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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로미오네 머슴과 줄리엣 된 사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게시물ID : bestofbest_3347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추노Ω
추천 : 287
조회수 : 23481회
댓글수 : 3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0/02/03 21:22:46
원본글 작성시간 : 2010/02/03 15:57:10
어느 학교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라는데 너무 웃겨서 퍼온걸 또 퍼왔어요 ㅋㅋㅋㅋ ....................................................................................... 뻥같지만 좀 읽어주십쇼 저도 웃깁니다... 아니 혹시 여러분께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일수도있습니다. 저는 올해 27살이 된 착한 남자사람입니다. 살면서 죄지은적도 없고, 1년 5개월동안 진지하게 사귄 여친한테 최선을 다했고, 진실하게 사랑했습니다. 이번달에 졸업을 하는데, 다행히 졸업전에 취직도 되고 해서 여친한테 결혼 얘기를 꺼냈어요. 청혼까지는 아니고.. 여친은 저보다 2살 어린데 대학교 졸업하고 지역신문사에서 근무하고 있거든요. 제가 결혼얘기 끄내니깐 자기고 좋아하면서 대충 올해 6월이나 7월에 하는걸로 계획잡고 준비해나가자고 했어요. 작년 12월경에 여친을 우리 부모님께 보여드렸는데..이쁘다고 좋아하심... 올해 1월에 제가 여친 부모님 찾아뵙는데 무난했음.. (사실 울집이나 여친집이나 배경도 비슷비슷해요.....저 외동아들, 여친 외동딸, 울아버지 법인회계사, 여친아버지 고등학교교사 두 집다 아버지, 어머니, 자식 그렇게 아파트에 같이 삼) 문제는 양가 상견례를 2번 정도 하니깐 여친 할아버지께서 지방에서 상경을 하신겁니다. 저보러... 여친이 미리 저한테 경고하는데 자기네 할아버지 오나전 호랑이라고 엄청 무섭다고 ..조선시대 사람처럼 행동하라 하더군요. 자기네 아빠도 할아버지 앞에서 꼼찍도 못한다나요?? 아무튼.... 여친네 아파트에 가니깐 여친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계신데.... 할아버지가 왕무섭게 생겼음..내 인생 그렇게 무섭게 생긴할아버지는...ㄷㄷ .제 소개 드리고....몆 마디 얘기하는데... 대뜸 ..."자네 무슨 김씨인가? 경주김씨인가?" 하는거예요......전 그런거 몰랐거든요..여자친구는 정씨 예요..... 그래서 잘 모르겠습닌다..하니깐....자기 본관도 모른다고 호통을 치시고 노발대발... 황급히 엄마한테 전화를 .....그러니깐 엄마도 잘...모르는눈치더니.....아빠한테 물어보고 전화 주겠다고.. 5분뒤에 전화가 왔어요...."경주김씨래.........근데 왜?" 아니라고 바로 저나끊고 할아버님꼐 "경주김씨" 입니다 하니깐... 그 할아버지 왈.. 내 그럴줄 알았다..자네 이름 끝자 보고..항렬이 그게 경주김씨 무슨무슨파 항렬이라고,,,,,역정을 내시더니 그러니깐 자네는 김부식이 후손이구만!!!!! 우리 집안이 서경정씨 정지상 선생 몆대 손인데.....고려시대때 어쩌구저쩌구 화를 내시는데.. 