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여행 마치렴’ 영정들고 제주도 다녀온 형이
호연아! 네가 떠난 지 벌써 오랜 시간이 지났구나. 너랑 네 친구들을 이렇게 죽음으로 몰고 가고도 더 이상 진실을 밝려는 의지가 없는 나라에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죄스럽고 미안구나.
정치권이 너와 네 친구들의 억울한 죽음을, 그리고 사고의 진상을 밝혀줄 노력을 짓밟아 버렸구나. 그들이 ‘시간을 질질 끌어가며 너희들이 잊히기만 바라고 있을 것’이란 내 생각이 어리석지 않았다는 결론이 나오고 말았어.
그래서 이 나라와 정치권에 ‘실망스럽다’는 표현을 쓰는 것조차 아깝구나. 너를 떠나보낸 지 100일이 훌쩍 넘었지만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는 이 나라에 이제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그럴수록 형은 이 나라를 떠나고 싶고 너에게 더욱 미안해.
각본대로 움직이는 정치인들이 싫고 그런 정치인들이 좌지우지하는 이런 나라도 싫은데, 사람들은 이제 너희들을 잊으라고 재촉하는 것 같구나. 처음엔 모두 우리를 위로해주며 관심을 가져줬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를 보는 시선들이 너무나 따갑고 차가워. 처음엔 진실을 밝힌다고 하면서 우리에게 말했지만, 이젠 더 이상 우리 아니 너희들을 생각해주지도 않는 것 같아 더 마음이 아프고 쓰리다.
호연아! 형은 아직도 네가 이 세상에 있지 않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아…. 네가 학교 갔다 올 시간이면 현관문을 쳐다보고 독서실에서 올 시간이면 다시 쳐다보게 돼. 사람들은 “시간 지나면 괜찮다고, 괜찮아 질 거다”라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보고 싶어. 우리 둘이 같이 점심이나 저녁을 같이 먹는 사소하고 일상적인 시간이 지금에서야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시간인지 깨달았어.
보고 싶은 내 동생 호연아 형이 항상 너한테 잔소리했던 게 널 그만큼 사랑했다는 걸 알아준 거 같아 고마워. 그리고 발인할 때 네 책상에 있던 좌우명을 봤을 때 정말 심장이 찢어질 듯이 마음이 아프더라. 난 네가 형을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는지 몰랐어. 형이 너한테 그런 존재인지 몰랐어. 너무 고맙고 사랑해. 이제 직접 만지고 듣고 볼 수도 없지만, 시간이 지나서 다시 만나서 다시 내 동생이 너였으면 해. 형이 지금까지 못해준 거 다 해줄게. 형이랑 그 땐 좋은 추억도 많이 쌓자.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이 나라에 살고 있어서 너무 미안하구나. 내 동생 호연아….
•김호연군은
단원고 2학년 4반 반장이었던 김호연(18)군의 형 호준(20)씨는 최근 동생의 영정을 들고 일주일 동안 제주도를 다녀왔다. 수학여행을 마무리시켜주기 위해서다. 영정을 품에 안고 수학여행 예정지를 돌아보면 그나마 동생의 넋을 위로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한다.
호연이는 하고 싶은 게 많았던 학생이었다. 공부도 잘했지만, 운동에 남다른 소질을 보여 고교 야구선수로 스카우트 제의까지 받았다. 기타와 피아노도 수준급이었다. 한번 관심을 가진 일은 무엇이든 도전하는 욕심꾸러기였지만, 예의 바르고 진중한 성품을 지녔다고 엄마는 전했다.
세월호가 기울어지는 것을 알아챈 호연이는 일찌감치 갑판으로 나왔지만, “선실에서 기다리라”는 방송을 듣고 다시 들어갔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안산/김기성 김일우 기자
[email protected], 그림 박재동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