안동김씨 익원공파 이목종친회 카페(http://cafe.daum.net/imokkim/JtsT/32?docid=1CD1Q|JtsT|32|20090118050158&srchid=IIMihIqQ400#A135A65084975FAA9BD5A9C&srchid=IIMihIqQ400)


다들 아시다시피 법흥왕은 신라에 불교를 들여왔다.

이는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왕이 공식적으로 불교를 들여왔다는 것은 불교가 국교로 지정되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찌질이 신라는 극적으로 변한다. 도저히 찌질했던 나라라고 생각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나라로 변신한다.


신라가 얼마나 찌질했던 나라인가.. 자기나라를 제 손으로 지키지 못해 고구려의 군사를 빌려 왜구가 날뛰는것을 막았다.

17대 내물왕때에는 이찬 대서지의 아들 실성을 고구려에 볼모로 보냈다가 돌아와서 왕으로 즉위한다.


이런 찌질한 나라에서 벗어나고자 19대 눌지왕은 나제동맹을 맺게 된다.

그 뒤로 신라는 백제와 손을 잡고 차근차근 나라를 정비하고 국력을 증강시킨다.

고구려 장수왕이 죽고, 신라는 나라를 정비하고, 대외 정벌을 착실히 준비했다. 그 결과 22대 지증왕때 첫 대외 정복인 우산국을 정복한다.

이 이후로 23대 법흥왕때에는 금관가야를 정벌하고,

24대 진흥왕때에는 백제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후려 갈기면서 나제동맹을 깨고,

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가야를 멸망시키고, 북쪽 고구려땅 깊숙히 차지하고 비석을 세운다.

이때 차지한 땅이 현재 원산 함흥에 이른다.

불과 150여년만에 신라는 엄청나게 강력한 나라로 성장하였고, 이는 불교를 국교로 지정한 것과 더불어 이룩된 것이다.


다시 본론(골품제와 성골)으로 돌아와서 이렇게 강력한 나라를 만든 진흥왕은 아들이 둘 있었는데, 하나는 첫째 동륜, 하나는 진지왕이다.


본론은 다시 접어두고 불교의 미륵신앙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흔히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라고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불교에도 메시아적인 구원신앙이 있는데, 바로 미륵신앙이다.

미륵은 온 중생을 구원하여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혹은 인간 세상을 극락으로 만드는) 부처이다.

(이런 미륵 구원 신앙을 이용한 대표적 인물로 궁예를 들 수 있다.)

미륵부처는 언제 등장할지는 모르나, 현실군주로서 불법을 수호하는 전륜성왕이 등장할 때 미륵이 등장한다고 한다.

전륜성왕에게는 후계자가 넷 있는데, 이름이 금륜, 은륜, 동륜, 철륜이다.


눈치빠른 사람은 알아 차렸을 것이다.

신라 왕 계보를 보니 진흥왕의 아들 이름을 보니 동륜이다. 올ㅋ 그렇다면 진흥왕의 아들인 진지왕의 이름을 찾아보니, 읭? 사륜이다.

사륜의 한자를 살펴보면 (舍輪)이다. 금륜(金輪)과 한자가 상당히 비슷하다는 것을 볼 때

金金輪을 피하기 위해 金舍輪으로 이름을 지었을 것이다.

결국 진흥왕은 자신이 불법을 수호하는 전륜성왕으로서 세력을 융성하게 만드는 왕이라고 (스스로 믿었든, 선전을 했든) 생각했고,

당대 신라 백성들은 이를 위해 목숨바쳐  싸웠을 것이다.(자신이 구원받는 극락세계를 위해.)

말하자면 십자군? 광신도? 그러니 신라군이 강할 수 밖에...


근데 이상한 점이 있다. 전륜성왕의 후계자가 금, 은, 동, 철륜 순서인데, 왜 첫째아들은 이름이 금륜이 아니라 동륜일까?

둘째아들의 이름이 동륜 다음 후계자인 철륜이 아니라 금륜이 된 까닭은 무엇일까?

이는 당시의 권력 다툼과 관계가 있다. 진지왕을 밀던 파벌과 동륜을 밀던 파벌이 있었는데,

당근 진지왕을 밀던 파벌이 세력이 강했으니 진지왕의 이름도 자연스럽게 금륜을 이어받았고,

장님인 동륜은 당시의 보물에 해당하는 銀의 이름도 잇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또다시 세력이 뒤집어진다. 동륜 계열의 파벌이 진지왕 세력을 누르고 융성해졌다. 그 결과 진지왕은 재위 3년만에 폐위되고 만다.

폐위의 사유는 품행이 방정치 못해서.... 왕의 품행이 방정치 못하다니....

아무튼 폐위된 이후 진지왕은 몇달 지나지 않아 죽게 된다. 지병도 없었고, 사고도 아니다. 이쯤이면 대충 눈치 챘을 것이다.


진지왕이 폐위되고 등극한 왕은 동륜의 아들 진평왕(26대 왕)이다.

근데 권력을 잡은 것 까지는 좋은데 문제가 생겼다.

거의 광신도급에 가까운 신라 백성에게 있어서 진지왕은 전륜성왕(진흥왕)의 후계자인 금륜이었다.

근데 금륜이 어처구니 없게도 품행이 방정치 못하다 해서 쫓겨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어버린다.

그들이 믿어오던 미륵신앙이 송두리채 날아가버리는 사태에 이르게 된다.

이를 해결하고자 진평왕은 어마어마한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이름하여 부처 프로젝트......


진평왕의 동새의 이름을 보니 국반(國飯)이다. 이는 석가의 삼촌의 이름이다.... 읭? 냄새가 난다.

진평왕의 이름은 백정(白淨)이다. 이는 석가의 아버지의 이름이다. 오... 슬슬 느낌이 온다.

진평왕의 왕비 이름이 마야부인(摩耶夫人)이다. 이는 석가의 어머니이 이름이다.

그렇다면 백정(진평왕)과 마야부인 사이에서 난 자식은 자연스럽게 석가가 아니겠는가?

이것이 신라 백성들에게 있어서는 미륵신앙을 대체하는, 미륵신앙보다도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인도 카빌라국의 석가왕실을 그대로 모방하여 우리 집안은 석가의 집안과 같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불경에 나타나는 찰제리(刹帝利)의 진종설을 그대로 가져왔으니, 왕의 혈통이 얼마나 성스러운 혈통인가? 그래서 성골이 만들어진 것이다.

즉, 좁게는 진평왕 계열의 집안, 조금 넓혀서는 법흥왕 이후 진덕왕까지의 혈통을 성골이라 한 것이다.


아무튼,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선덕왕은 석가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적어도 신라인들에게는..

물론 대외적으로는 여자라는 시각을 벗어날 수 없었고, 당나라로부터 여러가지로 조롱을 받기도 했지만,

아무튼 당대 신라 백성들에게는 선덕왕은 곧 석가였던 것이다.


선덕왕 사후 그쪽 집안으로는 선덕왕의 사촌이자 국반의 딸인 승만 외에는 없었다.

그리하여 선덕왕을 이어 제위에 오르니 이가 마지막 성골인 진덕(여)왕이다.


결국 성골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내려오던 혈통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王卽佛 사상을 만들면서 만들어낸 산물이라는 것이 현재 학계에서 가장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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