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완 /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1. 사회민주주의란 어떤 이념인가?
사회민주주의(social democracy; 이하 ‘사민주의’로 약칭)는 19세기 서유럽 노동운동의 풍토에서 형성되어 20세기를 거치며 상당한 변모를 경험한 이념이다. 러시아 혁명 이전에는 사민주의란 용어는 영국의 개량주의적 노동조합주의로부터 독일의 맑스주의, 라살레주의, 또 프랑스 등의 아나키즘에 이르기까지 주로 노동자계급의 관점에서 자본주의 체제를 비판적으로 보는 이념조류들을 통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어 사실상 ‘사회주의’(socialism)와 별로 구별되지 않는 용어였다. 19세기 말에 이르러 영국을 제외한 유럽대륙국들에서는 맑스주의가 사회주의 운동의 지배적 이념으로 정착되었고 특히 독일 사회민주당(SPD; 이하 ‘독일 사민당’으로 약칭)이 맑스주의적 이념노선을 대표하였다.
독일 사민당은 당의 규모와 정비 정도, 전국적 지지율, 그리고 이념적 논의 수준에서 유럽 사민주의 정당들의 모범이자 선도자 역할을 담당하였는데, 1890년대에 들어 독일 사민당 내에서 유명한 ‘수정주의 논쟁’이 전개되었다. 당시 독일 사민당은 자본주의 체제의 역사적 위상과 작동원리, 또 사회주의로의 이행과정에 대한 이해에서 주로 맑스주의에 의존하고 있었으나 일상적 실천에서는 노동조합의 경제투쟁과 의회민주주의제도를 활용한 합법적 정치투쟁에 전념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정으로부터 자연스레 독일 사민당의 이념적 정체성을 둘러싼 논쟁이 전개되었다. 수정주의 논쟁을 발단시킨 베른슈타인(Eduard Bernstein)은 그간의 개량주의적 또는 개혁주의적 실천이 거둔 성과에 대한 긍정적 평가와 이러한 실천의 향후 발전가능성에 대한 낙관적 전망에 기초하여 맑스의 이론체계에 대한 전면적 재평가를 시도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변증법을 부정하고 역사유물론과 잉여가치론을 상대화시키며, 계급양극화와 자본주의의 파국에 관한 맑스의 이론에 대해 회의적 입장을 표명하였다. 이제 맑스주의는 독일 사민당의 발전을 지도해갈 이념이라기보다는 순탄한 발전에 장애가 되기 쉬운 이념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향후 독일 사민당은 의회민주주의제도를 통해 집권함으로써 점진적으로 독일사회의 사회주의적 개조를 이루어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또 독일 사민당은 맑스의 역사유물론과 같은 특정한 역사철학이나 잉여가치론과 같은 특정한 경제이론 대신 자유, 평등과 같은 지향가치를 중심으로 한 윤리주의적 사회주의를 지도이념으로 삼아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이러한 베른슈타인의 문제 제기는 당 내에 큰 파장을 일으켜 카우츠키(Karl Kautsky),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 등 당대의 일급 맑스주의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수정주의 논쟁이 격렬하게 전개되었다. 그러나 당의 분열을 우려한 당 지도부는 이 논쟁을 적당한 수준에서 봉합하여 이론적으로는 맑스주의에 의존하되 실천은 개량주의적으로 전개하는 종래의 패턴이 지속되었고, 유럽대륙의 여타 사민주의 정당들의 경우에도 대동소이한 모습을 보였다.
국제 사회주의 운동에 결정적 균열을 가져온 계기로 작용한 사건은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이었다. 서유럽 사민주의자들은 대부분 자국 정부의 전쟁 참여를 승인하였지만 러시아 볼셰비키는 ‘혁명적 패배주의’를 내세우며 전쟁을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조건으로 활용하였다. 서유럽 사민주의자들은 대부분 러시아 혁명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취했다. 러시아사회는 사회주의 혁명을 추진할 만한 발전단계에 이르지 않았다고 보았으며, 혁명과정의 폭력성 및 볼셰비키 독재를 규탄하였다. 러시아 혁명의 지도자인 레닌(V. I. Lenin)은 서유럽 사민주의자들이 맑스주의의 혁명적 대의를 사실상 완전히 포기하였다고 판단하고, 자신이 보기에 이미 개량주의적으로 오염된 용어인 사민주의와 구별하여 볼셰비키가 대표하는 혁명적 맑스주의를 표현하는 용어로서 ‘공산주의’(communism)란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국제 사회주의 운동은 서유럽을 중심으로 한 사민주의 운동과 러시아 혁명을 통해 탄생한 국가인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운동으로 분열되었다(신정완, 2002: 306-307).