요약하면... 여친은 서경정씨 정지상의 후손이고 저는 경주김씨 김부식의 후손인데.. 고려때 ... 무슨 난때인가? 여친의 선조인 정지상님이 우리 선조인 김부식님한테 '참살' 을 당했다는 겁니다.. 아니 무슨 국사시간에 나올법한걸 가지고 나한테 화를.... 더군다나 여친 아버님이 요즘 그런게 어딨냐고...아버님 고만하세요 하시는데도....니는 잠자코있으라고 화를 내는 거죠.. 그래서 그 이유로 저는 안된다는 겁니다.. 할아버지 문중에 경주김씨랑은 결혼 못시킨다고.. 영문을 모르겠지만 일단 진정하고...(저도 대충 정지상이 김부식한테 잡혀 죽었다는건 고등학교떄 들은 기억이..) 선조분 일은 정말 죄송합니다...제가 사과를....하는데도...노발대발....하하 어쩌라고 장난인지 알았는데 진짜야... 집에와서 아버지께 말씀드렸더니....그냥 웃으시면서 아버지도 그쪽은 잘 모른다고.. 좀 기다려 보라고 하시더라구요.. 기다렸는데 여친이 계속 울면서 전화를 합니다..할아버지 집에도 안내려가시고 계속 계신다고..죽어도 저랑 결혼 안된다면서 역정을 내셔서 아주 죽겠다고.. 몆일후에 우리 할아버지 시골에서 올라오시고.. 아버지가 이런 말씀을 드럈더니..노발대발 하시며 "뭐 그런 노망난 할아방탱이가 다있냐고" 울 할아버지도 노발대발.. 결혼없던걸로 하고 만나지 말라고 하시네요...자존심도 없냐고.. 그래도 몆일동안 저는 걔 아니면 안된다고 진짜 사랑해서 혼자살면 혼자산다고 걔가 딴 남자랑 결혼하면 진짜 정신 이상될거같다고 하니깐.....울 할배ㅡ 아버지ㅡ 어머니...다 딱해 하는 분위기.. 여친도 ..자기네 엄마아빠가 다 결혼 하게 해주고 싶어하는데 할아버지 떔에.....좀 기다려보자고 하는데요.. 그제 울 아버지랑 할아버지랑 약주하시면서 기나긴 얘기를 하신끝에.. 오늘 아침 할아버지는 집에 내려가시고.. 아버지가 할아버지 배웅하신뒤 저에게 조용히 얘기 좀 하자고.. 그간 다 집안 얘기 안하신 이유가 있었네요...깊게 알고싶어 하지도 않았고 사실 경주김씨가 아니라.......할아버지의 아버지께서 구한말 경주김씨 양반집에서 일하시는 분이었는데,,,,,궂이 말하면 머슴... 갑오개혁떈가?.... 노비들도 전부 호적신고를 하게되어서....(노비들은 성이 없잖아요...)...그 당시 노비들이 전부 자기가 일하더 ㄴ집안 성씨를 따랐다고.....그 케이스라 하시더군요.... 어쩐지 보여주시는 족보가 너무 쌔거다했어......올컬러에..양장본 ㅡㅡ 기쁜맘으로 여친한테 저나해서....."야 오빠네 경주김씨 아니야...그거 노비였데!!" 그러니깐 여친도 크게 좋아하면서.... 할아버지께 말씀드렸는데,,,,,이번엔 또 어디서 그런 근본도 없는 놈을 들이냐고 화를 내고계신답니다.. 아 어쩌라고!! 노비 얘기 안했으면 걍 로미와 줄리엣 로미오되는건데... 괜히 노비얘기 냈다가.......로미오네 머슴과 줄리엣 되버렸어.... 미치겠다 진짜....할아버지 한분때메 원형 탈모 생기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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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3 23:37:27추천 2
족보는... 원본말고는 지속적으로 다시 제작합니다. 
왜냐면 사람들이 늘어나기 때문이죠.. 
여기서 밝히는 바로는 제가 능성 具씨 本자 항렬쓰는 28대손 입니다.. 
즉 구본승이 제 동생이고 항렬상... 구본무는 형님되시겟습니다. 물론 항렬상으로. 
언덕丘를 쓰는 구씨도 역시 갖출具쓰는 구씨와 같은 집안인데... 

