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창업주 고(故) 이병철(1910~87) 회장이 타계하기 한 달 전에
천주교 신부에게 물었던 24개의 질문이 백성호 기자에 의해서 <중앙일보>에 공개되었다.
이 질문지는 1987년 박희봉(1924~88) 신부에게 전해졌고, 박 신부는 정의채 교수에게 전했다.
그 후 정의채 교수는 20년 넘게 질문지를 간직하고 있다가
2년 전 제자인 인천 가톨릭대 교수 차동엽 신부에게 전했고 여기에 차 신부가 마침내 답을 달았다.
그리고 이를 보고 신천지예수교 이만희 총회장도 답을 내었으며
프레시안의 윤재석 컬럼니스트, 불교계 불학연구소장 허정스님도 답을 했다.
그 24가지 질문중 1가지를 소개하고
마지막 답변에 세상에 대한 진실과 이치을 통찰하시고
진실과 관련된 홈페이지를 현재 운영중인 분의 답변을 달겠다
23. 천주교의 어떤 단체는 기업주를 착취자로, 근로자를 착취당하는 자로 단정,
기업의 분열과 파괴를 조장하는데, 자본주의 체제와 미덕을 부인하는 것인가?
(차동엽)
이 문제는 역사성 안에서 봐야 한다.
우리나라에 노동 착취가 있었던 건 사실이다.
전태일씨 등은 하루 15시간 이상 노동했으니까.
그런데 모든 기업주가 착취자라고 하면 곤란하다.
물을 흐리는 미꾸라지는 어디나 있다. 좋은 기업인도 있고, 나쁜 기업인도 있다.
그건 개별적 사안이다. 교회는 자본주의 체제를 부인하지 않는다.
공산주의는 이미 실패했다.
다만 교회가 자본주의 체제의 부작용이나 폐해에 관심을 갖는 건 맞다.
거기에 약자와 소외된 자가 있기 때문이다.
(이만희)
천주교 및 모든 종교인은 경서가 말한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세상일을 믿는 것이 아니고, 세상일을 간섭하는 곳이 아니다.
공산주의 사상을 가지고 침투했다면 그런 자도 있겠으나,
그것은 천주교의 교법이 아닌 줄 안다.
기업이 있어야 살게 되고, 기업을 분열 파괴하는 자는
공산주의이기 전에 마귀 행동을 하는 자라 할 것이다.
(허정스님) 해당없다고 답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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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과 관련된 홈페이지를 현재 운영중인 분의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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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에서 하는 진보적 행태와 반자본주의 흐름을 보고
자본주의 신봉자인 이병철 회장이 의문을 제시한 것이다.
근대에 와서 남미와 같은 제3세계 천주교에서는 예수님의 가르침인 사랑과 인간의 존엄을 중시하여
교회가 어두운 사회를 개선하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식민지 잔재의 경제적 불평등과 구조적 빈곤을 사회적 참여를 통해 개선함으로써
다수 대중을 구원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이들을 해방신학이라 부른다.
그들은 남미가 잘 살지 못하는 이유가
과거 서구자본주의 제국에 의해 식민지 시절부터 경제가 종속화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제3세계 인민의 구원을 위해서는 단순한 정신적 구원이 아니라
적극적인 사회운동을 통해 대중의 삶의 빈곤과 불평등을 개선해야만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해방신학은 정치적 신학으로 발전하여
신 대신 인간의 혁명력을 중시하고 개인구원 대신 사회구원을 갈망하며
가난, 착취, 공해, 불평등 등 복잡한 사회문제를 정치,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의 문제로 인식하여
모든 사제들이 사회참여에 나섬으로써 하느님의 뜻을 실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곧 다수대중의 평등한 사회를 주장하는 공산주의 사상과 일맥상통하여
해방신학의 사회참여과정에서 공산주의 이론과 접목하게 되었고
지배계급 피지배계급이라는 이분법과 계급투쟁,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마르크스 이론을 차용하여 활용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로마 교황청에서 그 위험성을 인식하고 1984년과 1986년 두 차례에 걸쳐
해방신학과 마르크스주의 이데올로기 사이의 연관성을 우려하는 경고 문건을 발표하자
그 영향력이 크게 줄어 들었는데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군사독재 타도라는 시대적 흐름을 타고 좌파운동의 한 부류를 형성하면서
미제 타파, 반자본주의, 인권 회복, 환경운동을 주 모토로 삼고 계속 활동하고 있다.
천주교가 공산주의와 비슷한 사회운동을 하게 된 이유는 그 이상성 때문이다.
인간구원을 위해서는 가장 기본적 조건인 가난과 인권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그 해결방법으로 진리에 따른 사실적인 방법이 아니라
이데올르기적인 공산주의식 다수대중에 의한 혁명적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세상문제는 힘과 이상으로 푸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는 반드시 진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진리가 뒷받침되지 않는 이상은 공산주의와 같이 곧 힘을 잃고 무너지게 된다.
가난은 나누어서 될 문제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가능성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일하지 않아도 똑같이 나누어준다면
아무도 일하지 않을 것이니 세상은 곧 망하게 되는 것이다.
이상이 앞서서 무조건 평등해야 하고 무조건 삶의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사회분란이 더 커지게 되는 것이다.
평등이란 것도 능력에 따른 평등이어야 한다.
일하지 않는 자는 굶는 것이 원칙인 것이다.
그리고 생활능력이 없는 자에 대해서는
사회가 뒷받침할 수 있을 정도의 부조를 제공해야 한다.
사회가 감당할 수 없는 지원을 하면
결국 그 사회에 부담으로 작용하며 전체가 못살게 되는 것이다.
세상을 모르니 이상에 빠진 자들이 하는 짓이 공산주의 혁명인 것이다.
세상은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며 현실은 인과의 이치가 맞아야 풀린다.
따라서 모든 문제는 항상 사실적 조건 속에서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
현실을 도외시하고 일반적 생각으로 절대적 선을 주장하는 것은
사실을 보지 못하는 이상주의자의 무지한 견해인 것이다.
신의 은총을 야만국에 펴기 위한 기독교에 의한 십자군 전쟁,
모든 사람이 다 배부르게 사는 세상을 위한 공산주의 혁명
독일민족의 우수성에 의한 나찌 전쟁 등
현실을 무시하고 관념에 의한 이상이 앞설 때 항상 거대한 비극이 나타난다.
따라서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현실을 무시하고
이상에 앞서서 관념적 결론을 내리는 이상주의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