1차대전과 2차대전 사이의 전간기(戰間期)에 독일, 스웨덴 등 서유럽 몇 개 나라에서 사민당 정부가 수립되었다. 그러나 사민당 정부들은 그동안 약속해왔던 생산수단 소유의 사회화와 계획경제를 단행할 만한 능력과 의지가 부족하여 주로 노동과 사회복지 문제 등에서 부분적인 개혁을 추진하는 데 주력하였다. 또 전간기의 불황 및 공황과 대량실업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다만 스웨덴 사민당은 케인즈(J. M. Keynes)의 『일반이론』이 출간되기 전인 1930년대 초부터 케인즈주의적 수요부양정책을 집행하여 좋은 성과를 거두는 등 비교적 폭넓은 사회개혁에 성공하여, 이미 1930년대 중반부터 국제적으로 스웨덴 사민주의 세력의 노선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의 ‘중간의 길’(the middle way)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2차대전의 종결은 서유럽 사민주의 세력에게 유리한 정세를 조성하였다. 파시즘 세력의 몰락은 우파 세력의 도덕적 위신을 추락시킨 반면에 파시즘 세력으로부터 탄압받았던 사민주의 및 공산주의 세력의 도덕적 위신을 고양시켰고 민주주의를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정착시켰다. 또한 전쟁에 동원되어 많은 희생을 감수했던 노동자계급은 전쟁기간에 억눌려왔던 사회경제적 욕구를 분출시켰다.
그리하여 영국에서는 노동당 정부가 수립되어 기간산업의 광범위한 국유화와 국민의료체계(NHS: national health system) 도입 등 사회복지제도의 정비를 이루어냈다. 또한 1932년부터 1976년 기간에 연속 집권한 스웨덴 사민당은 세계 최고 수준의 사회복지제도를 정비하고, 원활한 경제성장과 관대한 사회복지제도의 발전을 양립시킨 종합적인 경제-사회 운영 모델인 ‘스웨덴 모델’(the Swedish model)을 형성ㆍ발전시킬 수 있었다. 서독 사민당도 제1야당으로서 평등주의적 사회개혁을 정력적으로 추진하여 서독의 ‘사회적 시장경제(the social market economy) 모델’에서 ‘사회적인 것’(the social)의 비중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또 1966년에는 자신의 주도 하에 그동안 여당이었던 기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여 전후 최초로 집권에 성공하였으며, 집권에 기초하여 평등주의적 사회경제정책을 강화하고 ‘동방정책’을 추진하여 동서독 통일의 기반을 조성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서유럽 사민주의 세력은 맑스주의로부터 더욱 멀어져가, 사민주의자들은 점차 자신들의 이념적 정체성을 자유, 정의, 평등, 연대와 같은 지향가치에 의해 규정하게 되었고 이념적 다원주의를 분명하게 표명하게 되었다. 경제이론과 경제정책 차원에서는 케인즈 경제학에 크게 의존하였다. 또 2차대전 이후 조성된 냉전체제 하에서 서방 진영의 일원이라는 자기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반공주의적 입장을 더욱 분명히 했다. 2차대전 이후 서유럽 사민주의 세력이 많이 사용한 ‘민주사회주의’(democratic socialism)이란 용어는 소련 등의 국가사회주의 또는 전체주의적 사회주의와 자신을 구별하기 위한 것이었다(신정완, 2002: 307). 그러나 서유럽 사민주의자들이 맑스주의의 이론체계 모두를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레닌주의 및 스탈린주의를 맑스주의의 왜곡사례로 보며 오히려 자신들이 맑스의 사상의 합리적 핵심을 제대로 계승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동시에 현대 자본주의의 경제구조 및 정치질서를 이해하는 데 있어 맑스주의가 많은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서유럽 사민주의의 전성기는 2차대전 이후 1960년대 말까지의 기간이었다. ‘자본주의의 황금기’로 불리는 이 기간에 이루어진 고도 경제성장에 힘입어 사민주의자들은 케인즈주의적 거시경제정책과 적극적인 사회복지정책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사회개혁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서유럽 사민주의 세력의 정책에서 발견되는 핵심적인 특징으로는 다음과 같은 점들을 들 수 있다.