고려 말기에 검교상장군이셨던 우리 시조 구존유 되시는 분이 셨고. 조선 초기에 들어와 이성계에게 반대하여 능성본가에서 경기도 일원 경상도 일원 전라도 화순 등등 뿔뿔이 흩어질때 언덕 丘씨로 성을 바꾸었던것이 화근?이 되어 아에 다른 가문처럼 되어있지만 어차피 동성이니 결혼은 안됩니다. 

구씨는 판서공파외 7개의 파로 나뉘어있고 전 시랑중공파 이죠.. 판서공파가 원래 맏형뻘이라 그 닥 족보나 집안일에 신경안쓰고 살고 기독교 튼실히 믿고 살아갑니다. 

http://www.neungsungkoo.com/ .. 구본?  형제들아.. 한번씩은 들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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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3 16:07:21추천 131
조심해 너의 뒤에 추노가 따를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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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3 16:21:42추천 7
요태까지 나를 미행항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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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q
2010-02-03 16:38:12추천 64
○,                   ○>
/ ̄'☆                   ) 
/>                    /

별 더블클릭 → 장풍 → 맨밑으루 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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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3 17:05:06추천 5
아 정말 딱하다 보는 내가더 딱해ㅋㅋㅋㅋㅋ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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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3 17:40:30추천 58
당사자는....심각할 텐데......미치겠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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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3 17:44:28추천 49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잼나네요..나중에 결혼해서 라디오 사연보내면 대박 날듯...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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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3 17:47:06추천 29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글쓴이 아이디 '추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친 할아버지 추노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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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3 17:53:07추천 84
수백년된 족보가 올컬러에 양장본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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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삭제]이씨
2010-02-03 17:59:08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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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3 17:59:23추천 1
ㅋㅋㅋㅋ
밥먹다가 밥풀이 모니터에붙었어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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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3 18:02:08추천 17/17
읽다보니 내가 화가 다 나네. 그런 개좆영감태기들은 지발로 무덤으로 들어가주면 안될까?

여친할배나 그 애비가 독립군, 남친 할아버지가 창씨개명한 나까무라 형사 정도의 관계였으면 그나마 이해가 갈 구석이라도 조금은 있겠다. 이건 뭐 현충일에 미국기발 흔들어대는 예비역대령연합회 망령들 이상이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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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3 18:04:19추천 0
어라...나도 경주 정씨인데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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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3 18:13:09추천 5
저 할아버지 본격 이씨왕가 후손들도 깔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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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3 18:13:56추천 58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선조님일은 죄송한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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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3 18:14:46추천 87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노비라서 기뻐하는 모습이 상상된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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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3 18:16:53추천 0
전 경주김씨 태사공파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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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3 18:18:22추천 15
류씨랑 차씨도 본관따라 그런게 있던데,. 위로 타고 올라가다보면 한집안이라 결혼 안된다고,.
연세 많으신 분들은 그런거 엄격하게 따지시는분 있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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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3 18:25:59추천 8

ㅋㅋㅋ이렇게 말해주고 싶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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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3 18:31:22추천 6
근데 스물일곱이면
본관정도는 알고 있지 않나... 파까지는 모르더라도..
저도 경주김씨 태사공파 상촌공 할아버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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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Ω
2010-02-03 18:34:16추천 52
진짜 김, 이, 박씨 성들은 팔할 이상이 조선후기에 족보를 샀거나 갑오개혁시에 노비해방이 이뤄지면서 주인댁 성을 따라 했다고 보면 됩니다. 자신이 양반이었을 거라는 편견을 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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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3 18:37:11추천 16
우린 잉어 먹지 말래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잉여라서 그런감...........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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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3 18:39:37추천 15
1 파평윤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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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3 18:42:21추천 7
11 저도 잉어가 무슨맛인지 몰라요 ㅋㅋ 아마 평생 모르고 살겠죠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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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3 18:45:47추천 1
앜... 이거보니까 떠올랐다.
내가 족보랑 선산 땅문서 보관하고있었는데.. 어따뒀지 ㅜㅜㅜㅜㅜㅜ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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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ka
2010-02-03 19:00:08추천 1
어쩐지 보여주시는 족보가 너무 쌔거다했어......올컬러에..양장본 ㅡㅡ

여기서 뿜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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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삭제]bellial
2010-02-03 19:11:24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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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3 19:14:24추천 16

아,, 저희 부모님이 겪은 이야기랑 비슷하네요..!!

