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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우유를 먹지 않는 이유.
게시물ID : military_3350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여름하늘
추천 : 15
조회수 : 1242회
댓글수 : 27개
등록시간 : 2013/11/02 06:27:25


 나는 우유로 만든 음식이 좋다.
 밀크티와 커피를 즐겨 마시고 치즈와 버터에 환장하며 밥보다 빵이 더 좋다.
 하지만 아무것도 첨가되지 않은 '우유' 그 자체로는 절대로 마시지 않는다.
 흰 우유 그대로를 먹으면 몇시간 지나지 않아서 설사를 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유당불내증이니 소화효소니 하는 어려운 이야기는 다 집어치웠다. 그냥 안마시면 되는거 아닌가?
 그렇게 우유를 멀리하고 지낸 지 21년째 되던 여름, 나에겐 크나큰 시련이 닥치게 되었다.

 살인적인 햇볕이 대지를 달구던 어느 여름, 나는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훈련소에 입소했다.
 훈련병들의 실수만을 기다리고 있는듯 한 사나운 분위기나 시커먼 남정네들만 있는 곳에서 2년을 보내야 한다는 괴로움, 혹은 외부와 단절된것에서 오는 고독함.... 이런것들은 충분히 각오하고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주기적으로 아침에 우유가 나온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게 했다.
 
 처음에는 마시지 않았다. 식판을 검사하는 매서운 조교의 눈초리를 피해 몰래 가지고 나가서 버리거나 동기에게 떠넘기는 식으로 처리했다. 그러나 내  식판에 다 먹은 우유곽이 없다는 이유로 한번 걸리게 되자 가지고 나가서 처리하는 것이 힘들게 되었다.
 게다가 찌는듯한 더위속에서 식중독을 예방한다는 미명하에 훈련병들에게 뜨거운 물만을 제공하는 가혹한 사태에 나는 결국 굴복했다.
 그래. 나는 우유를 마시고 말았다.


 우유를 마신 그 날은 사격이 예정되어 있었다.
 사격장은 민가와 가까워선 안된다고 들었기에 대충 예상은 했지만, 왕복으로 세시간이 넘게 걸린다는 말에 출발도 하기 전에 전신이 무겁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설마... 하며 마셨던 그것은 내 뱃속에서 다른 음식물의 잔해와 만나 한마리의 악마가 되어 날뛰기 시작했다. 
 나는 빌었다. 내 기억의 가장 오래된 잘못인, 엄마 지갑에서 몰래 천원을 거내다가 오락실을 간 것부터 시작해서 초코파이와 오예스를 놓고 종교를 저울질했던 것 까지... 나의 모든 죄를 위대한 존재에게 참회하며 빌고 또 빌었다. 이 죄인의 괄약근에 인내를 허락하소서...

 나의 기도가 내 안의 악마를 조금 잠재웠던지, 사격장까지는 커다란 고통 없이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격장에 도착하자마자 중대장은 사격장에서는 엄정한 군기를 유지해야 한다는 내용을 삼십분에 걸쳐서 훈련병들에게 주입시켰고, 내 몸에 군기가 주입될수록 내 안에서 무언가가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쳤다.
 연설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는 조교에게 애원했다. 제발 화장실을, 아니 화장실이 아니라도 좋으니 제발 나에게 잠시의 여유를 달라고. 그러나 나는 1중대 1소대 13번 훈련병이었고, 나에게 아주 잠깐의 시간이라도 허락되는 것은 내가 사격을 끝낸 뒤가 될 것이란 말을 들었다.
 사격때까지 버텨보자는 내 결심은 3분도 지나지 않아서 PRI라는 지옥을 만나 산산조각났다.. 내부의 지옥과 외부의 지옥. 그 중간에서 나는 고통받았다. 1초가 영원같던 고통의 지옥 속에서, 나는 선택해야 했다. 그때 내 상황에 처한다면, 누구라도 나를 비난할 수 없으리라.

 전진무의탁 자세에서 나는 그대로 총기를 놓아버리고 단독군장도 벗어버리며 그대로 풀숲으로 뛰어들어갔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다들 당황했는지 아무도 나를 저지하지 않았다. 이윽고 풀숲에 쪼그리고 않은 나를 향해 조교가 "13번 훈련병! 지금 뭐하는 짓인가!!"라며 무시무시한 기세를 뿜어내며 다가왔지만, 내 뒤로 뿜어지는 그것의 기세 또한 조교의 기세에 전혀 밀리지 않았기에 팽팽한 힘의 균형 가운데서 나는 안정적인 자세로 내 안의 악마를 외부로 내보낼 수 있었다. 
 조교는 나를 보며 분노와 당황과 측은함이 뒤얽힌 복잡한 눈빛을 보내다가 잠시 사라져서는 손에 성스러워보이기까지 한 순백의 두루마리 휴지를 가져와 나에게 건네고 내가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기도 전에 말없이 뒤돌아 사라졌다. 

 그 후, 당연히 나는 하루종일 PRI라는 명목 아래 이루어진 가혹행위를 온 몸으로 체험하며 굴러야 했고, 나는 훈련소를 나가는 그 날 까지, 똥쟁이라는 오명이 내 이름을 대신하는 굴욕을 겪어야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뒤로 나는 우유를 절대 마시지 않았다. 하지만, 비록 마시지는 않더라도 하얀 우유를 볼때면 그 조교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빡빡한 조직의 규율 속에서도 인간적인 연민 한조각을 간직했던 그 따뜻했던 뒷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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