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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피로 여문다
게시물ID : sisa_34011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치타통조림
추천 : 1
조회수 : 244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2/12/28 18:13:46

1. 민주주의는 무엇인가?

 

강남에서 부자들이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것을 아무도 무어라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게임의 룰, 민주주의라는 게임이 가장 처음 만들어졌을 때 당연히 고려했던 요소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아름다운 이유는, 사람들이 모두 제 잇속을 챙기기만 하면 잘 굴러가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아름다우며, 얼마나 환멸에 가득 찬 시스템인가? 사람들의 사랑에도, 믿음에도, 아무것에도 기대지 않는다. 다만 사람들이 제 잇속을 차리는 그 이기심에 기대어서, 그나마 잘 굴러가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다. 바로 그러하기에 부자들이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자에게 투표하는 것을, 아무도 무어라 하지 않는다. 그건 정당한 일이다.

 

하지만 가난한 자가 부자정당에, 부자가 가난한 정당에 투표하는 이 현상은 대체 무어란 말인가?

 

강남과 서초 송파에서 이번에 문재인을 지지하는 세력이 40% 였다.

 

이 40%는 대체 무어란 말인가?

 

가난하기 짝이 없는 강원도, 충청도, 노동자 많은 울산은 새누리당을 지지했다.

 

이건 대체 또 무어란 말인가?

 

결국,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사람들은 자기 잇속을 차리는 것으로 투표하지 않는다. 그들은 결코 그러지 않는다. 도리어 다수의 사람들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쪽에 표를 던진다.  

 

 

 

 

2. 반공과 빨갱이?

 

친구 어머님이 연세가 많으시다. 그 분은 6.25가 일어났을 때 열 살이 간신히 넘은 소녀셨다.

 

그 분은 멀쩡하고 유순한 학교 선생이, 북한군이 남침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총을 꺼내 들고 이웃과 친척들을 죽이는 것을 직접 두 눈으로 목격했다.

 

'피의 기억'은, 한 인간이 세상을 바라보는 틀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반공/빨갱이 로 대립되는 도식으로 모든 것을 바라본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자라난 아이들 역시 같은 반공/빨갱이 틀을 유산처럼 받게 된다.

 

더군다나, 이승만-박정희가 그렇게나 굳건하게 구축해 놓은 반공의 이데올로기는 아직도 엄청나게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고, 유효하다.

지금에 와서는 인혁당 사건이 사법살인이라고 하지만, 그 당시에는 어떠했는가? "아직도 우리 주변에 이런 빨갱이들이 있었다!" 라는 충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다시 한 번 이웃이 벌떡 일어나 총을 쏴 갈길지도 모른다는 그 이미지는 그렇게 유지되었다.

 

생각하는 것은 고단한 일이며, 과거의 역사를 아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절대다수의  대중의 표심을 결정하는 것은, 그가 속한 소속집단의 '분위기'일 뿐이다. 논증, 자료, 개념적 틀, 심지어 이익과 손해조차도, 별 관심 없다.

(실제로 어떤 정치인이 어떤 법안을 입안 하는 것과 그것이 나와 우리 사회에 어떤 손익을 가져올지 알기 위해서는 무척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결국, 이러한 반공/빨갱이의 개념틀은 시대를 거쳐 유전된다.

 

 

 

3. 피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오직 피만을 기억한다. 위에 예를 들었던 어머님은 평생 그 사건을 잊지 못할 것이다. 왜인가? 그곳에 피가 있었기 때문이다.

 

부마항쟁을 기억하는가?

 

부산-마산에서 일어난 반유신독재 항쟁은 그 규모면에서 광주 민중 항쟁보다도 컸고, 박정희가 마지막 연회 장소에서 했던 말 대로, "다 쓸어버려" 이었다면, 아마 사상자는 광주항쟁에 비할 바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김재규가 그걸 막았다.

 

그리고 10년 후, 광주학살이 일어났다.

 

그리고 26년 후, 광주는 가장 높은 투표율로 독재자를 반대한다.

 

나는 생각한다.

 

그때, 부마항쟁을 탱크로 쓸어버려야만 했다고.

 

보라!