저희 아버지 쪽이 '청송 심씨'고, 어머니 쪽이 '밀양 박씨'인데..
예전 '용의 눈물'인가를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위에 같은 내용이 나오는 것 입니다..!!
(참고로, 심온은 세종대왕의 왕후인 소현왕후의 장인.)

그냥 드라마화해서 그랬나? 했는데...

저희 부모님께서 이야기해주시더라구요. 우리 집안에서 '밀양 박씨'시집온다고 반대했었다구요. 
유언이 몇 백년이 지나도록 이어져 올 수 있다니...참 신기하죠.

가끔씩 어머니한테...

'집안의 원수!!'란 생각도 합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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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3 19:58:48추천 0
댓글 쭉 보다보니 태사공파가 은근 많군요

경주 김씨 태사공파 여자사람 추가합니다. 

..몇대신지 문득 궁금하군요

제가 67대인가 그런걸로 기억하는데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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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3 20:25:35추천 5/7
근데 저도 이해가 안 되는게
27살이나 드신 분이;;
그리고 어머니도 아버지도;;
무슨 파인지도 모른다는 게 믿기지 않음;;
지어낸 얘기 아닌가;;싶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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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3 20:42:41추천 0
ㅋㅋㅋㅋㅋ 아 존나 웃기닼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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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3 20:43:04추천 0
나는 연안 이씨 첨사공파임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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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3 20:44:08추천 0
전 67대까진 안가구요 29대였나..

제 고등학교 선배는 27대도 있어서 제가 할머니라 놀린적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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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3 20:53:52추천 0
전 김해 김씨 목경 공파 76대손 입니다.

저보다 손수 높은 분 본적이 없어요.

혹시 계신분 있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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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3 21:15:04추천 9
머지않아

전국민 결혼못할 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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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3 21:44:31추천 9
아 이거 보니까 생각난건데

저도 대학 2학년때 사귄 여친이 있었는데 성이 이씨였어요

근데 대뜸 할머니가 우리집에 놀러온.. 그니까 순수하게 놀러온 그애한데

어디 이씨냐 이렇게 물으시더니.. 어디어디 이씨다 이러니까..

'흠 그만하면.. 집안은 괜찮네' 이러시더라는 ㅋㅋ

혹시 염려하실 까봐 드리는 말씀인데

그 여친하고는 군대가서 헤어졌답니다 차였어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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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3 22:21:00추천 10
전 안동김씨입니다 . . 
길가다 까일수도 있음 선조들께서 워낙 정치를 잘 말아드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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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3 22:42:24추천 13
전 경주정씨 팔송공파 68대손입니다. 병자항렬이고, 제 후대는 균자항렬이죠..

서경정씨는 묘청의 난때 김부식에 의해서 참살 당했었죠...

우리가 말하는 족보..즉 보첩은 해를 거듭하면서 후손들에 의해 오타등을 수정하고 훼손된 속지를 

복구해 나가기도 합니다.

후손들은 내 후대에게 더 나은 집안 내력을 이해시키기 위해 더 보기좋게, 더 정확하게 바꾸기도 하죠..

그래서 올컬러가 나올수도 있습니다.

지금 글쓴이님께는 서경정씨의 이쁜 여자 사람보다는

서경정씨가 아닌 참한 남자사람이 더 어울릴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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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3 22:58:10추천 0
근데 요즘은 족보 잘 안따지죠?
저도 잘 모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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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4 01:02:56추천 3
아무리 그래도 자기가 무슨 김씨인지는 알아야죠..

