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아스 급 대형전함 '리오 그란데'는 휴페리온,율리시즈와 함께 자유행성동맹군을 대표하는 전함입니다. 전장 1260m. 전폭 72m. 전고 358m. 승무원 1216명이 탑승하는 이 거함은 생전의 활약과 이 함선을 기함으로 삼은 알렉산드르 뷰코크 원수의 고귀한 삶으로도 유명하지만 그 외에도 자유행성동맹군의 전함 건조의 역사에도 한 획을 그은 명작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리오 그란데는 모듈 건조 방식으로 입맛에 맞추어 함선을 설계할 수 있는 아이아스 급 대형 전함의 5번 함으로서 개발진이 염두에 두고 있었던 새로운 방식의 설계를 적용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겨졌던 함선입니다.
제3함대 기함으로 배치된 쿠 훌린이 기동성 확보를 위한 과도한 무게 감소와 각종 부작용으로 시달리던 것을 감안하여 이번에는 화력에 중점을 두자는 의견이 채택,모두의 관심은 선수 부분의 주포로 집중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40문이나 장착되어 있는 중성자 빔포의 수를 더 늘리는 것은 의미없는 일이었고 앞으로 건조할 아이아스 급 대형 전함에 적용할 정식 모듈이 되기 위해선 확실한 효과를 가지고 있어야만 했습니다.
결국 설계자들과 개발진은 제국의 전함에 눈을 돌렸고 SS75형과 같은 표준 전함들이 동맹의 787년형 표준 전함과 달리 포문이 줄어드는 대신 대구경 중성자 빔포로 화력과 사거리를 확보하는 것을 반영하기로 결심합니다.
곧바로 개발진은 선수의 중성자 빔포 모듈의 개량에 착수했고 기존의 아이아스 급보다 길이가 약 2배에 달하는 중성자 집속 장치의 설치와 냉각 장치,그리고 출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표준적으로 1159m를 유지하고 있던 함체가 1260m까지 늘어나게 되었으며 이는 제국과 동맹군이 보유하고 있는 전함을 통틀어 가장 거대한 크기였습니다.
하늘이 도운 탓인지는 몰라도 이러한 새로운 모듈의 설치에 대해선 부작용이 거의 없다해도 좋을 정도로 작업이 술술 잘 풀려갔고 매우 의욕적인 추가 개량 작업에 따라 파트로클로스를 포함한 기존의 아이아스 급 전함보다 운용 인원을 10명 이상 줄여도 될 만큼 매우 안정적인 항해와 모의 전투가 가능했습니다.
리오 그란데의 건조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덕분에 이후 추가적으로 건조될 아이아스 급에는 되도록이면 다른 검증되지 못한 기능 대신 이 장포신 모듈을 장착하도록 권장되었고,
이후 페잔으로부터 제국이 진행중이던 새로운 중성자 빔포 개발 프로젝트의 핵심 기술이 대거 유출되어 이를 반영, 아킬레우스나 디오데메스 같은 후기형 아이아스 급 대형 전함에는 제국의 기술로 만든 신형 중성자 집속 장치를 도입하여 외형의 변화 없이 리오 그란데와 동급의 사거리를 확보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기함에 이러한 기술을 적용한다 해도 수만척 대 수만척이 격돌하는 전장에서 거의 의미가 없다는 점이 종종 문제로 거론되긴 하지만 대형 전함에 먼저 시험 적용한 기술을 양산을 위해 만들어진 표준형 전함에 적용하는 것은 그동안 제국군의 여러 함선을 통해 많이 보아왔던 모습입니다.
비록 동맹군은 여유가 없었기에 이렇게 진보된 기술을 기함 급에만 적용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처음부터 의미가 없었던 행동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지요.
동맹군 특유의 기형적인 다포문 대형 전함들을 제외한다면 리오 그란데는 제국과 동맹을 통틀어 가장 거대하고 강력한 전함이지만 바라트 강화 조약 이후 제국군은 리오 그란데를 다른 아이아스 급과 동일시하여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제국군이 동맹 점령 직후 가장 먼저 폐기 처분한 대형 전함은 트리그라프나 아가트램과 같은 '한눈에 봐도 강해보이는' 함선들이었고 리오 그란데의 폐함 공정 순번은 날이 갈수록 점차 뒤로 밀려나게 되었지요.
그리고 이렇게 시간이 흐르는 사이,겨우 살아남은 괴수는 지친 몸을 이끌고 최후의 싸움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우주력 800년,신 제국력 2년,버밀리온 성역 회전 직후 퇴역했던 알렉산드르 뷰코크 원수는 동맹 우주함대사령부를 방문하여 현역 복귀를 요청했습니다.이전부터 우주함대사령부의 현역 복귀 요청이 다수 있었음에도 뷰코크 원수는 노환을 이유로 지속적으로 거부 의사를 밝혀오고 있었지만 제국과의 함대 결전이 다가오자 내린 어려운 결심이었지요.
한줌도 안되는 자유행성동맹 함대를 이끌고 제국의 주력 함대와 싸운다는 것은 자살 행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지만 '납득할만한 최후의 싸움을 해보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피는 계속 흐를 것이다'라는 판단 하에 동맹 함대의 화려한 최후를 맞이하고자 뷰코크 원수는 참모장인 충 우 첸과 함께 준비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이 전투는 말 그대로 동맹군의 죽을 자리를 찾는 일이였고 뷰코크 원수는 '이번엔 30세 이하의 애송이들은 끼워줄수 없겠군,이건 어른들만의 파티이니까 말이야'라는 말과 함께 젊은 인재들을 함선에서 내리게 한뒤 치밀한 작전을 세워 제국군의 눈을 피해 빼돌린 5,500척 이상의 군함과 각종 물자와 함께 양 웬리에게 보냈습니다.
