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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85일째 되는 날이네요..
게시물ID : humorbest_33897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46380;크
추천 : 104
조회수 : 4178회
댓글수 : 3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1/03/13 23:39:21
원본글 작성시간 : 2011/03/13 21:42:08
12월 11일 자취방에 오신 어머니와 아버지가 더러운 

저의집을 청소해주신후 듣기싫은 잔소리를 하시는 어머니를

짜증으로 보냈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저에게 하신말이 ..

제발 집좀 치우고 살아라 였습니다.. 제가 얼마나 병신같았는지..

그게 우리 어머니.. 사랑하는 우리 엄마의 마지막 말이되버렸네요..

응급실에서 어머니가 그리 치명상이 아니라는 말만 믿고 

사고로 아버지도 누워계시고.. 저도 정신없어서 아무것도 기억이 안났지만

급하게 아버지 지인분들이 오셔서 의사선생님과 상의끝에 의정부 백병원쪽에서

상계 백병원으로 가기로 했답니다.. 어머니와 엠뷸런스를 타고 뇌부종과 뇌출혈을

수술하기위해서 였죠..

근데 백병원으로 도착하고 상황은 뒤틀어졌습니다..

의정부 백병원에서는 성베드로병원으로 가라고했지만 아버지의 지인분들이

큰병원으로 가야하지 않겠느냐 물어봤고 병원에서는 그럼 알아서 병원을 찾아보라 했다더군요

근데 그상황속에서 뭔가 정보전달이 잘못됬습니다.. 

수술 자리가 없다더군요..

그래서 병원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다시 의정부 백병원에 전화를 했습니다..

가라고 한적 없다고 했다는군요.. 그 망할 의사라는 세끼가..

그래서 다른병원 빨리 연락해달라니까 못해주겠다더군요.. 우리엄마가 죽어가는데..

원칙이 그거라고.. 이미 가놓구선 뭔 소리냐고..

그래서 구급대원이 열받아서 병원을 찾아주는곳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거기서 경희대병원으로 가라더군요 가던도중 확인차 전화를 해봣더니

수술이 가능한게아니라 응급처치만 된다더군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않습니다.. 어머니는 

정신이 없으신상태로 눈물을 흘리고 계셨습니다..

이미 병신이 되버린 전.. 그렇게 의식을 잃어가시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을수밖에

없었습니다.. 할수없이 가장 가까운 고대병원으로 밀고 들어갔습니다..

연락도 없이 들어갔고 수술이 가능할리 없었습니다..

기다리라더군요.. 우리 엄마 죽는데.. 의사란 자식들은 느긋하게 

그냥 기다리라더군요 .. 엄마 상태보고 심각하면 수술실을 만들어보겠다고..

그래서 기다렸습니다.. 근데 초록색옷을 입은 여자분이 오시더니

동료들과 떠들다가 올라가셧습니다.. 그래서 왜 그냥 가시냐니까

수술은 가능하지만 중환자실 자리가 없답니다..

그래서 가까운 녹색병원에서 수술이 가능하다고 그리로 보내주겠답니다

근데 고려대학병원에 엠뷸런스가 없으니 

녹색병원에서 엠뷸런스를 보내줘서 대려간다더군요

그 큰병원에 엠뷸런스가 없다고 .. 

그렇게 어머니는 사고가 난 8시로부터 4시간지나 12시에

수술을 하셨습니다.... 전 ...... 아무것도 ... 할수있는게 없었습니다..

녹색병원의사가 설명해주는데.. 힘들답니다..

두개골을 자르고 부어오를대로 부어오른 뇌를 밖으로 나올수있게 공간을

만들어주고... 뇌출혈을 제거하고

이런 예기를하고 어머니의 머리를 밀었습니다..

커튼뒤에서 저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지못했습니다.. 

무서웠습니다.. 저만 본 엄마의모습은.. 더이상 우리 엄마가 아니였습니다..

처음수술은 매우 성공적이였지만.. 4시간의 지체로 

어머니의 생존만 보존할수있었습니다.. 저는 혼자였습니다..

10살인 막둥이 동생에게 사실을 알리지 않고 장애가 있는 누나는

아버지또한 사고를 당하셨기때문에 아버지옆에 있엇고 

수술이 끝난건 새벽 3시30분이 였고 친척분들은 수술소식을 듣고 집에 들어가셧습니다..