 

광주와 전라도는 그때의 기억을 잊지 못한다. 사람들은 너무 많은 것을 잊지만, 피만은, 자기들이 흘린 피 만은 잊지 않는다. 냉소적으로 말하자면, 사람들은 자기 부모와 자기 자식이 죽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오직 그 기억만으로, 민주주의는 자라난다. 

 

군국주의와 나치로 끔찍한 꼴을 보았던 유럽은 전통적으로 좌파의 세력이 강하다. 기억 때문이다. 경험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아무것도 없다. 광주항쟁이 가장 자극적인 학살극이었다.

 

즉, 광주를 제외한 사람들에게 가장 가까운 '피의 기억'은 여전히 6.25 이고, 광주와 전라도 사람들에게 가장 가까운 피의 기억은 '광주 항쟁'이었다.

 

그러나, 나는 어제 깨달았거니, 민주주의란 광주항쟁 같이 조그만 핏방울로는 여물지 않는 과실이었다. 광주 같이 작은 도시 가지고는 턱도 없다!

 

만약 부마항쟁에서 광주 사람 대신 부산과 마산 울산에서 엄청난 사람이 죽었더라면, 아마 경상남도와 경상북도는 그 특유의 결집력을 가지고 깊은 마음으로 새누리당을 증오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박정희는, 바로 암살되었기 때문에, 아주 훌륭한 독재자라 할 수 있다.

그는 독재자중에서 가장 사람을 덜 죽였으며, 경제발전도 이루었다는 이미지 메이킹도 했다.

어떤 면에서 보면 독재와 민주주의라는 개념 자체가 의미가 없고,

중요한 것은 그저 반공/빨갱이 인 개념틀을 가진 사람들이 박정희를 욕할 이유는 애당초 없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접목된 민주주의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그런 식으로 쉽게 과실을 주지 않는다.

 

피 없이는 결코 여물지 않는다. 피. 오직 피가 필요한 것이다.

 

사람들이 피 외에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기에, 특히 그러하다.

 

 

 

 

 

4.

 

박근혜가 됐다.

 

언론 통제는 더 심해질 것이다.

 

그의 토론태도를 보아하니, 그는 준비가 된 독재자다.

 

그는 독재할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

 

나는 그 마지노선을 '선거'로 보고 있다. (1차 마지노선이어야 했던 언론은 너무 쉽게 무너졌다)

 

5년 후 선거가 '정상적으로' 치뤄지기만 한다면, 아직 희망은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명박으로 이미 심해진 사법, 입법, 행정의 3위 일체가 대통합을 이루고, 박근혜 특유의 무식함으로 인해  독재가 가없이 깊어진다면,

 

아마도 5년 후에도 새누리당이 될 확률이 높다. 심지어는 헌법을 뜯어 고치면 박근혜가 또 볼 수도 있다.

 

그런 식의 장기화된 독재에, 사람들은 얼마나 견디는가?

 

아주 오랫동안. 40년은 견딘다. 40년을 신음하며 견디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에 유혈사태가 벌어진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투표가 아름다운 것은, 유혈사태를 막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평화에 젖어 잘 느끼지 못하지만, 이렇게 전 인구의 절반이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가진 곳에서,

대규모 유혈사태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오직 선거라는 제도 덕분이지, 결코 다른 게 아니다.

 

유혈의 혁명과, 평화로운 정권교체 사이에는 선거라는 백지장보다도 얇은 막 하나 외엔 없다.

 

박근혜는 5년 후 그 선거조차 찢어발길 정도로 독재를 심화 시킬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향후 20년은 독재정치가 시작될 것이다.

 

만약 아니라면, 다시 또 우리는 희망을 품으리라. 그리고 거기서도 진다면, 다시 또 독재는 시작된다.

 

그리고 우리는 권력이 선거를 찢어버리는 지점까지 묵인 하고,

 

그리고 한 20년 정도 신음하다가, 그제야 피를 흘리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 유혈 사태, 50년 후 쯤에는, 좀 더 나은 민주주의가 도래할지도 모른다.

 

 

 

 

 

 

5. 결론

 

민주주의는 피가 필요하다.

 

그것도 매우 다량의 피가 필요하다.

 

서울, 혹은 부산에서 만 명 이상이 죽어야만 한다.

 

 내 주검은 그 사이에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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