첫째, 자본주의 경제의 기본 골격을 인정한다는 점이다. 즉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와 시장에 의한 자원배분을 인정하고 사실상 존중한다는 점이다. 다만 자유주의자들에 비해 생산수단의 공적 소유의 비중을 좀더 높은 수준에서 유지하려 하며, ‘시장실패’의 범위를 좀더 넓게 잡아 국가와 노동조합에 의한 경제 개입과 규제의 필요성을 좀더 적극적으로 인정해왔다. 또 예외적 사례로서 1970년대 중반에 사민주의 세력인 스웨덴의 노동조합 총연맹(LO)이 제출한 ‘임노동자기금안’이 있는데, 이것은 노동조합이 점진적이고 합법적으로 대부분의 민간 대기업의 소유권을 장악하려 한 매우 급진적 구상이었지만 부르주아 진영의 격렬한 반대 등으로 인해 결국 무산된 바 있다.
둘째, 조세정책과 사회복지정책을 통한 소득과 소비의 재분배에 치중한다는 점이다. 주로 누진소득세와 국가 중심의 사회복지제도를 통해 온 국민을 사회안전망의 틀 안으로 포용해내려 노력하였으며, 또 상당 부분 성공하였다. 이를 두고 ‘생산의 사회화’ 대신에 ‘소비의 사회화’를 선택한 셈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셋째, 사회주의의 정의ㆍ평등ㆍ연대의 정신에 따라 다양한 사회적 약자층의 경제적ㆍ사회적 권리를 신장시키는 데 노력한다는 점이다(신정완, 2002: 307-308). 특히 사민주의 운동의 핵심 지지층인 노동자계급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향상시키는 데 가장 주력하였다.
국제 사민주의 운동은 특히 분배 영역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루었지만 많은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첫째, 자본주의 경제의 기본 구조를 바꾸지는 못했고, 바꾸려는 의지 자체도 점차 희박해졌다. 적어도 사민주의적 개혁의 축적을 통해 장기적으로는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지양할 수 있으리라는 초기 좌파 사민주의자들의 희망은 실현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사민주의적 개혁의 축적을 통한 점진적 체제이행을 어렵게 하는 요인은 매우 다양하다. 의회주의 노선에 내재한 ‘선거의 딜레마’, 자본가계급의 저항, 사민주의적 개혁정책과 자본주의 경제 원리 사이의 마찰, 성공한 사민주의 운동의 자본주의 체제 내로의 포섭 효과, 즉 ‘개량의 딜레마’, 또 경기순환으로 인해 개혁정책의 비가역적 누적이 어렵다는 점 등 수많은 것을 들 수 있다. 따라서 적어도 현 국면에서 사민주의 이념을 선택한다는 것은 자본주의의 극복이 아니라 자본주의와의 장기공존을 선택하는 길이라는 점이 분명해졌다(신정완, 2002: 309-310, 2004: 210).
셋째, 사민주의적 정책이 상당한 성공을 거둔 지역은 서유럽에 국한되었다. 비유럽 지역에서 활동한 사민주의 정당들은 대체로 힘도 미약했고 성과도 좋지 못했다. 다만 최근에 브라질의 PT 당이 집권함으로써 제3세계에서 사민주의 운동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특히 풀뿌리 대중에 의한 참여민주주의가 한결 강화된 급진적 사민주의 운동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큰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브라질의 과중한 외채 상환 부담으로 인해 집권 이후 대체로 신자유주의적 기조의 경제정책을 추진해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1) 이러한 사정들은 사민주의가 국제적으로 보편타당성을 가질 수 있는 이념이자 운동이라는 점이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신정완, 2002: 309). 사민주의 이념은 거의 예외 없이 대체로 산업화가 이미 상당 수준 이루어지고 정치적 민주주의가 잘 뿌리내린 사회에서 착근될 수 있었고 좋은 성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
