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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야수들의 일본 진출의 암울한 역사
게시물ID : humorbest_34051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ㅇㅇΩ
추천 : 29
조회수 : 6166회
댓글수 : 3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1/03/20 15:04:04
원본글 작성시간 : 2011/03/19 19:17:32
이병규가 방출됐다.

LG로 돌아올지 어떨지는 내 알바 아니지만 짜증나는건 어쩔수 없다.

왜 이병규는 실패했을까?

이유만 따지면 간단하다. 


이병규가 그거밖에 안되는 선수니까.


LG팬한테는 미안하지만 이건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는 진출할때부터 이병규가 100% 실패한다고 봤다.

그 근거는 바로 포볼:삼진 비율.

이병규의 한국 통산 포볼:삼진 비율은 약 1:1.5

삼진 개수는 크게 문제가 안된다. 타수에 비하면 평균이라고 볼 수 있으니까. 문제는 포볼의 수치 자체가 적다는데에 있다.

통산비율은 1:1.5지만 부상때문에 제대로 뛰지 못한 03년 이후의 기록(04~06)을 보면 

04년 50 : 72
05년 34 : 62 
06년 31 : 65

보다시피 점점 나빠짐을 알 수 있다. 이게 선구안문제건 스윙스피드문제건간에 갈수록 나빠진다는데에 변함은 없다. 

그랬기때문에 수위타자를 차지했던 05년도 그리 높게 평가하기가 힘들다. .337이라는 타율 자체가 장타와 출루율을 포기한 영양가없는 기록이기 때문이다.(04년보다 OPS도 떨어진다.)

그런 상황에서 06년에는 특별한 악재도 없는데 3할 밑으로 내려왔다.

그렇다면 남은건 하락뿐이다.

당연히 일본이라는 레벨이 더 높은 무대에서 뛰어야 하는 07년의 기록은 06년의 기록보다 나빠질거라 예상할 수 있다. 

문제의 볼넷:삼진비율은 

23 : 108

ㅅㅂ 삼진이 100개가 넘었어. 1:4를 넘었어. 장타자도 아닌데 삼진수가 이승엽하고 동급으로 놀면 어쩌자고?


왜 이런 참담한 결과가 나왔는가?

간단하다. 


연습량이 적으니까

07년 캠프에 들어가서 이병규가 후쿠도메의 스윙 연습량이 자신의 3배에 가깝다는걸 보고 놀랐다고 한다.(이병규는 스윙훈련 한세트가 500회, 후쿠도메는 1500회, 맘에 안들면 2000회)

이 인터뷰를 보기 전까지는 김성근감독이 이병규보고 4할 칠 능력을 가지고도 노력을 안한다고 맹비난을 퍼붓는게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저 인터뷰 한방에 납득했다. 왜 LG가 02년 이후 꼴아박았는지 말이다. 팀의 간판선수가 이모양이니.........이병규의 3배를 연습한다는 후쿠도메가 떡실신당하는걸 보면 참 MLB레벨은 대단하다.

졸라 빡세기로 유명한 주니치식 훈련의 성과가 나온 08년은 욕은 먹을지언정 필요없다는 말은 안들을정도의 활약. 비율스탯은 최악이지만 찬스에는 강했으며 99,00년에 이어 3번째로 많은 16홈런을 기록했다. 적응문제를 떠나 연습량이 문제였다는 증거다.

물론 09년도 08년만큼 노력을 했을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몸이 안따라가죠.ㅋㅋㅋㅋㅋㅋㅋ

결국 부상당한 03년 이전에 일본에서 통할만한 기량을 만들었어야 했는데 그 기회를 놓친것이 이런 비참한 결과를 낳았다고 본다.


솔직히 말하면 주니치가 대체 뭘 보고 데려간건지조차 의문이다. 아마 LG는 자매결연이 있어서 코치연수등의 메리트가 있었던것이 컸을거라 보는데 주니치측에 어떤 이익이 있었는지는..........



