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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로를 따라 그냥 편하게 몸만 맡기면 될 일
목적지로 향하는 지하철은 속절없이 빨랐고
넓은 세상으로 나가야 할 시간이 성큼 온다
씨앗에서 발을 내민 싹처럼 지상의 뜨거운 빛 쫓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시작부터 오르막 형상인 계단을 이용하는 것이다
가장 익숙한 1호선에서 유년기의 끝이란 게 그렇다고 생각했다
앞으로가 지금이 된 여기까지 그늘뿐이었으니
그 품에 묻혀 몰랐던 나 자신의 그림자를 마침내 확인한다고
머리가 무거워진 탓에 인파 속에서 잠시 멀거니 서 있었다
진과 면티, 모던한 백팩을 맨 어디서나 보일 법한 청년이다
예정대로 맞는 정거장에서 내린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지만
그런 흔한 순간에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도져 긴장될 때가 있다.
사람들은 웅성거린다
제각기 다른 사연들이 섞여 무슨 말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지만
그 소리가 사는 게 바쁘다는 것만은 분주한 발소리로 통한다
드디어 계단을 오른다
몇 발자국도 안 가 경사로에서 언뜻 비추는 여름 하늘이 눈부셨다
벌써 그늘이 그리워 고개를 떨구자, 밟을 뻔한 개미 한 마리가 있었다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길의 초입부터 살생과 동시에 발돋움했다면 난 좀 울었을 것이다
방향감각을 잃었는지 이리저리 박치기하느라 무리 못 찾아가는 녀석 같기에 도와주고 싶기까지 했다
그렇게 오르는 계단에서 본 개미를 밟을 뻔한 날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