저는 무슨파 몇대손까지 외우고 있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자기가 어떤 핏줄인지는 최소한 알고 있는게 기본이 아닌가 싶은데..
의외로 모르고 계신분들이 많은거 같아 놀랬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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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4 00:13:55추천 1
노비라서 햄볶아요 ㅋㅋㅋㅋㅋㅋㅋ 아놬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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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4 04:14:28추천 2/3

1그건 모를수도 있는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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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4 07:42:18추천 0
다 큰  성인 중에 자기 본관을 모르는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는군요. 덜덜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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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4 07:55:29추천 20
그런데 만약 성씨가 '이명 박씨' 정도 되면 
반대하실 법도 하겠네요.
댓글 0개 ▲
2010-02-04 09:00:16추천 0
아 참, '문막 홍씨'도 제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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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삭제]큰누나
2010-02-04 10:02:26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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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4 11:47:55추천 1
김부식 金富軾 
[명사]<인명> 고려 시대의 학자·정치가(1075~1151). 자는 입지(立 之). 호는 뇌천(雷 川). 묘청의 난을 평정하여 수충정난정국공신(輸忠定難靖國功臣)의 호를 받았으며 인종 23년(1145)에 《삼국사기》를 편찬하였다.

정지상 鄭知常  
(?~1135) 고려(高麗) 인종(仁宗) 때의 문신(文臣)ㆍ시인(詩人). 초명은 지원(之元). 호는 남호(南湖). 묘청(妙淸) 등(等)과 함께 서경(西京) 천도(遷都)와 칭제(稱帝)할 것을 주장(主張). 묘청(妙淸)의 난이 일어나자 이에 관여(關與)하였다는 혐의(嫌疑)로 김부식(金富軾)에게 피살(被殺)되었음. 그의 시풍(詩風)은 만당(晩唐)의 풍으로 매우 청아(淸雅)하며 호일(豪逸)하였음. 저서(著書)에 『정사간집(鄭司諫集)』이 있으나 전(傳)하지 않음 

추가적으로...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 [妙淸─] 

고려 제17대 왕 인종(仁宗)은 15세에 즉위하였으므로, 국내가 어지럽고 민심이 동요하여 음양지리설(陰陽地理說)이 횡행하였다. 이러한 풍조로 불안해진 국내정세와 유행하던 음양도참설을 교묘히 이용한 묘청은 인종에게 접근하는 데 성공하여, 국수주의적 입장에 서서 이미 지세(地勢)가 떨어진 수도 개경(開京:開城)에서 고려조 중흥의 명당인 서경으로의 천도(遷都)운동을 전개하였다. 당시 나라 밖에서는 새로 일어난 금(金)나라가 고려를 엿보고 있어 불안한 정세를 자아냈고, 나라 안으로는 척신(戚臣) 이자겸(李資謙)이 자기의 셋째·넷째딸을 인종에게 바쳐 세력을 확대시켜 대권을 장악한 후, 스스로 왕위를 찬탈하려는 뜻을 품고 난을 일으켜 고려의 조정은 더욱 더 기강이 어지러워졌다. 묘청 일파는 역대 고려사회의 민심을 지배해온 도참설에 의거하여 국수주의적 배타주의를 표방하고, 인종의 용기를 북돋워 개경의 유교주의·사대주의 세력에 대항하여 서경천도운동을 추진하였다.

원래 묘청을 인종에게 추천한 사람은 시인·문신(文臣)인 정지상(鄭知常)이었는데, 일관(日官) 백수한(白壽翰)과 더불어 서경에 왕기(王氣)가 있으니 서경으로 천도하면 일신의 부귀뿐만 아니라 자손대대로 복을 누리게 된다고 주장하여, 왕의 측근자들과 조정의 대신들을 설득시켜 묘청을 성현(聖賢)으로 추천하여 모든 정사(政事)의 최고 고문으로 삼을 것을 건의하였다. 처음에는 유신들이 의심하여 반대했으나 결국 그들의 교묘한 음양설에 넘어가게 되어, 묘청 등은 인종의 서경행차에 성공하고 15조항의 유신정교(維新政敎)를 선포하였다. 1128년 다시 서경의 임원역(林原驛)에는 대화세(大花勢)가 있으므로 그곳에 신궁(新宮)인 대화궁(大花宮)을 세우면 천하통일을 이루고, 금나라 및 그 밖의 많은 나라가 고려에 항복하여 조공할 것이라 하여 서경천도운동에 박차를 가하였다. 

