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가 쌓인, 몇 평 남짓의 벙커에는 갈라진 틈 사이로 약간의 빛만 새어 들어왔다. 벙커 안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키만큼 파놓은 동굴은 내 예상대로라면 돔 밖까지 연결되어 있는 통로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섣불리 동굴을 따라 가지 않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이 벙커에 있는 식량을 가져갈 수 없을 만큼 무겁고 많았으며, 내가 봤었던 돔 밖의 세상은 안개뿐인 사막 같은 공간이었다. 내가 나간다고 한다면, 다시 되돌아오는데 많은 시간이 걸릴뿐더러 안개세상에서 음식을 구할 수 있다고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문명이 없는 험악한 세상에서 먹을 것을 찾는 다는 것은 하늘의 경험 없는 나에게는 맨손으로 코코넛 나무 올라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설령 코코넛 나무라도 있다 한들, 이곳에 음식이 이렇게 널려있는데 뭐하려고 나가는가? 하지만 이러한 생각도 얼마 지나지 않아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분명히 할아버지는 이 돔의 세상에서 사라지고 나서,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은 길을 잃었거나 죽었거나 아니면 아직까지 저 안개 너머의 세상에 살고 있을지 몰랐다. 현재 내 기분 상태는 그냥 떨떠름한 상태였다. 뭔가 이 벙커 속에 나는 습하고 이상한 냄새가 나를 차분하게 만들었다. 어제 있었던 일은 그냥 꿈같아서 지금이라도 문을 활짝 열고 나가면 평상시와 다를 것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의 생활이 그립지는 않았다. 지금 현재 상태도 아무렇지 않았다. 나는 수북이 먼지가 쌓인 상자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내 기역으로는 이곳에 할아버지가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무시무시한 무기가 들어 있었다. 아주 옛날에, 800년을 훌쩍 넘었던 시대에 만들어진 고대 무기였는데 그것은 ‘다이너마이트’였다. 꼬리처럼 흔들거리는 20센티미터쯤의 기다란 심지가 꽂혀있고 몸통은 씨가처럼 갈색의 가죽에 돌돌 말려진 기다랗고 커다란 소시지 모양이었다. 그러한 것이 9개가 묶어진 상태로 세 묶음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하나씩 분리된 것이 6개 있었다. 예전에는 가로세로 1미터의 상잔에 가득 찰 정도로 엄청나게 많았는데, 사라진 할아버지가 챙겨갔을 것이다. 말로 들었지만, 할아버지는 이것들을 아주 조심스럽게 다루셨다. 이중에 단 하나만 터져도 이 벙커는 완전히 박살날 뿐만 아니라, 우리 집이 통째로 가루가 되어버린다 하셨다. 그만큼 이 다이너마이트의 위력은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심지는 20초 안에 바싹 타들어가서 자신으로부터, 수 미터 이상 먼 곳을 향해 던져야 했고 던지는 순간 반대쪽으로 뛰어서 안전한 곳에 바짝 엎드려 충격을 피해야 했다. 상자 옆에는 길쭉한 폭탄을 안전하게 꼬자 넣을 수 있는 벨트가 있었다. 하나씩 분리된 6개의 폭탄을 양쪽 옆구리에 채워놓고 묶어진 것들은 준비된 스티로폼 가방에 맞춰 넣었다. 그리고 옆에 유리상자와 손목만한 검은 가방 안에 있는 또 다른 무기를 꺼내들었다. 그것은 검은색 광택이 인상적인 두 자루의 리볼버 권총 이였다. 탄창에 최대 여섯 발을 장전될 수 있는 리볼버 권총은 그 총알이 납작하면서 둥그렇게 생겼다. 그 옆에 기다란 유리 상자에 있는 것은 총아들이었는데 내 허벅지만하고 전부 구리나 쇄로 만들어진 상태라 무개가 상당했다. 상자 옆에 오일이 발려진 체 침묵하고 있는 권총보다는 조금 크고 기다랗지만, 빨 때는 기다랗게 튀어나왔고 몸통은 짧게 깎여진 자동소총이 있었다. 거의 내 품안에 딱 맞게 짧게 조립된 총이었는데, 총알이 조금 뾰족하게 길고 탄약부분이 얇았다.
“어떻게 하지.”
