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창업주 고(故) 이병철(1910~87) 회장이 타계하기 한 달 전에
천주교 신부에게 물었던 24개의 질문이 백성호 기자에 의해서 <중앙일보>에 공개되었다.
이 질문지는 1987년 박희봉(1924~88) 신부에게 전해졌고, 박 신부는 정의채 교수에게 전했다.
그 후 정의채 교수는 20년 넘게 질문지를 간직하고 있다가
2년 전 제자인 인천 가톨릭대 교수 차동엽 신부에게 전했고 여기에 차 신부가 마침내 답을 달았다.
그리고 이를 보고 신천지예수교 이만희 총회장도 답을 내었으며
프레시안의 윤재석 컬럼니스트, 불교계 불학연구소장 허정스님도 답을 했다.
그 24가지 질문중 1가지를 소개하고
마지막 답변에 세상에 대한 진실과 이치을 통찰하시고
진실과 관련된 홈페이지를 현재 운영중인 분의 답변을 달겠다
16. 성경에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을 약대(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에 비유했는데, 부자는 악인이란 말인가? (차동엽) 그건 ‘나눔’을 강조한 예수님의 메시지다. 부자에도 여러 종류의 부자가 있다. 이웃과 잘 나누는 부자가 있다면 당연히 천국에 가지 않겠나. 주위를 보라.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선다. 그 선택에 따라 선인이 되기도 하고, 악인이 되기도 한다. 100% 선인도 없고, 100% 악인도 없다. 부자도 늘 그런 선택 앞에 선다. 그 선택에 따라 부자는 선인이 될 수도 있고, 악인이 될 수도 있다. (이만희) 부자는 악인이 아니다. 부자는 두 가지가 있다. 물질 부자와 마음의 부자가 있다. 물질이 부한 자와 가난한 자는 결국 같다. 만일 부자가 천국을 못 간다면 왜 하나님이 욥에게 재물을 더 줬겠는가? 마음의 부자는 부족함이 없으므로 안일하여 구하지 않는다. 물질 부자는 그릇을 다 채우지 못해 구하고 그것을 위해 일한다. 권세자이든 물질 부자이든 자기를 알고 참 하나님을 알면, 진정한 보화가 무엇인지 알고 구할 것이다. 그것은 생명이다. 꿈같이 썩어 없어지는 양식보다 영원히 썩지 않는 양식을 구해야 할 것이다. (허정스님) 이 부분에 대한 차 신부의 대답은 불교와 비슷하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선다. 그 선택에 따라 선인이 되기도 하고, 악인이 되기도 한다. 100% 선인도 없고, 100% 악인도 없다. 그 선택에 따라 부자는 선인이 될 수도 있고, 악인이 될 수도 있다.”(차동엽 신부) 다만 불교와 다른 것은 자유의지는 누가 준 것이 아니고, 자신이 선택해서 나타난 결과는 스스로 책임져야 하고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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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과 관련된 홈페이지를 현재 운영중인 분의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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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종교에서는 물질의 부자와 마음의 부자를 구분하여
물질이 부정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물질은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지 좋고 나쁜 것과는 관계가 없다.
삶을 살아가는데 재물은 필수적이니 재물을 부정적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우리는 선한 근본을 가진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 하고
나쁜 근본을 가진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평가하는데
그 사람의 내면의 근기를 볼 수 없기에 그 사람이 하는 일을 보고 판단한다.
기본적으로 선한 근본을 가진 사람은 선한 일을 하게 되고
나쁜 근본을 가진 사람은 나쁜 일을 많이 하도록 되어있다.
따라서 인간이 매순간마다 선택하여 선인도 되고 악인도 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기가 지니고 나온 근본의 영향아래 움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자를 나쁜 근본을 가진 악한이라고 할 수 없다.
질문을 보자!
돈이 많은 부자는 악인인가?
이 문제는 자본주의의 핵심가치관과 일치한다.
돈이 죄악이라면 자본주의는 존재할 가치가 없는 것이며
돈이 악과 관계없고 필요한 것이라면 자본주의는 존재가치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병철회장은 기업가의 입장에서 자신이 돈을 번 것에 대해 윤리적 평가를 받고 싶었던 것이다.
이치에서 살펴보면 부자는 기본적으로 부자의 원인을 지었기에 부자가 된다.
세상은 인과법에 의해 나타나니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는 것이다.
부자가 되는 원리는 간단하다.
열심히 노력하고 아껴쓰면 돈이 모이게 되는 것이다.
바른 이치로 돈을 번다면 그 마음은 항상 깨끗하고 맑아 진리와 완성으로 나아간다.
지은대로 벌었으니 마음이 항상 떳떳하고 곤궁함이 없으니 마음이 평안하며
맑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로보고 잘 쓸 수 있으니 재물은 큰 복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본적으로 부자는 부를 누릴 자격이 있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노동윤리이다.