당시 인종도 이자겸·척준경(拓俊京) 등의 난으로 궁궐이 소실되자 그해 11월부터 신궁건설에 착수하게 되었다. 그러나 묘청 일파가 지나친 농간을 부렸기 때문에 그것이 폭로되면서 유신들의 강경한 반대가 대두되었으며 민심 또한 이탈하는 결과를 가져와, 인종의 서경천도 중지명령까지 나오게 됨으로써 묘청 등의 서경천도운동은 좌절되었다. 이렇게 사태가 반전(反轉)하자 묘청은 1135년 서경의 분사시랑(分司侍郞) 조광(趙匡) 및 분사병부상서(分司兵部尙書) 유참(柳旵) 등과 반기를 들고 개경의 중앙정부에서 파견된 부류현(副留縣) 수령(守令) 이하 관리들을 잡아가두는 한편, 자비령 이북의 길을 막고 서북 여러 고을의 군대를 모두 서경으로 집결시킨 후, 국호를 대위국(大爲國), 연호를 천개(天開)라 선포하고, 군대를 천견충의군(天遣忠義軍)이라 불렀으며, 서북면의 모든 관청, 즉 주군수(州郡守)까지의 관리들을 서북인만으로 충당시킨 다음 개경으로 진격해 들어갈 뜻을 밝혔다. 

이와 같은 묘청 등 서북인들의 반란에 부딪힌 개경의 중앙정부에서는 김부식(金富軾)을 평서원수(平西元帥)로 하는 토벌군을 파견하였다. 김부식은 출정에 앞서 묘청 일파인 정지상·백수한·김안(金安) 등을 참수하고 좌·중·우 3군을 지휘하여 서북면으로 진격하였다. 관군이 안주(安州)에 이르는 동안 그 기세에 눌려 도중의 모든 반란군은 항복하고 서경에도 7∼8차례 사람을 보내어 항복할 것을 권유하였으므로, 승산이 없음을 안 반란군 주모자 조광 등이 묘청·유참 등의 목을 베어 항복의 뜻을 표시하고 죄를 용서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고려조정에서는 조광 등의 죄를 가볍게 받아들이지 않기로 하였으므로 반란이 재연되어 이후 약 1년 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나 포위당한 평양성에서는 식량부족으로 사기가 극도로 저하되고, 36년 2월 관군의 총공격으로 조광 등이 전사함으로써 반란은 끝났다. 결국 묘청의 난은 약 1년만에 진압되었으나, 묘청의 칭제건원론(稱帝建元論)이나 금국정벌론(金國征伐論)은 자주정신에 입각한 민족적 기상의 표출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당시 고려의 정세로 보아서 현실적이지 않은 판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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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4 12:48:08추천 1
조선 후기 대구지방의 자료에 따르면,

1690년 숙종 16년에는 양반  9.2%, 상민 53.7%, 천민 37.1% 
1729년 영조  5년에는 양반 18.7%, 상민 54.7%, 천민 26.6%
1783년 정조  7년에는 양반 37.5%, 상민 57.5%, 천민 5%
1858년 철종  9년에는 양반 70.3%, 상민 28.2%, 천민 1.5%

돈만 있으면 너도 나도 신분을 사고파는 더러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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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w
2010-02-04 14:46:55추천 0
전 흔하디 흔한 김씨인데요..

근데 우리집은 용궁 김가예요..

전 태어나서 같은 본관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예전에 한 번 용궁 김가 찾는다고 글 올린 적 있는데..

한 분이 같은 본관이라시며 댓글 달아주셨어요..

눈물나게 반가웠어요..

용궁.. 진짜루 있답니다...