정확한 기록은 남지 않았지만 뷰코크 원수가 최후에 동원한 병력은 군함 2만~2만 2천척,병력 230~250만 정도이며 이들 모두가 위대한 노장과 자유행성동맹의 마지막을 위해 자진하여 싸우러 나선 이들이였습니다.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본인은 이 동맹군 잔존 함대를 피하고 바로 하이네센으로 향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는 상황에서 알렉산드르 뷰코크 원수를 맞이하여 함대 결전을 치룰 준비를 하는데, 이는 당시 로이엔탈 원수가 말했던 '자유행성동맹의 장례식'이라는 표현을 통해 이 전투가 의미하는 바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알렉산드르 뷰코크 원수가 선택한 전장은 말 아데타 성역.
무수히 많은 소행성들이 늘어서 있는 곳이며 불안정한 소행성들이 시도 때도 없이 폭발을 일으키는 것은 물론 항성풍으로 인해 에너지 폭풍과 각종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어다니는 최악의 전장으로서 뷰코크 원수가 이끄는 2만의 전투함대는 유일하게 안전한 지역이라 할수 있는 회랑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제국의 대규모 함대가 동시에 작전을 펼치기엔 너무나도 위험한 장소였기 때문에 로이엔탈과 미터마이어는 최고의 전장을 선택하는 안목에 감탄했고 신중하게 공격에 나섰습니다.
1월 16일 10시 30분. 제국군이 동맹군을 향해 첫 포문을 열면서 시작된 말 아데타 성역 회전은 당일 20시 30분까지 양 측 모두 한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를 물어뜯었고 로이엔탈 원수는 소행성 지대를 돌파하고 회랑으로 들어서자 마자 말 그대로 녹아내리는 제국군 함대를 보며 추가 병력 투입 시점을 선택하느라 큰 고심에 잠겨있었습니다.
동맹군은 뷰코크 원수의 노련한 지휘에 따라 엄폐 포격,적의 기관부 저격,동남풍(?)등 다양한 전술적 행동을 통해 숫적 열세를 극복해나가던 중 랄프 칼센 제독이 제국군의 후방을 공격함과 동시에 항성풍의 변화로 제국군의 본진이 노출되자 뷰코크 원수는 최후의 돌격을 감행합니다.
2만여척의 전함이 모두 온전한 상태였다면 이 마지막 돌격은 성공적으로 끝날수도 있었겠지만 바라트 강화 조약으로 인해 787년형 표준 전함과 항공모함의 대다수가 폐기되고 이제 막 건조되어 1~2차례의 시험 운행만 끝낸 함선과 너무 낡아서 제대로 작동할까 의문이 들 정도의 함선등,
그야말로 있는데로 없는데로 다 긁어모았던 군함들이었던 만큼 얼마 지나지 않아 뷰코크 원수는 공세종말점에 도달하고 맙니다.
결국 칼센 제독은 뮐러와 파렌하이트 함대의 사이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뒤이어 도착한 슈바르츠 란첸레이터의 맹렬한 공격에 노출됨에 따라 23시 10분에 기함 디오메데스가 격침되면서 전사.
곧바로 동맹군의 진형이 붕괴되면서 뷰코크 원수는 휘하 함대의 개별적인 퇴각을 허가함과 동시에 도주로를 확보하고 시간을 벌기 위해 자원해서 남은 극소수의 전함들과 함께 마지막까지 전장에 남게됩니다.
1월 16일 23시 30분. 제국군 참모총감 힐데가르트 폰 마린도로프의 제안을 수용한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은 미터마이어 원수를 통해 동맹군에게 항복을 권고하였고 그 어느 누구도 답신을 기대하지 않았지만 뷰코크 원수는 통신에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카이져 라인하르트 폐하,당신의 재량과 기량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손자를 갖는다면 당신같은 사람이 딱 좋겠지. 하지만 나는 당신의 신하는 될수 없다.이는 양 웬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며 타인의 일이지만 보장해도 좋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대동한 친구를 만드는 사상이지 군신 관계를 만드는 사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좋은 친구를 가지고 싶고 다른 이에게 있어서 좋은 친구가 되고 싶다. 하지만 좋은 주군이나 좋은 신하가 되고 싶진 않다.
제국 함대는 곧바로 일제 포격을 감행했고 자유행성동맹군의 마지막 기함 리오 그란데가 격침되면서 160년 이상의 전통을 자랑하던 자유행성동맹 우주함대는 노장과 함께 최후를 맞이합니다.
이 최후를 지켜본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은 모든 제국 장병들에게 리오 그란데의 잔해를 지나갈때 기립,거수 경례를 하도록 지시한 뒤 이 전투를 마무리합니다.
자유행성동맹군 우주함대사령장관 알렉산드르 뷰코크 원수.
자유행성동맹군에 사병으로 입대. 우주력 745년 제2차 티아마트 성역 회전,월리스 워릭 중장이 이끄는 제5함대 휘하의 전함의 포술 장교로 참전.당시 계급 중사. 우주력 794년 반플리트 성역 전투,동맹군 제 5함대의 사령관으로 참전,당시 계급 중장. 우주력 796년 암릿처 성역 회전 참전,대장 진급 후 우주함대사령장관으로 취임. 우주력 799년 2월 8일,제1차 란테마리오 성역 회전 참전,원수로 진급. 우주력 799년 5월 25일 바라트 강화 조약 체결 직후 퇴역,이후 제국의 선전포고와 동시에 현역으로 복귀. 우주력 800년 1월 16일 말 아데타 성역 회전 참전,전투 당일 74세의 나이로 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