1980년대 이후 진행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각국의 사민주의 세력에게 크나큰 도전으로 다가왔다. 특히 금융 세계화로 인해 ‘이탈선택’(exit option)의 기회를 크게 갖게 된 자본은 노동과 국가에 대한 교섭력을 현저히 강화시켰다. 각국 정부는 자국 자본의 해외이탈 방지와 외자 유치를 위해 자본축적에 유리한 조건을 경쟁적으로 내놓아야 할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데 이는 사민당 정부의 경우에도 해당된다. 영국 노동당이 전통적인 사민주의와 신자유주의 사이의 중간의 길인 ‘제3의 길’(the third way)을 사민주의의 활로로 제시한 것도 이러한 사정을 배경으로 한다(신정완, 2002: 311). 글로벌 자본주의라는 환경 속에서 생명력을 보일 수 있는 글로벌 사민주의 전략을 형성하는 일이야말로 현재 국제 사민주의 운동이 직면한 최대의 과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유럽 사민주의 운동의 역사를 살펴볼 때, 사민주의 이념 및 그 구현형태인 사민주의 정치란 결국 자본주의 체제로부터의 이탈을 지향하는 사회주의 이념이 발휘하는 원심력과 현존 경제체제인 자본주의로부터 나오는 중력이 결합되어 나온 혼성물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19세기의 사민주의는 대체로 자본주의 체제의 극복을 지향하는 급진적 이념이었다고 할 수 있으나, 20세기를 거치면서 그것이 거둔 부분적 성공과 자본주의 체제가 부과하는 강한 제약으로 인해, 2차대전 이후에는 대체로 보다 평등주의적인 방향의 체제 내 개혁을 지향하는 이념으로 정착되었다고 할 수 있다. 만일 사회주의 이념이라는 것을 자본주의와는 원리적으로 다른 경제체제를 지향하는 이념이라고 다소 엄격하게 규정한다면, 현재의 사민주의는 사회주의의 우파라기보다는 오히려 자유주의의 좌파에 가까운 이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사민주의 이념 속에는 사회주의와 자유주의의 요소가 혼재되어 있는 관계로, 사민주의는 그 주요 경쟁이념인 자유주의나 맑스주의에 비해 이념적 완결성과 체계성이 약하다. 실제로 사민주의 우파의 이념은 자유주의 좌파의 이념과 크게 구별되지 않고, 사민주의 좌파의 이념은 맑스주의의 요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민주의는 근대 사회의 지배이념으로 기능해온 자유주의가 보유한 두터운 지성의 퇴적물을 갖고 있지 못하며, 인류 역사의 발전과정과 전망을 일관된 논리로 설명하는 맑스주의가 보여주는 이념적 체계성과 선명성을 보이지 못한다. 그러나 사민주의 이념의 이러한 혼성적 성격과 비체계적 성격은 사민주의 운동에 유연성을 제공하는 측면도 있다. 또한 어떤 사회이념이라는 것이 비록 비교적 일관되고 체계적으로 보인다 하더라도 결국 근본적으로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이렇게 불완전한 사회이념의 논리를 극한까지 추구할 때 초래될 수 있는 거대한 실패나 비극의 위험을 피하게 해주는 측면도 있다. 사민주의 이념은 주로 노동자계급의 절박한 현실적 이해관계와 평균적 정서를 반영하여 형성되고 진화해온 이념으로서, 정교하게 조직된 지적 구성물이라기보다는 경험에 기초한 양식(良識)에 가까운 질박한 이념이라 할 수 있다.
2. 한국사회에서 사회민주주의 이념의 궤적과 현황
한국사회는 사민주의 이념이 뿌리내리기에는 너무 척박한 토양이었다. 해방 이후에 한정하여 이야기하자면 우선 해방공간의 중도좌파 정치인 여운형이 이끈 조선인민당(이후 사회로동당으로, 또 근로인민당으로 개명)이 사민주의에 가까운 이념을 가졌던 정치세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운형을 중심으로 한 정치세력은 서유럽 사민주의 이념과 운동경험에 대한 지식을 많이 가졌던 것은 아니었겠으나, 당시 극렬한 좌우대립 속에서 중도좌파적 통합을 지향하였고 민주주의와 민족주의, 그리고 사회주의의 요소를 포함한 이념노선을 견지한 정치세력이었다고 볼 수 있다(정태영ㆍ오유석, 2001: 263-272).
한국전쟁 이후에는, 일제강점기에 공산주의자로 활동했던 조봉암이 이끈 진보당이 사민주의적 정당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회경제정책 측면에서 평등주의적 정책과 남북관계와 관련하여 평화통일노선을 내세웠던 진보당은 이승만 정권에 의한 조봉암의 법살(法殺)로 인해 막을 내렸다. 4.19 직후에 우후죽순처럼 생겼던 여러 혁신계 정치세력들도 대체로 진보당의 노선을 계승하는 사민주의 세력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세력들도 5.16 쿠데타를 통해 거의 모두 압살되었다. 1960년대에서 1980년대에 걸쳐 통일사회당(이후 사회당, 또 사회민주당으로 개명)을 이끌며 한국 사민주의 운동의 명맥을 이어간 김철 같은 진지한 사민주의자도 있었으나, 그가 이끈 정당은 노동자계급에 뿌리내린 것도 아니었고 정치적 영향력도 거의 전무했다고 볼 수 있다.