본관 얘기만 나오면 왠지 서글퍼지는 1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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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4 14:54:21추천 0
아 펀글이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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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4 15:11:09추천 0
신분제 폐지된지 언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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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4 17:10:17추천 0
칠원 윤씨 손! 가수? 윤종신이 제 조카임..항렬로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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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4 18:08:52추천 0
의성 김씨 청계공파 35대손입니다!!

살면서 친척 외에 유일하게 본 의성 김씨가

고등학교 국사선생님이셔서 국사 배웠던 1년 내내 관심을 독차지했었다는ㅋㅋㅋㅋ

근데 선생님께선 36대손이시라 항상 항렬 얘기 나오면 급 말 돌리셨었다는거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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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4 18:45:33추천 0
가슴을 데인 것 처럼 눈물에 패인 것 처럼 지워지지 않는 상처들이 괴롭다

내가 사는 것인지 세상이 나를 버린건지

하루가 일년처럼 길구나

그 언제나 아침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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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5 01:07:48추천 0
연안 김씨 좌군사정공파 25대손입니다  아아 연안김씨 레어한디  위에 한분계시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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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1
2010-02-05 01:49:23추천 1
한 20년만 지나면 할아버지들 다 돌아가시고 족보같은건
따지지도 않는 세상이 올겁니다.
족보는 무슨..

요즘은 친척들하고도 연없어요.
핵가족 시대라 아버지 세대나 삼촌 큰아바지지
내 세대가 늙으면 친척따윈 없는 겁니다.
다 하나 둘 독립세대 가정..

아무 30년 후에는 제사, 명철날 차례 같은것도 안지내게 될겁니다.
그런날 다 놀러가죠.

30년 안에 거의 다 바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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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5 12:10:14추천 0
김해김가의 사면파 45대손인데
김해김가 사면파이신분 손좀들어주세요
안밝히고살아서 그런지 저랑같은파는 친구정도밖에없네요;[그나마도 이사간...]
이글보면서 자기파모르는사람 있다는데놀란;
아빠가 그건외워야한다고 해서 외우긴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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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5 15:21:58추천 1
사실 고려사 초에 정지상-김부식 이야기보다 더 유명한 얘긴 별로 없죠... 일단 위에서 사전적인 정의를 긁어와주신 분이 계시니까 저는 사소한 얘기만 하겠습니다...

김부식 - 당시 대표적인 유학자.. 특히 경전학자였습니다. 조선시대 일반적인 사대부 수준은 아니었지만 상당한 유교 원리주의자로 중국중심의 천하관을 지지했었습니다.

(※사실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한반도 국가는 주체적인 천하관을 갖고 있었습니다. 신라, 고려 모두 스스로를 이름이나마 '황제국'으로 칭하였지요.)

한편...

정지상 - 당시 대표적인 관료이자 학자기는 하였지만 김부식과 같은 경전학자가 아닌 문인이었습니다. 김부식이 삼국사기 등 학술적 저술로 유명하다면 정지상은 '시'로 끝장나게 유명합니다. 유의하고 보시면 고대국어 배우실때 이분 이름을 많이 찾아볼 수 있죠.

(쩝... 사족이지만 정말 정지상은 시를 잘씁니다. 언젠가 送人이라는 시를 배웠는데, 정말 수백년이 지난 현대에서도 이런 시 보긴 힘들정도로 잘썼더군요. 덜덜)


다들 아시겠지만, 유학에서도 경전주의와 작시 실력을 보는 견해는 상당히 오랫동안 대립해왔습니다. 조선시대때는 경전 중심으로 과거를 보자는 원리주의자, 개혁파와 글 실력을 중심으로 과거를 보자는 집권파 세력이 갈등하기도 했지요.

문제는 그들이 살던 시대는 고려시대... 역시 다들 아시겠지만 고려시대는 정치일선에서나 유학이 쓰였을 뿐 지배적인 사상은 결국 불교였습니다. 불교의 교리에 따라 일반적인 생활상이 상당히 자유로웠던 고려인들에게 생활을 규제하고 복잡한 규칙을 세우는 유학은 상당히 인기가 없었습니다.

