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관람객은 상황에 대처하는데 숙달된 베테랑들입니다. "특수한 목적"으로
세계 각지의 연구팀, 고위급 관료, 대기업 시찰단, 군 직속 테스크 포스, 민간 용병에서 팀을 꾸려 방문하기 때문이죠.
가벼운 목적으로 이곳을 찾는 관람객은 거의 오지 않는 편입니다.
그래도 저희는 준비가 안 된 관람객분들도 최대한 편리하게 둘러보실 수 있도록
시설 곳곳에 주의가 요구되는 안내문을 배치했습니다.
모든 매뉴얼을 암기할 필요 없이 주변에 보이는 안내문만 잘 따라주시면 되죠.
그리고 될 수 있는 한 저희 직원이 당신을 지켜드릴 것입니다.
전시관은 국제기금을 받아 운영하기에 별도의 입장 비용이 없으며, 전시관 내에서 이용하실 수 있는 서비스 또한
부과요금이 청구되지 않습니다. 이곳에서의 안전상 몇 가지 정신 감정과 신체 테스트만 통과하시면 언제든지 오실 수 있죠.
저흰 언제나 새로운 관람객을 만나뵙길 바랍니다.
이곳에서 관람하실 땐 되도록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마십시오.
엄숙한 분위기를 강조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엿듣는 것"이 있습니다.
"엿듣는 그것들"은 이야기를 통해 인간사회의 관습을 배우며 들은 바를 바탕으로 한
"인간이 납득할 만한 공포"를 약간의 물리적인 실체가 있는 단계까지 구현합니다.
인간 사이에 자연스럽게 섞이면서 "그래야만 하는 의도"를 달성하려는 거죠.
9번 매뉴얼에서 소개해 드린 바 있는 독극물을 나눠주는 웨이터라든지
8번 매뉴얼에서 소개해 드린 바 있는 소리의 특성을 가진 신경 자극 신호는
"엿듣는 그것들"이 구현한 카테고리 안에 있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게도 시각 자료로는 학습하지 못 하는 거로 확인된 "엿듣는 그것들"은 달리 말해 소리에 굉장히 예민합니다.
공기 중의 진동으로 지리의 테두리나 물체의 면적을 파악하는 건 박쥐도 할 수 있고 그 이상입니다.
"엿듣는 그것들"은 우리 신경의 생체전기와 뇌의 시냅스 반응까지 어느 정도 소리의 영역으로 포괄시킬 만큼
극도로 발달한 소리 인지 기관을 가졌습니다. 설명이 난해하니 덧붙이자면,
뇌파를 듣고 생각을 약간 읽을 수 있는 수준의 청각이란 것이죠.
저희는 관람객분들의 동의 하에도 불구하고 모든 대화를 도청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주의하셔서 "엿듣는 그것들"에게 인간사회에 대한 정보를 누설하지 마십시오.
4층 고대문명 전시관의 고대 로마 조각상들은 팔과 다리가 족쇄로 포박돼있습니다.
관람객 중 예술가분들의 항의도 있었고 분명 미관을 저해하지만,
그 조각상들은 강화 유리에 가둬서 감상하는 것만으론 통제할 수 없습니다.
강화유리도 오래 버티지 못 할 것이고 그전에 근접 진압해야만 하는 저희 직원들 입장에서는
평소 조각상의 포박 상태만이 안전장치죠. 조각상의 특성상 마취나 전기충격은 안 통할뿐더러
그 조각상들은 대리석이라 할 수 없는 경도로 변모합니다. 그래서 진압할 땐
그것의 괴력을 잠시나마 버틸 수 있는 강화 외골격으로 무장한 직원들이 위험을 감수하고 투입됩니다.
그 조각상의 수준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각상이라 해도 손색없을 예술품이란 건 압니다.
그런 점 때문에 미관을 저해하는 부분에 있어서 원초적인 분노를 느끼실 수도 있죠. 하지만,
모두 안전을 위해서라는 점 감상에 양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