1980년대에 전개된 민주화운동 세력의 이념적 급진화는 소련이나 북한을 지향사회 모델로 삼는 급진적 사회주의 이념을 대두시켰다. 그리하여 대체로 러시아 혁명과 소련 체제를 모델로 삼았던 PD(민중민주주의)와 북한 체제와 주체사상을 지지ㆍ신봉했던 NL(민족해방주의)을 중심으로 하는 좌파 내 이념구도가 형성되었다.2) 광주학살을 자행한 잔혹한 군사정권의 억압이 유지되는 정치상황은 서구식 사민주의가 자리 잡을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에 전개된 소련-동구 사회주의권의 전면 붕괴와 한국에서 정치적 민주주의의 진전은 급진 혁명노선보다는 온건 개혁노선을 더욱 설득력 있는 운동노선으로 대두시켰다. 그리하여 서구 사민주의의 경험이 의미 있는 연구대상으로 떠오르게 되었다(신정완, 2000: 24). 그러나 사민주의를 대안적 이념으로 분명하게 천명한 사례는 극히 드물었는데 이는 사민주의에 대한 지식의 부족과 전통적인 급진 사회주의 이념노선의 여전한 영향력 등에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3) 1990년대에 들어 서구 사민주의 이념에 관한 소개서도 몇 개 나왔지만 사민주의 연구의 주된 흐름은 스웨덴, 독일 등 사민주의 세력이 강한 사회의 노동 관련 제도나 정책, 또 사회복지 관련 제도나 정책 등을 긍정적 입장에서 소개하는 ‘지역연구’였다. 그러다 2001년 말에 사민주의 지향을 분명히 하는 연구자들의 연구ㆍ교육모임으로서 ‘한국 사회민주주의 연구회’가 결성되었고 이 단체의 지도부 일부가 2003년에 한국노총이 결성한 ‘한국사회민주당’에 참여하기도 했다.4)
현재 한국의 정치세력 및 사회운동세력 중에서 대체로 사민주의 이념을 지향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향후 사민주의 운동의 중심세력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보이는 조직은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이다. 그동안 여러 차례 거듭된 진보정당 실험의 실패를 딛고 2004년 4월 총선에서 의회에 진출한 민주노동당의 이념적 성격은 복잡하다. NL적 조류와 PD적 조류가 중심을 차지하는 가운데, 서구식 사민주의적 조류도 비중 있게 자리 잡아가고 있고, IS(국제사회주의) 조류, 또 어느 정도는 탈근대적 조류도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PD적 조류는 1980년대의 PD와는 성격이 크게 다르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PD적 조류란 민족문제를 강조하는 NL적 조류와 대비되게 계급문제, 또는 사회경제적 문제를 중시하는 입장을 의미하며, 1980년대의 PD 이념과는 달리 의회민주주의제도를 통한 집권과 점진적 사회개혁을 추구하는 입장이다. 다만 구체적 목표라기보다는 일종의 에토스로서 자본주의와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모종의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지향을 잃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서구적 사민주의와 구별되는 정도이다. 따라서 적어도 현 국면에서는 PD와 사민주의를 구별하는 것은 거의 무의미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고 앞으로는 그 차이가 더 작아질 것으로 생각된다.
민주노동당은 당 강령에서 국가사회주의의 오류와 사민주의의 한계를 동시에 극복하겠다며 사민주의에 대해 유보적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지난 총선에서의 선거 공약의 내용이나 그간의 정치 행태를 통해 판단할 때 민주노동당은 이미 실질적으로 사민주의 정당으로서의 성격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리가 아닐 것 같다(신정완, 2004: 197-198). 그리고 필자는 민주노동당이 사민주의 정당으로서의 성격을 강화시켜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민주노동당의 최대 조직적 기반이기도 한 민주노총의 경우 국민파, 중앙파, 현장파 등의 정파로 나뉘어져 있고, 명확한 이념노선을 표명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간의 노동조합운동 노선에 비추어볼 때 사민주의적 노동조합세력이라고 판단하는 데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또한 1987년 6월시민항쟁 이후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많은 진보 성향의 시민운동단체들도 사민주의 이념과 친화력을 갖는 사회운동세력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3. 사회민주주의 이념이 한국사회에 뿌리 내리려면
필자는 사민주의 이념이 한국사회에 뿌리내려 사회구성원들의 복지 증진에 크게 기여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또 우리 사회의 진보세력이 향후 추구해야 할 이념으로서 사민주의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국가사회주의 체제의 거대한 붕괴 이후 국제적으로 상당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는 동시에 역사를 통해 그 성과와 한계가 검증된 사회주의적 이념으로서는 사민주의가 유일하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사민주의 이념을 구현하려 노력한다는 것은 미지의 세계를 모험적으로 탐험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사민주의는 의존할 수 있는 주된 정책수단과 운동방식, 또 이를 뒷받침할 지적 자원이 잘 알려져 있어 너무 많은 시행착오와 큰 위험을 감수할 필요 없이 구현을 시도할 수 있는 이념이다.
