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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게시물ID : movie_337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레이블
추천 : 0
조회수 : 2118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1/09/24 23:06:37
약자라는 이유로 더럽고 추악한 현실을 온몸으로 느껴야했을 작고 어린 것들의 아픔을 느끼면서도 나는 어느새 눈을 뜨고 귀 기울이며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지를 마음 속으로 저울질 하고 있었다. 인호의 엄마가 그에게 어떻게 옳은 말만 하고 옳은 행동만 하면서 세상을 살 수 있느냐고 묻는 순간,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픈 딸과 어려운 현실 속에서 애써 마주한 '진실'을 외면하려는 인호의 모습은 가슴 시린 공감으로, 또 하나의 질문으로 가슴을 쿵쿵 두드렸다. 시종일관 차분하고 담담하게 흘러가는 흐름 속에서도 가슴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격한 분노를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은 원작소설이나 지금 영화를 본 많은 이들 중에서도 '순응'이라는 말로, 마주서야할 것들을 외면한채 합리화하는 경우를 숱하게 목격해왔기 때문이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도시, '무진'의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위선적인 현실에 순응하다가 어느샌가 비상식의 일부가 된 이들이다. 그래서 알고도 모르는 척 듣고도 못들은 척하며 심지어는 사실을 왜곡 하기 위한 갖가지 수단들을 동원하며 끝내는 '없는 것'들의 '모자람'에 조소를 내비치는 것으로 그들의 화려하게 완성된 가면에 정점을 찍는다. 전관예우 변호사, 부패한 경찰, 양심의 가책조차 느끼지 않는 가해자들, 그리고 그것들과 가장 잘 어울리는 형태로 변모하는 종교적 신념과 기독교인들의 역겨운 모습들까지. 이 거짓과 비상식, 위선이 한데 섞여 도가니처럼 들끓고 있는 '무진'이라는 도시는 지금 우리가 발 붙이고 살고 있는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포털 메인에 걸리는 자극적인 사건들로, 삶을 포기할만큼 지친 사람들을 보며, 인간의 존엄을 위협하는 가난이라는 벽, 그 불안 앞에서 미쳐 돌아가는 광기의 현실을 마주한다. 그러나 이내 무감각해진다. 가끔은 충돌하다가 불쑥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갖가지 치장을 하는 것만으로도 바쁘고 피곤하다. 그것이 진실이라고 해도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세상에서 지독히 부조리한 현실과 지극히 이상적인 도덕사이의 간극은 어느샌가 '불편한 진실'이라는 말로 그 부질없음을 드러낸다. 안개가 현실을 온통 뿌옇게 덮어 한 치 앞도 볼 수 없게 만들더라도 빛을 잃지 않겠다는 다짐이 정작 안개속에서 하나의 빛으로 남게 될 때 얼마나 부질없어지는지. 그래도 그 빛들이 모이면 다시 대항할 힘이 생긴다는 것을 알기에. 여전히 그 안개를 뚫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더라도 불편함을 감수하고 빛을 내려는 노력은 그 존엄함을 보여준다는 것을 알기에. "이 아이는 민수라는 아이입니다. 이 아이는 말하지도 듣지도 못합니다." 마지막에 공허하게 울려퍼지는 이 말이 그 어떤 말보다 큰 의미로 다가오는 것은 이것이야말로 포장되지 않은 날 것의 몸뚱아리이자 진실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일을 당했을 때 아무 것도 못했다고 말했던 인호가 민수를 대신해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 또한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들을 수도 볼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마음으로 볼수 있다는 헬렌 켈러의 말처럼 도처에서 보여주려는 것, 또 진실과는 상관없이 그렇게 믿고자 하는 것을 구별할 수 있는 부지런한 마음을 가지고 싶다. 그래서 정당한 분노의 힘을 스스로에게 증명할 수 있는 순간이 올 때, 나도 손을 잡고 같이 외치고 싶다. 껍데기 속 무엇보다 반짝이는 것을 위해서. 