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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고 지치고 힘듭니다 죽고싶네요.
게시물ID : humorbest_33834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ㅁㄴㅇㄹΩ
추천 : 101
조회수 : 6595회
댓글수 : 14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1/03/11 10:29:56
원본글 작성시간 : 2011/03/10 05:25:56
올해 나이 24살이네요.

대학은 1학년 1학기때 자퇴..(유도부로 유명한대학 공대였습니다...) 자퇴 이유는

원래 공대가기싫었고 집안사정도 여의치않았고 여러가지 복합적인이유로 1학년1학기다니고 자퇴했습니다.

19살때 군대를 입대해서(제가 빠른88이라 군대를 좀 일찍다녀왔습니다)21살때 제대

21살때부터 안해본일 해본일없이 다 해봤습니다

회사생활부터 나이트 접대부까지.....지금은 그냥 조그만 바에서 일하구있구요......

월급은 일하는 시간에 비해서 굉장히 많이받습니다. 주 40시간 정도일하는데 약 100만원정도 받습니다

그 외에 낮에 따로 회사 다니고있구요......

하루 평균 수면시간은 3시간에서 4시간정도....

그냥 부모님 얘기부터 하고싶네요.

어릴때부터 아버지에게 학대받고 자라왔습니다

초등학교땐 아버지에게 너무 많이 맞아서 탈모증상까지왔구요

중학교땐 외고가 가고 싶었는제 집안 형편이 여의치않아서 포기했습니다.

고등학교때는 아버지가 니까짓게 대학나와서 뭐하겠냐고 하면서 억지로 실업계로 보내셔서 결국

공고를 갔습니다. 공고 졸업때즈음, 이렇게 살면안되겠다 싶어서 인문대학을 가려고 공부를했지만

성적이 생각보다 좋지못해서 (언2 외1 수3) 실업계전형으로 인하대학교 공대를 갔구요.

입학후 어머니,아버지에게 재수를 하고싶다, 나 공부한번도 안해봤는데 독학 1년으로 이렇게 공부해서

저정도 성적이면 좋은편아니냐, 1년만 믿고 뒷바라지해줘라 라는 말을 처음으로 했습니다.

그때부터 제 인생은 시작이었죠, 수능끝나고 원서접수도 제대로못하고, 매일 막노동해서 대학교 학비벌고

남들 다 하는 ot,mt이런건 가본적도없습니다. 학교는 자연스럽게 아웃사이더. 원래 가려했던 인문계열쪽은

생각도못하고 결국 부모님과 합의끝에 군대갔다와라. 너 군대갔다오면 그래도 집안 형편좀 괜찮이지지

않겠느냐, 너 군대갔다와서 대학공부도 다시한번해보고 우리 열심히 살아보자. 이말에 속았습니다.

19살에 간 군대에서는 적응도 못하고 하필이면 걸린곳은 수색대. 어린나이에 자원입대해서 매일

개맞듯이 맞고 전역. 이미 심신은 피폐해질만큼 피폐해져있엇지만 군대에서 제가 버틸수 있엇던 이유는

사회나와서 그토록 하고싶었던 공부, 그 공부 하나에 모든걸 매달고있엇습니다.

