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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한복판에서 나는 또 가슴이 먹먹해졌어.
게시물ID : gomin_38904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검은하늘
추천 : 1
조회수 : 399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2/08/22 19:19:30

방학이라 집에 다녀왔어.


서울역을 가로지르는데 우리 처음 만난날이 생각났어. 

그때도 여름이었고, 방학이었고, 너는 고향에 다녀오는 길이었지.

마중나가겠단 핑계로 처음으로 둘만 따로 만나는 약속을 잡은 날

설레는 마음으로 일찍 부터 서둘렀지만 결국 늦어버렸어. 

떨려서 무슨 얘기를 했는지도 기억이 안나.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고 애썼던 것 말고는.


그렇게 우리는 만났고, 조금 더 가까워졌고, 사랑하는 사이가 됐어. 


도시락 싸서 놀이 동산 간 날

강원도며 부산이며 여행 다녔던 기억

슬리퍼 끌고 심야 영화를 보러 갔다 돌아오는 길에 햄버거를 먹으면서

'우리 이러다 돼지 되겠다' 하고 웃었던 밤.

주고 받았던 선물들. 니가 처음으로 해줬던, 나를 펑펑 울게한 이벤트.

수줍은 애정 표현. 설레는 스킨십까지.


나는 많이 행복했던 것 같아. 

니가 나를 좋아한다는게 하나의 망설임 없이 믿어져서 

나는 마음이 편하고 행복했어. 

날이 갈 수록 우리는 편해졌고, 자주 싸웠고, 다시 화해했지. 


그 때 군대라는 놈이 왔어. 


난 자신이 없었어. 

너 이전 사람과 멀리 떨어진 것을 계기로 헤어졌으니까. 

내가 너에게 믿음을 못줬던 건지

니가 여기까지라고 생각했던 건지

우리는 조금씩 변해갔어.


그래서였을까.

그동안 숱한 싸움에도 난 불안하지 않았는데

날짜가 다가올 수록  점점 불안해지는거야. 

그래서 널 다그쳤어. 널 믿을 수 있게 불안하지 않게 해달라고. 

그리고 헤어졌지 너무 쉽게.


나는 그날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많은 술을 마셨고

아침에 일어나니 온몸이 멍 투성이에 입술까지 터져 있었어. 

되돌리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어. 

다른 사람이 된 듯 날 보는 널, 마주할 자신이 없었어. 


그렇게 너는 군대엘 갔어. 

세상이 좋아져서 인터넷 편지란걸 쓸 수 있나봐. 

나는 하루에 하나씩 20통의 편지를 너에게 보냈지만.

넌 한통도 답하지 않았어. 

조용히 마지막 남은 마음도 정리했어. 


두달도 채 되지 않아 너에게 새로운 사람이 생겼단 소식이 들렸어. 

나도 내맘대로 살기 시작했어.

소개팅도 하고, 클럽도 가고, 술도 마시고, 여행도 다니고....

자유롭게 방황했어. 누구한테도 정착하지 않고. 

홀가분하고, 쓸쓸하게.


그렇게 일년이 지나 다시 여름이다.

나는 덩치에 안맞게 순진한 얼굴을 한,

내가 너무 좋아서 마음이 벅찬다는 사람과

시작해보려해. 


고마워.

스물 한살 여름부터, 스물 두살 여름까지

가장 젊고 예쁠때

곱씹어 되새길만한 추억 남겨줘서. 

우리가 그렇게 예뻤구나 하는 추억. 


고마워.

그래도 내 생일 잊지않고

늦게나마 축하해줘서. 


난 아직도 군인을 보면 다시 한 번 봐.

이런 나와는 다른,

전화 한 통 없는 너를 매정하다 욕할 생각으로 쓰기 시작한 글인데.

고맙다는 말만 나오네.


잘지내.


언젠가 다시 만나면

그 때에도 서로에게 예쁜 모습이길, 좋은 추억이길

바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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