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문화의 힘이 무섭다고 느껴집니다.
사실 본 건 꽤 오래전인데 새벽에 갑자기 생각 나서 여쭤봅니다.
다름이 아니라 원피스 인어섬 에피소드에서 말인데요..
안 보신 분들을 위해 간략하게 설명할게요.
(아래 스포주의)
원피스에는 인어 해적들이 꽤 나오는데, 이 인어 해적들 대부분이 인어섬 출신이거든요.
근데 인어섬 에피소드에서 밝혀지는 게 있는데,
알고보니 인어 해적들이 청룡인(귀족 같은 개념의 고위층 인간들. 못돼처먹음)들에게 잡혀
노예생활을 하며 벌레만도 못한 취급을 받았다가 도망쳤다고 나옵니다.
그 때문에 인어 해적들은 인간을 증오하게 되었고,
인어섬 인어들도 인간을 꺼리게 되었어요.
(반대로 인어 여왕인가는 인간들과 사이좋게 지내자며 자기희생까지 합니다.)
암튼.. 중요한 건 이 인어섬에 인간을 적대시하는 인어 일당이 나오는데요.
인간을 어마어마하게 증오하고, 결코 손을 잡으면 안되고 인간을 다 처죽여야 한다며 계략을 꾸밉니다.
스토리 후반에 우솝인가가
"대체 왜 그렇게까지 인간을 증오하는 거지? 인간들이 너희들에게 대체 무슨 짓을 했나"
라고 물어보고, 일당의 우두머리는
"아무것도"
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면서 인어 해적 출신이었던 인어 캐릭터가
그들은 아무것도 겪지 않았으면서
단지 선대들의 "말만 듣고" 거짓된 증오를 갖게 되었다며
그 증오의 사슬을 끊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스토리는 마치
아무것도 당한 게 없으면서 선대의 말만 듣고 인간을 증오하게 된 그 일당이
잘못된 것처럼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이 에피소드를 보면서..
일제강점기가 자꾸만 오버랩됐습니다.
노예생활을 했던 인어 해적들은 일제강점기 당시 살았던 국민들,
노예로 부리던 못된 청룡인들은 일제강점기 당시의 일본인들.
그리고 인간을 증오하는 인어 일당은 현재 일본을 싫어하는 국민들.
이런 식으로요.
근데 갑자기 "아무것도" 드립 하면서
직접 당한 것도 아니면서 증오하는 너희들이 이상한 거야 식으로 진행되니까 많이 당황스럽더군요.
그리고 보면서 무서웠던 게,
원피스는 우리나라에서도 엄청 히트친 만화고,
학생들이 엄청 보는 것으로 아는데,
어린 학생들이 이 에피소드를 보면서
직접 격은 것도 아닌데 증오하는 건 옳지 않다..
이렇게 생각하게 되어버릴까봐 무섭더라구요.
이게 바로 문화의 힘인가 싶기도 하고.
자기가 직접 겪은 게 아니더라도
같은 동네에 살던 이웃들이, 친하게 지내던 동네 형이, 동경하던 선배가,
노예로 끌려가서 벌레만도 못한 취급을 받았다는데
증오하지 않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한 거 아닌가 싶구요..
이 에피에서 저처럼 느끼셨던 분은 혹시 없나요?
제가 괜히 오버하는 걸까요..
암튼 좀 충격이라 저 에피 이후로 원피스 끊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