그리고 군 전역, 전역하고 바로 다음날 아버지께서 하시던말씀은 딱 하나였습니다

나가, 이 개xx만도 못한새끼야 니같은게 무슨 자식새끼라고. 군대있으면서 월급모아서 남의 자식들은

부모 선물도 사온다더라 이 개새끼야 꺼져 내눈앞에서 사라져 다신 보이지마

하하하, 정말 아무것도 할말이 없더라구요. 차라리 인간관계라도 넓었으면, 하지만 아무것도 제 주위엔

없었습니다. 그때부터가 정말 생 지옥이었죠. 다행히 친구녀석이랑 같이살면서 낮에는 회사 밤에는 알바

새벽엔 학원을다니며 토익점수도 올리고 돈도 한푼,두푼모아가는 재미가 쌓일즈음, 어머님이 찾아왔습니다

집에 들어가자. 여기서 힘들게 이게 뭐하는거냐. 그래도 가족끼리 살아야되지않겠느냐. 어머니가

눈물흘리면서 제게 간청하는데 차마 내칠순없었습니다. 그때부터 다시 지옥의 시작이었죠

그렇게 산지 정확히 3개월무렵. 여전히 알콜중독이신 저희 아버지께서는 회사와 아르바이트에 찌들어서

쓰러진 저를보며 5kg짜리 아령을 집어던지셧습니다. 편도선염과 페렴때문에 회사도 병가내고 아르바이트도

1주일동안 쉬고있던 저에게 그저 지 에미 생일도 모르고 세상편하게 낮잠자는 씨발새끼 라고 하며

5kg짜리아령을 집어던지셧고 전 골반뼈가 부러졌습니다. 차라리 생판 모르는 남이 그랬으면 합의금이라도

받았을텐대 아버지가, 저희 아버지가 아파서 쓰러진 저에게 그랬습니다. 매일 되지도 않는가게

한달에 100만원이 넘는돈 어머님께 드리고 전 한달에 20만원내외로 쓰면서 버텼는데 

정말 처음으로 죽고싶다, 라는생각을했습니다. 그때 첫 여자친구를 만났네요. 제게는 여신같던 그녀

전 병원입원치료후(2개월) 퇴원해서 바로 집을 다시 나왔습니다. 그 후 여자친구와 동거했죠.

여자친구는 제 그런모습도 사랑해줬습니다. 제겐 첫여자였고 저를 사랑해줬던 그녀와의 행복한 시간이 

끝날때즈음, 어머니는 다시 또 찾아왔습니다, 집에들어가자고. 다시는 그런일 없을거라고 

저는 바보같이 또 속았습니다. 왜 그때 집에 기어들어간건지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그때 그냥 나왔더라면

평생 인연을 끊고 살았더라면 좋았으련만, 집에 다시들어갔습니다. 가관이더군요. 집에 빚은

이미 2천만원이 넘게있던상황이었고. 전 약 1년 6개월동안 모아둔돈을 드렸습니다. 어머니 이걸로 빚갚으세

요 남은돈은 제 학원비,생활비로 쓰겟습니다. 그냥 제가 제 힘으로 대학교 가겠습니다. 라고 말씀드리고

작년 6월부터 공부를시작했죠. 뒤늦게 시작한 공부였지만 정말재밌엇습니다. 하지만 역시 제겐 불행이

비켜가지않더라구요. 집안 빚을 갚아드렸더니 음주운전사고, 다행히 경미한 사고였지만 아버지는 음주상태

합의금역시 제 학원비와 생활비에서 나갔고 전 정말 아무것도 가진게 없게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니는 쓰리져서서 어머니 병원비까지. 그래도 사회생활하면서 딱 하나 다짐한게

분수에 맞지않게쓰자. 그 일념하나로 21살 군전역후 만든 신용카드, 단 한번도 연체한적없었지만 

아무것도 없었지만 어머니만큼은 살려야겠다는 의지로 천만원 한도짜리 신용카드로 어머니 병원비 결제

했습니다. 천만원짜리 신용카드, 정말 남은거 하나도없고 결국 10월부터는 재수학원도 포기하며 

어머니 병간호와 공부 가게 3가지를 신경쓰면서 살았습니다. 어찌어찌 본 수학능력시험 다행히

잘본듯싶었습니다. 하지만 제게 남은 신용불량자 타이틀, 천만원 한도짜리 신용카드는 이미 구멍날만큼

나있엇고 저에게 남은건 신용불량자 라는 딱지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수학능력시험은 언어영역에서

밀려써서 (언어5외국어1수학2) 가고싶은대학은 꿈도 꾸지 못하는상황. 나이는 이미 먹어가고있는상황에서

어머니는 계속 쓰러지시고 아버지는 여전히 정신차리시지 못하는상태. 수학능력시험 이후 여태

체념상태였습니다. 집밖으로도 나가지못하고 이미 신용불량자이지만 집안에서 매일 울며 아무것도

하지못했지만 그래도 어머니 생각에 낮에는 다시 회사, 저녁엔 아르바이트를 하고있습니다.

여전히 아버지는 술만마시면 개, 또다시 저에게 집에서 나가라, 너같은새끼 꼴도보기싫다 라고 소리지르며

절 폭행하는 아버지. 아무런 희망도 없는 세상, 하루에 15시간 16시간씩 아무의미없는 노동 노동이 끝나면

그저 수면 아무런 인간관계도없고 모아둔돈도없는 저 이젠 어떻게살아야할까요

글이 길어지다보니 횡설수설했던거같습니다. 

정말죄송합니다 이런 제게 힘내라는 말 한마디만 해주시면 안될까요

그저 힘내라는 말이 듣고싶은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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