그 결과 당시 비교적 대립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던 두 학자였으나 일반에 훨씬 인기가 많았던 것은 정지상이었습니다. 시도 잘쓰고 그다지 유교적이지도 않았기에...

그래서 실제로 당시에 떠돌았던 둘의 관계에 대한 내용은 대개 시 잘쓰는 정지상에 시 못 쓰는 김부식이 항상 열폭하는 식으로 되어있습니다. 뭐 근데 김부식도 시 잘쓰는게 좀 부러운지 정지상에게 '야 니 시 내가 쓴 것처럼 하게 나한테 주면 안되냐?' 라고 말했더라는 기록도 있지요.

아무튼 친중적, 관료적, 유학자적 입장을 취했던 꼴통 이미지의 인기없는 김부식과 시 잘쓰는 자유로운 고려인 정지상의 라이벌 관계는 사실상 항상 갑을관계를 유지한채 흘러가게 됩니다.

(※이러한 라이벌 구도는 심지어 수백년후 단재 신채호선생에게도 그대로 계승되었죠. 신채호 선생은 김부식을 사대주의 꼴통 보수파의 화신으로, 이와 대립되는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을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항쟁으로 주장하십니다. 물론 현대 학계에서는 서경천도운동도 결국은 기득권계층의 헤게모니 싸움으로 보는 시각이 정론입니다만.)

그리고 결과적으로 김부식과 정지상의 라이벌구도의 막을 내리는 대망의 서경천도운동이 발발합니다. 당시 서경인이었던 정지상은 당연하게도 묘청에게 붙죠. 한편 딱히 서경인이 아니었던데다가 정지상과 사이가 좋을게 없던 김부식은 개성의 정부군을 이끌고 서경천도운동을 진압하는 지휘관이 되어 출동합니다.

뭐 서경천도 얘긴 다 끊고 결과만 보자면 어쨌든 서경천도운동은 정부군에 의해 완벽하게 진압되죠. 이 결과로 인해 정지상의 집안은 풍비박산 나버리고 김부식과 그 집안은 이자겸도 없어지고 정지상도 없어지자 무인시대가 시작되기 전까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승승장구합니다.

(쩝.. 사족이지만... 그 권력 폭주는 결국 경주김씨의 새파란놈이 노장군의 수염에 불을 붙이는 짓을 해버림으로써 끝나게 되어버리죠.)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평소 좋아하던 사람은 정지상이라... 정지상이 죽은 다음에도 사람들은 정지상을 동정하며 김부식에 대한 짓꿎은 얘길 수없이 만들어냅니다. 뭐 김부식이 어느날 시를 지었는데 정지상 유령이 나타나서 뺨을 철썩치며 '그건 그게 아니지 멍청아' 라고 호통쳤다던가...

결과적으로 김부식이 사망하자 심지어 사회 일반에서는 김부식은 정지상 유령이 괴롭혀서 죽었다더라... 는 얘기도 남아있을 정돕니다.


※사족... 사실 김부식이 정지상에게 열폭했다고는 하지만 서경천도운동은 어쟀든 지배층의 밥그릇 싸움이었던건 사실이고 그 싸움이 숟가락 올려놓은 정지상도 좋다고 할 순 없겠죠. 김부식이 정지상 집안을 풍비박산내긴 했다지만 사실 이 싸움에서 서경파가 이겼으면 정지상이 경주김씨를 가만 놔뒀을까요? 게다가 역사적으로 '묘청의 난'이라고 기록되어있으니만큼, 역사적으로 난 주모자와 그 집안을 가만놔두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그, 근데 이 사족은 내가 경주김씨라서 다는게 아닌... 대장군공파는 김부식 직계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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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5 18:13:00추천 0
아 내 배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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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9 06:01:48추천 0
당사자는 심각할텐데.. 죄송하지만.. 너무 재밌어요..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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