둘째, 서구 사민주의 운동은 대체로 긍정적인 성과를 가져왔다. 사민주의 운동은 공산주의 운동과는 달리 사회구성원에 대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억압이나 거대한 경제적 실패를 가져온 바 없다. 사민주의가 뿌리내려 사회의 중요한 이념이자 제도, 정책으로 자리 잡은 사회들에서는 시민적 자유가 보장되었으며 노동자계급 등 사회적 약자층의 사회경제적 지위도 크게 개선되어왔다. 물론 이는 사민주의 운동이 자본주의 경제의 성과에 얹혀갈 수 있었던 데에도 기인하겠으나, 사민주의 운동이 자본주의 경제의 체질과 작동방식을 변화시킬 수 있었던 데에도 크게 기인한다.
셋째, 한국사회는 사민주의 정치가 작동할 수 있는 첫 문턱을 이미 넘은 사회라 볼 수 있다. 세계 11위 정도를 차지하는 경제규모나 상당히 고도화된 산업구조, 그리고 늦긴 했지만 힘겹게 성취한 정치적 민주주의 등으로 볼 때 한국사회는 제3세계보다는 제1세계적 특질을 한결 많이 가진 사회라 할 수 있다. 서유럽에서 사민주의 운동이 태동하던 시기는 말할 것도 없고 사민주의 운동의 전성기였던 2차대전 이후 1960년대까지의 기간에 서유럽 자본주의의 발전수준이 현재의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수준보다 높지는 않았다(신정완, 2004: 210).
넷째, 한국사회의 현실은 사민주의적 개혁정책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 한국사회는 지금도 빈곤으로 인한 가족동반자살이 그리 드물지 않게 발생하는 사회이다. 경제대국, 무역대국의 이면에는 빈곤과 차별로 신음하는 수많은 서민대중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급속히 진행되어온 사회양극화는 사민주의적 재분배정책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사민주의는 정치적 민주주의의 정착 이후 자연스레 핵심과제로 떠오른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진전에 충실히 기여할 수 있는 이념이다.
다섯째, 사민주의는 현재 한국의 다양한 개혁ㆍ진보적 사회운동세력이 보이고 있는 이념적 스펙트럼에서 대체로 중간적 위치에 놓인 이념이라 볼 수 있다. 보다 투명하고 합리적인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개혁적 자유주의 이념과 근본적인 사회변혁을 지향하는 급진 사회주의 이념 사이의 중간위치에 있는 사민주의는 다양한 이념조류들이 잠정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수준의 이념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사민주의를 중심으로 사회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가능성도 그만큼 많다고 볼 수 있다.
사민주의는 개혁적 자유주의자들이 추구하는 보다 투명하고 합리화된 자본주의 질서 형성에 힘을 보탤 수 있다. 또한 사민주의는 북한 체제를 지지하는 극단적 NL 노선과는 길을 같이 갈 수 없으나, 민족자주와 남북 화해협력을 통한 평화통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광의의 NL 노선, 또는 민족주의 이념의 대의는 유보 없이 수용할 수 있다. 사민주의는 급진적 사회혁명을 추구하는 급진 사회주의 이념과는 철학을 달리 하지만, 급진 사회주의자들의 가슴 깊은 곳에 있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대감과 평등주의를 공유한다. 급진 사회주의자들도 중단기적으로는 자본주의 체제의 틀 내에서 사회복지제도를 확충하고 노동권을 신장하는 데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므로 사민주의는 급진 사회주의와도 상당 기간 동행할 수 있다.
사민주의는 생태주의 등 탈근대적 이념과는 이념적 뿌리와 주 관심사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근본주의적 생태주의와는 철학을 달리 하지만, 생태주의 등 탈근대적 이념을 무시하지 않고 오히려 이들의 주장을 상당 정도 겸허하게 수용할 수 있다. 실제로 서구의 사민주의 정당들은 자유주의 정당들에 비해 생태적 가치를 더 중시해왔으며, 독일이나 스웨덴에서처럼 생태주의 정당들과 연립정부를 수립하거나 정책연합을 형성한 경험도 많다. 또 사민주의는 극단적 페미니즘과는 잘 어울리지 않겠지만 각국의 사민주의 세력은 거의 모두 여권 신장에 노력해왔다. 특히 사민주의 세력이 주 관심사인 복지국가의 발전은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개선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사안이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관련하여 가장 앞선 사회들로 정평이 나 있는 북유럽 사회들은 모두 사민주의 이념이 강력하게 뿌리내린 사회들이다.