막스 웨버는 신교도(프로테스탄트)가 서구 자본주의를 발전시킨 윤리는
부를 축적함으로써 신에 의한 자기 구원을 확신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래서 열심히 벌어 부자가 됨으로써 하느님의 구원의 약속을 확인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이치는 부자가 되는 것이 구원의 증거가 아니다.
부가 자신의 마음을 평안하게 하고 세상을 축복하는 공덕이 되어야만
자기와 세상에 도움이 되고 좋은 후생을 받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근면, 검소, 정직으로 돈을 바르게 벌어야 하고
그 돈을 바르게 사용하여 세상에 좋은 결과가 생기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바른 생활을 통해 번 재물은 자신의 삶을 밝게 하고
올바르게 사용하기에 마음은 항상 당당하며 재물에 집착이 없다.
이런 부자는 근본이 맑아 천국에 갈 수 있다.
따라서 재물은 죄가 아니다.
돈은 잘 쓰기 위해 버는 것이지 돈 자체가 의미를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돈 자체가 목적이 되어 돈에 얽매이는 삶을 살아서는 안된다.
그러면 돈이 집착이 되고 화가 되어 자신의 영혼을 무겁게 만드는 것이다.
돈을 잘 쓰면 복이 되지만 잘못쓰면 화가 된다.
부자는 돈을 아껴쓰고 좋은 곳에 투자하여 많은 인원을 고용하여 먹고 살게 해주고
많은 생산을 해서 세상을 풍성하게 해주면 그것으로 세상에 큰 축복이 되는 것이다.
문제는 부정한 방법으로 재물을 모은 경우인데
어두운 세상에서 악한 근본이 있는 자들에게서 일어난다.
이들은 이치에 따라 열심히 일하고 아껴 재물을 모을 생각을 하지 않고
재물에 대한 탐욕으로 이치를 어겨 일확천금을 거두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온갖 악을 행하고 질서를 해쳐 부정한 방법으로 남의 재물을 탈취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 탐욕스런 집착과 거짓과 죄악이 마음을 어둡고 무겁게 하니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해 세상을 떠돌게 되고 그로인해 인간의 근본을 망치게 된다.
더구나 재물을 쓸 줄 모르는 중생이 한꺼번에 많은 명성과 재물을 얻게 되면
자기 마음을 지키기 어렵게 된다.
근기가 약한 중생은 나쁜 환경을 만나면 자연히 그곳에 물이 든다.
탁류에 빠진 사람이 더러움을 묻히지 않을 수 없듯이
건강한 정신이 없는 자가 물질을 가지게 되면 거의 대부분 자기 정신을 망치게 된다.
재물 때문에 벌떼처럼 다가오는 수많은 사람들과 음모로부터
재물을 지키기 위해 노고와 집착 때문에 마음의 평안을 지킬 수 없게 되고
재물이 주는 쾌락에 빠져 자기를 망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부자가 천국에 가기 어려운 이유인 것이다.
그러나 물질이 없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딴 생각 안하고
현실을 살아가는 일에 충실해야 하기에 정신이 밝아지고 건강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농사에 있어서는 재물과 권력을 가지는 쾌락에 빠지는 것보다는
시련 속에서 자신을 태우는 것이 더 좋다.
부처가 오탁악세의 탁류 속에서 나타날 수 있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치 때문이다.
따라서 자식을 바르게 가르치기 위해서는
재물을 물려주는 것보다 바른 삶을 물려주어야 한다.
이것이 자식의 영혼을 지켜주는 길이다.
요즘 종교집단에서는 재물은 부정한 것이니 모두 세상에 주고 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남을 도울 때도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해야 하며
준다는 마음없이 보시해야 한다고 해야 한다.
그 말은 결국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이유없이 모든 재물을 바치라는 말이니
결국 종교집단만 배불리게 되며 이러한 보시는 세상을 축복하는 큰 공덕도 못된다.
재물은 잘 써야 한다.
재물을 주는 사람이 알든 모르든 모든 것은 지은 원인에 따라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니
이치에 따라 세상을 밝히고 축복하는데 써야 공덕이 된다.
만약 정법이 아닌 말법을 전하는 집단이나 사이비 집단에 재물을 희사하거나
부정축재하는 자들의 손아귀에 재물을 희사했다면
그것은 세상에 아무런 공덕이 안되며 그러한 짓을 한 자신은 우매한 업을 짓게 되는 것이다.
오직 정법이 있는 곳이나 세상을 바르게 축복하는 사람에게
이치에 맞는 축복을 하도록 보시하는 것만이
자신의 마음을 밝게 하는 선근을 지으며 공덕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