나의 서툰 감상은 유아적 반항으로, 숨이 막히고 심장이 벌렁거렸던 순간의 단상은 언젠가 사라지게 되더라도 극 중 유진이 말했던 문장 하나만큼은 마음 속에 새기고 살아가고 싶다. "우리가 싸우는 이유는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우리를 바꾸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p.210 연두야, 이제 네 차례야. 그래, 선생님이 솔직히 말할게. 이거 어려운 싸움이야. 진실은 말이야, 그걸 지키려고 누군가 몸을 던질 때 비로소 일어나 제 힘을 내는 거야. 우리가 그걸 하찮게 여기고 힘이 없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정말 힘을 잃어. 연두야, 네가 용기를 주어야 해. 진실에게 그리고 유리에게...... 넌 할 수 있어. p.227 하지만 가끔 우리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모두 아버지를 기억했어. 참 착하고 좋은 분, 훌륭한 목사셨다고. 사춘기 무렵부터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생각했어. 왜 세상에서는 착한 사람이 맞고 고문당하고 벌받고 그리고 비참하게 죽어가나? 그럼 이 세상은 벌써 지옥이 아닐까? 대체 누가 이 질문에 대답해줄 것인가? 누군가 그러더라. 엄마였던가, 선생님이었던가, 아님 아버지와 친분이 있는 다른 목사님이였던가... 아니면 그 사람들이 모두 그랬던가. 열심히 공부하고 그래서 어른이 되면 모든 것을 알게 될 거라고. 그리고 나도 그 말을 믿었지. 그런데 얼마 전, 자애학원 사건을 접하면서 나는 깨닫게 된 거야. 어른이 되면 그 대답을 알게 되는 게 아니라, 어른이 되면 그 질문을 잊고 사는 것이라고 말이야. 이제 나는 정말 그 질문에 대답하고 싶어. 그렇지 않다면 내 아버지의 삶도 연두와 연두 아버지도 너도 나도, 우리의 삶은 정말 꾸드러빠진 떡조각처럼 무의미해질 거야. 가난한 것도 두렵지 않고 고통도 그리 무섭지 않아. 내게 가해진 모든 평판들 소문들도 자기네들끼리 실컷 지껄이라지. 하지만 의미가 사라지는 것. 뭐랄까, 우리의 삶이 그냥 먹고 싸는 것, 돈을 모으고 옷을 사고 하는 그 너머의 무엇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이야. 나는 확신하고 싶어. 그렇지 않다면 살아가는 걸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p.291 진실이 가지는 유일한 단점은 그것이 몹시 게으르다는 것이다. 진실은 언제나 자신만이 진실이라는 교만 때문에 날것 그대로의 몸뚱이를 내놓고 어떤 치장도 설득도 하려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진실은 가끔 쌩뚱맞고 대개 비논리적이며 자주 불편하다 진실 아닌 것들이 부단히 노력하며 모순된 점을 가리고 분을 바르며 부지런을 떠는 동안 진실은 그저 누워서 감이 입에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가의 말 미화된 언어나 진주를 꿴 듯 아름답게 포장된 '말'처럼 가증스러운 것은 없다. 진정한 시에는 가식이 없고, 거짓 구원도 없다. 무지개빛 눈물도 없다. 진정한 시는 이 세상에 모래사막과 진창이 있다는 것을 안다. 왁스를 칠한 마루와 헝클어진 거친 손이 있다는 것을 안다. 뻔뻔스러운 희생자도 있고, 불행한 영웅도 있으며 훌륭한 바보도 있다는 것을 안다. 강아지에도 여러 종류가 있으며, 걸레도 있으며, 들에 피는 꽃도 있고, 무덤 위에 피는 꽃도 있다는 것을 안다. 삶 속에 시가 있다. 영화가 끝나고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졌다. 지금 이 시간 관객들의 정의감과 순간의 분노는 영화관 밖으로 나가는 순간 곧 휘발되어 금새 무관심으로 변해갈 것이고, 도가니처럼 들끓다가 곧 식어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역시 거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서글픈 현실이 떠올랐다. 동시에 지나치게 패배주의적인 생각을 하고 있진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곧 식어버릴 관심들이기 때문에, 스스로의 도덕성을 돌아보게하는 그런 불편함을 주기 때문 에 영화가 저평가 될 수는 없으며, 이 영화는 바로 그 지점에서 빛을 발한다고 생각했다. 이 사건이 알려지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대중의 힘에 신뢰를 보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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