그러나 물론 사민주의에 대한 비판논리도 만만치 않다. 우선 급진 사회주의자들은 사민주의가 자본주의 체제 내에 안주하는 ‘체제 내 좌파’ 이념라고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소한 개혁을 위해 큰 해방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세력이라고 비판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노선이 옳다는 점을 입증해야할 ‘거증책임’을 더 많이 지고 있는 쪽은, 오랜 기간을 통해 그 성과와 한계를 많이 드러내 보인 사민주의라기보다는 아직은 막연하기만 한 ‘해방사회’를 꿈꾸는 급진 사회주의 이념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편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지배하는 시대에 사민주의 정치가 성공할 수 있겠느냐, 서구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사민주의가 경제발전 수준에서 서구에 한참 못 미친 한국에서 성공할 수 있겠느냐는 비판도 중요하게 제기될 수 있다.
세계화로 인해 사민주의 정치가 작동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인 국민국가와, 자본이 운동하는 공간인 세계경제 간에 공간적 간극이 크게 생겼고 이로 인해 사민주의 정치의 운신의 폭이 좁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세계화가 각국의 정치에 미치는 영향은 다양하고 복잡한 경로를 통해 작용한다. 그리고 세계화에 의해 사민주의 정치가 단단히 포박되어 있다는 논의들은 많은 경우 지나치게 단순화되어 있고 과장되어 있기도 하다. 예컨대 한국에서 사회복지제도의 확충을 위해 소득세 누진율을 높인다고 해서 국내 자본이 해외로 이탈하고 외자 유치가 어려워질 것 같지는 않다. 노동자의 권익 증진 조치는 자본 이동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겠으나 자본 이동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너무 많아 노동자의 권익 증진 조치가 바로 자본 이탈과 산업공동화를 낳는 것은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아직 조세부담률이 낮고 사회복지제도의 정비 수준과 노동권 보호 수준이 낮은 한국사회는 서구 사회에 비해 향후 사민주의적 개혁 추진의 여지가 더 넓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자체가 국제 사민주의 운동이 제동을 걸고 순치시켜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
필자가 보기에 한국에서 사민주의 운동의 성패를 가름할 핵심 변수는 세계화와 같은 환경적 변수라기보다는 운동 주체의 역량 정도라 판단된다. 사민주의 세력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필요한 일은 매우 많겠지만 여기에서는 다음 세 가지만 강조하기로 한다.
첫째, 지적 역량을 강화하는 일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사민주의는 그 경쟁이념인 자유주의나 맑스주의와는 달리 개별 사안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 있어 확고한 기본전제로부터 연역해내는 방식으로 해결책을 찾아내기가 어려운 이념이다. 예컨대 현 국면에서 자유주의의의 지배적 형태로 군림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경우에는 시장에 대한 거의 절대적 신뢰와 국가나 노동조합에 대한 교조적 거부감에 기초하여 거의 모든 사안에서 시장의 역할을 증대시키고 국가나 노동조합의 역할을 축소시키는 방향의 처방을 제시한다. 개별 사안에 대한 구체적 분석 이전에 이미 대강의 답이 나와 있는 셈이다.
반면에 사민주의는 일관성 높은 이론들로 구성된 교의적(敎義的) 이념체계가 아닌 관계로 확고한 기본전제로부터 연역적으로 개별 사안에 대한 해답을 도출해내기 어려운 이념이다. 예컨대 노동이나 사회복지 문제와 관련하여 신자유주의자들과는 정반대로 항상 시장의 역할을 축소시키고 국가나 노동조합의 역할을 강화시키는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사민주의자들의 올바른 접근법일 수는 없는 것이다. 주로 신고전파 경제학이 많이 보여준 바와 같이, 시장과 국가 사이에는 복잡한 상호작용이 존재하고 또 새로운 제도나 정책에 대해 경제주체들이 대체로 이기적이고 합리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평등주의적 의도 하에서 시장의 역할을 줄이고 국가의 역할을 늘리는 방향의 정책을 쓴다고 해서 반드시 의도대로 평등주의적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사민주의자들은 우선 개별 사안의 사실관계를 충분히 이해하고 새로운 제도나 정책이 최종적으로 결과를 산출하기까지의 복잡한 과정을 면밀하게 검토하려 노력해야 한다.