중환자실 옆에 보호자 휴게실에서 잠을자는데.. 너무 무서웠습니다..

정말 그 무서움은... 어머니를 잃을뻔한 그 무서움은...

수술이 잘되어서 그나마 다행이였던 안도감보다 훨씬더 컸습니다..

그리고 1시에 첫 면회가 있었습니다..

우리 엄마의 모습.. 누워있는 우리 엄마의 모습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원망했습니다.. 하나님을 .. 예수님을

이세상에 모든것을.. 

씨발.. 왜 우리 엄마야.. 왜 나야.. 왜 46년동안 가난으로 고생만한

우리엄마야.. 씨발놈들아 .. 이제 돈좀 벌어서 가난했던것들 보상받을려고하는데

우리엄마를 이렇게 만들어 놔? 

이러면서도 빌었습니다.. 살려주세요 우리엄마..

아무말도 못했습니다.. 에어백이 터져서 살아남으신 우리아버지는.. 

정신이 아직 돌아오지 못했고.. 청력과 정신지체가 조금 있는 누나에게는 

희망적인 말이외에 아무말도 하지못했습니다..

결국 전 혼자였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였던 전..

보호자에게 의지하던 저는.. 

어느새 우리 엄마의 보호자가 되어있었습니다.. 

어리광 부리던 10시간전과는 완전히 딴판으로..

그 10시간동안 저의 인생이 바뀌였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 아무런 내색을 할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무너지는 모습을보이면 우리 아빠랑 누나 동생은..

얼마나힘들지 상상할수 없었으니까요..

수많은 손님들이 어머니를 보고 울고 저희가족에게 힘을주기위해

위로의 말을 남기고 갔습니다..

잘될거라고.. 기적이 일어날꺼라고..

하지만 결국 12월 18일 9시 .. 어머니는 싸늘한 시체가 되어 제앞에 누워계셧습니다..

너무 차갑다.. 우리 엄마 손이.. 더이상 산사람의 손과 몸이 아니였다..

장례식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

저는 혼자.. 우리 엄마의 시체옆에 앉아있었습니다..

46년동안 고생하시던 어머니의 옆에서.. 우리 엄마의 몸을 마지막으로 손끝으로 느끼기 위해

흰색천으로 쌓여진 어머니의 몸을 만졌습니다..

장례식장에 도착해서 검은색 양복을 입고 .. 목보호대를 끼고 외출하신 아버지와 누나 ..

뒤늦게 소식을안 동생을 안고 울었습니다..

그리고 손님들을 맞으며 절대 울지말기로 다짐했습니다..

모두에게 걱정 끼쳐드리지 않기위해..

그후로 어머니의 무덤을 만들고 하루하루가 지나고..

저는 노력했습니다.. 남들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으려고..

길거리를 걸어도.. 친구들과 만나도.. 교회를가도..

아무일도 없었던것처럼 .. 밝게..

다른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힘들다는걸..

힘들면 힘들수록 웃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목사님입니다..

아버지의 설교속에서 어머니의 내용이 나오면

전 조용히 고개를 숙입니다.. 나오는 눈물을 막을수 없습니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싫기때문에 절대로 내색하지 않기위해 노력합니다..

근데 .. 요즘들어 이상합니다.. 정신장애가 생긴걸까요..

남들앞에선 밝지만 혼자있으면 전 .. 급속도로 우울해집니다..

엄마 생각이 나는걸 참을수 없습니다.. 

가족들에게 잘해주자던 다짐도 어느새 무너집니다

이제 회복되어 가고있는 아버지는 저에게 많은걸 바라십니다..

근데 저는 그 기대에 부흥하지 못합니다..

나도 힘들고 우리가족도 힘든걸 알지만..

힘이 나지않습니다..

저희가족의 모든일을 같이 해주실거같았던 주변사람들은

차츰차츰.. 우리 엄마를 잊어갑니다.. 

모두 없었던일 처럼.. 자연스럽게..

당연한일이지만 씁쓸하네요.. 

이런글을 왜쓴지도 모르겠네요..

횡설수설.. 생각나는데로 막무가내로 적었습니다..

내 주변사람이 아닌 다른사람에게 

내가힘든걸 알려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냥 힘내라고 한번만 해주셧으면 좋겟네요..

우리가족에게 더욱더 잘할수있게.. 

힘들어도 내색하지않고 우리가족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될수있게..

힘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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