이 멋진 무기들을 모두 가져가자니 식량을 포기해야 했다. 식량을 들자니, 리볼버 총알조차 무거워서 가져갈 수가 없었다. 나는 우선순위로 가장 간변하게 가져갈 수 있는 것들만 엄선해 보았다. 우선 리볼버는 폭탄을 껴두었던 벨트에 권총을 넣을 수 있는 주머니가 두개 달려 있었다. 우선 리볼버 탄장에 총알을 장전시켜 놓고, 권총 주머니에 넣었다. 자동소총은 옆에 조립식에 띠를 매는 방식이라 어깨에 가볍게 메었고, 음식으로는 우선 하루에 할 알씩 가볍게 먹을 수 있는 400정 영양제와 부피가 많은 빵보다는 가볍고 알찬 탄수화물이 깃들어있는 오수수와 짬뽕된 깡통 콩 배낭에 챙겼다. 또 문제가 하나 생겼다. 물을 챙겨야 하는데, 챙길 수 있는 양은 적을뿐더러, 오히려 물통은 두개만 있어도 총알통과 다이너마이트를 합한 만큼 무거웠다. 나는 정말로 필요한 것들, 리볼버와 자동소총 그리고 다이너마이트 여섯 개와 영양제, 그리고 물통 두 개와 통조림들을 품속에 단단히 챙겼다. 그 다음으로 통조림과 총알을 챙기고 나머지 이 방에 남길 수밖에 없는 것들로 우선 챙겨먹었다. 이 것들은 생존에 최소한 필요한 것들이라 먹지 않고 남겨두었고, 일단 배낭에 조금이라도 비어있는 공간에 필요한 음식들을 마구잡이로 채워놓았다. 마지막으로 비어있는 상자 안에 탄수화물이 풍부한 것들로 영양가 있는 것들을 담았다. 물이 담겨진 조금 큰 통은 물탱크에 다 부어넣고 그 통에 통조림과 상자를 공간낭비 없이 차곡차곡 집어넣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무거운 것을 옮겨 넣느라 사용했던 리어카에 무거운 것들을 옮겨 넣고 나는 동굴 속으로 그 짐들을 옮겼다. 그리고 동굴 밖을 향해 나아갔다.
* * *
동굴 밖으로 나가는데 2일이 걸렸다. 식량이 아까워서 짐을 풀어두고 다시 벙커로 돌아가 벙커에 있는 음식들을 챙겨먹고 다시 그곳에 있는 것들을 챙겨서 짐이 있는 곳에 옮겨놓았다. 그리고 다시 벙커에 돌아가서 이불과 덮을 것들도 가져왔고 짐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 풀어놓았다. 그리고 다시 벙커 밖을 향해 가서 그곳에 짐을 풀어놓고 그 전에 짐을 풀어놓고 다시 뛰어가서 이불과 기타 음식들을 다시 가져오는 방법을 계속해서 반복했다. 물은 하루도 안 되서 살아졌기 때문에 있는 물주머니는 모두 동원해서 물을 챙겼다. 다행이 영양제는 거의 30일 동안 물을 안 먹어도 버틸 수 있게 영양소들이 풍부했다. 게다가 콩 조림에도 물기가 있었기 때문에 다행이도 물이 떨어진다 해도 목말로 죽진 않았다. 돔 밖의 세상은 예상대로 안개뿐이었다. 돔은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게 높은 검은 벽으로 보였다. 너무나도 거대해서 둥근 느낌마저 안 들었었다. 나는 안개의 습한 느낌을 받으며 시간과 힘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이 느리고 멈춤 없이 움직였다. 목적은 돔이 보이는 곳에서 반대쪽을 향한 것이다. 4미터 앞은 땅조차 볼 수 없었다. 미슷헤리한 기분이 들었는데, 언제라도 무슨 이상한 괴물들이 나타나는 망상이 반복되었다. 막 이상한 피리 소리가 들려와서 목 없는 귀신이 덮치는 그러한 상상. 아니면 언제라도 갑자기 내 눈앞에 거대한 절벽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과 기다리고 있었던 어떠한 비밀스러운 단체들이 나를 잡아다가 다시 돔 속으로 집어넣는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내가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보기 위해 몸을 돌렸다. 내 발자국은 없었지만, 무거운 통을 담아놓은 리어카의 바퀴 자국이 흐릿하니 눈에 들어왔다. 그러다가 다시 앞을 보고 걸었는데, 또 다시 뒤가 궁금해져서 그곳을 바라봤다. 여전히 바퀴 자국은 흐릿하니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 뒤에 있다는 망상 때문인지 오래 참지 못하고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며 나아갔다. 그리고 드디어 내가 안개 세상에 무언가를 찾은 성과를 올렸다. 내가 걷다가 도착한 곳은 돔 내부 세상에도 있었던 아스팔트 도로의 길이었는데, 곧 저녁이 되려고 했던지 안개속이지만 주의가 아까보다 더 어둑해진 상태였다. 그리고 아스팔트길을 걷다가 내 앞에 나타난 간판 하나가 보였다. 그것은 표지판이었는데 전방 40미터 앞에 ‘술이 살아있는 곳’이라는 광고판이었다. 나는 그곳을 황급히 달려갔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에는 벌써 거의 한 치의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주의가 어두워졌었다. 제일 먼저 보았던 것은 나무와 그곳에 달려 있는 작은 그네였다. 그네를 지나 대리석으로 지어진 길 끝에 멈춰진 곳에는 삼 층에 고급스럽게 만들어진 술집이 있었다. 간판에는 ‘술이 살아있는 곳’이라고 써져 있었고, 나는 내 짐을 문 앞까지 끌고 풀어놓았다. 오늘은 이곳에서 머물러야 했다. 나는 문을 살며시 열어젖히고 안 으로 들어가 보았다.
* * *
제일 먼저 본 것은 일 층에서 삼층까지 뚫려있는 천장이었다. 그리고 오래된 나무 테이블과 그 위에 거의 다 버려서 지저분하게 흘려 뭉개져버린 양초들과 금방이라도 부셔질 듯한 나무 의자들이었다. 제일 먼저 코로 들어온 냄새난 텁텁하고 썩은 나무 냄새들이었다. 그리고 삐걱거리는 문소리와 습하고 차갑게 가라앉은 기운이 은근히 나를 붙잡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