또한 사회의 각 부문에서 이루어지는 부분적 개혁조치가 최종적으로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를 개략적으로라도 예측하려면, 사회의 여러 부문간의 상호작용을 고려하는 접근법, 즉 경제학적 용어로 표현하자면 ‘일반균형이론적 접근법’이 요구되는데, 이는 높은 수준의 지적 역량을 필요로 한다. 현재 한국의 개혁ㆍ진보진영은 이런 점에서 역량이 매우 부족한 상태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향후 사민주의 세력은 사회운영에 긴요한 지식, 즉 사회공학적 지식을 충분히 습득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특히 신고전파 경제학이나 케인즈 경제학과 같은 주류경제학의 성과를 흡수하여 이를 자신의 평등주의적 이념을 구현하는 데 유용하게 활용할 필요가 있다.
지적 역량을 강화시키기 위해서는 분야별 전문가들을 양성하거나 최소한 기존의 전문가들과 우호적 네트웍을 형성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특히 각국 사민주의 세력의 운동 및 정책경험에 대한 구체적 지식을 보유한 전문가들과 조세, 금융, 국제경제 등 사민주의 세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확보하는 일이 중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현재 한국 상황에서 주류경제학자를 대표로 하는 사회공학적 전문가들은 대부분 자유주의적 또는 신자유주의적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전문가 확보가 용이하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이나 민주노총 등 사민주의 세력은 ‘사민주의적 유기적 지식인’을 양성ㆍ확보하는 ‘지식인정책’에 많은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진보진영 내부에서는 급진 좌파와의 논쟁구도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겠고, 아마도 이념적 정체성에 기초한 실존적 충족감을 필요로 하는 많은 사민주의자들은 이 문제에 더 관심을 갖기 쉽겠지만, 사회 전체 차원에서는 자유주의 세력과의 정책경쟁이 압도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분야별 사회공학적 지식을 갖춘 전문가들을 확보하는 일이 추상적 이념논쟁의 수준을 높이는 일보다 한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둘째, 모든 사안에 접근함에 있어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처지에 있는 계층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예민한 윤리적 감수성을 유지하려 노력해야 한다. 이는 어찌 보면 너무 뻔한 이야기로 들릴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계급을 위시하여 서민대중을 대변하는 사민주의 세력이라면 당연히 이런 자세를 가지리라 생각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고 생각된다. 사민주의 세력도 의석을 늘리고 정치적 영향력을 효과적으로 행사하기 위해선 규모가 크고 잘 조직되어 있으며 사회적 영향력이 큰 조직들과의 연대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게 되기 십상이다. 노동조합이나 규모가 크고 잘 알려진 시민운동단체 등이 대표적인 연대ㆍ협력대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어느 사회에서나 가장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들은 조직되기가 어렵고 사회적 발언권도 작다. 특히 한국사회의 경우 노조 조직률이 매우 낮고 노동자계급 중에서는 형편이 나은 편인 정규직 노동자 중심으로 노조가 조직되어 있는데다, 사회적 발언권과 정치적 영향력이 큰 시민운동단체들은 대체로 교육수준이 높은 개혁 성향의 중간계층 인사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 한국사회에서 가장 어려운 형편에 처한 사람들은 발언권도 거의 없고 사회적으로 잘 눈에 띄지도 않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조직할 능력도 부족하여 끝까지 어려움을 혼자 견뎌내다 한계상황에 이르면 자살과 같은 극단적 방식으로 ‘발언’한다. 사민주의는 그 누구보다도 바로 이런 사람들을 위해 필요한 이념이자 운동이다. 정치적 동원의 편의성을 너무 중시하다 보면 이런 한계계층으로부터 멀어져가기 쉽다. 애써 들으려 노력하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데 주력해야 사민주의 운동이 제 소임을 다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 사민주의 운동이 보다 확고한 이념적 토대를 마련하려면 좌파 자유주의 이념과 윤리주의적 사회주의 이념에 대한 심층 학습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전통적인 NL/PD 이념은 사민주의 이념의 토대로서는 기본적으로 부적절한 이념이므로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보다 튼튼한 이념적 기초가 필요하다. 그런데 서구 사민주의의 경우 지금까지 핵심적인 이념적 자산으로 기능해온 것은 좌파 자유주의 또는 사회자유주의(social liberalism)와 비혁명주의적, 윤리주의적 사회주의였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스웨덴 사민주의 세력의 경우에도 사회공학적 지식은 주로 케인즈주의 등 좌파 자유주의에 크게 의존했고 평등주의적, 연대주의적 에토스는 윤리주의적 사회주의 조류로부터 공급받아왔다. 21세기의 한국 실정에 맞는 사민주의 이념을 정립하려면 물론 그 이상의 지적 탐구가 필요하겠지만 우선은 여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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