사실 야수의 일본진출 역사자체가 꼬인건 스타트를 끊은 이종범부터다.

이종범의 일본진출은 많은 화제를 낳았다. 선동렬이 첫해의 실패를 딛고 성공을 하면서 후배들의 길을 열어준 상태. 여기에 한국최고의 타자인 이종범이 일본에서 얼마나 통할지는 양국의 큰 관심거리였다. 전문가들이 예상한 이종범의 일본성적은

3할 두자리 홈런 30개 이상의 도루

가 되겠다. 조금 더 욕심을 부렸던 사람은 도루왕까지도 내다보기도 했다.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자면 저 예측은 옳다. 아니, 오히려 주인장의 예상성적은 저거보다는 약간 높았다. 주인장의 예상 성적은

.310  15홈런 35도루

였다. 


하지만 이종범의 98년도 성적은

.283 10홈런 18도루

잘 알려진대로 가와지리에게 맞은 사구때문에 부상으로 많이 쉬었으며 그 여파로 많이 깎아먹은 기록이다.

만약이라는걸 계산하는게 좀 웃기긴 하지만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면? 을 계산해보면 얼추 아래와 같은 성적이 나온다.

.290 17홈런 32도루

부상을 제외하더라도 타율은 3할을 못넘었을것이 거의 확실하다.

한국 야구 역사상 최고의 기술을 가진 타자가 일본에서 3할을 못친다? 왜? 전문가들은 입을모아 일본에서도 3할을 칠 수 있는 실력이라고 말하는데?



이 원인은 당시 한국야구의 가장 큰 문제점

리그에 외국인이 없다

때문이었다고 본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종범이 떠난 다음해부터 외국인제도가 시작되었으니 이종범은 국제대회를 제외하곤 외국인선수를 상대해 본적이 일본에 간 셈.(참고로 2군제도가 완전히 정비가 된것도 이때. 이듬해에는 FA제도의 정비등 본격적으로 선진야구로 변해가고 있던중. 이종범의 일본 진출 타이밍은 정말 이 이상 나쁠수 없다고 할 수 있을만큼 절묘하다) 

이로 인해 이종범은 한국인이라는 한정된 스타일의 투수들밖에 상대해보질 못했다. 당연히 생소한 변화구를 던져대는 일본투수나 힘으로 윽박지르는 외국인투수들에 대한 대응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이것이 반영되었기에 실력에 비해 낮은 성적이 나올수밖에 없었던것이다. 흔히 적응문제를 외국진출시의 성공의 열쇠로 꼽는데 이종범은 이런 면에서 대단히 불리한 상황이었다는 뜻이다. 

속된말로 표현하면 우물안 개구리였으니 저 성적은 어쩔수 없는거다.

올해 초에 한국프로야구 외국인선수들 성적이 잘 안나오자 외국인무용론을 지껄인 병신같은 기자들이 몇명 있는데, 외국인선수는 외국인이기때문에 가치가 있는거다. 궁극적으로는 한국야구 발전을 위해 비싼 돈 주고 데려오는거란말이다. 

이종범의 98년이 후진적인 한국야구의 구조가 낳은 어쩔수 없는 실패라고 한다면 99년 이후는 순전히 이종범 본인의 문제다.

이종범이 실패한 이유는 크게 두가지.

첫번째는 잘 알려진대로 팔꿈치 부상이 원인이다. 이로인해 원래부터 약점으로 꼽히던 몸쪽으로 낮게 떨어지는 볼에 더욱 약점을 보이게 되어 집중적으로 공략당하게 된다. 가끔 일본투수들이 비겁하게 승부 안했네 어쩌네 하는 바보들이 있는데 이종범이 4할 칠것도 아니고 55개 홈런칠것도 아닌데 피해야 할 이유는 없다. 타이틀이 걸려있다면 몰라도 이종범의 성적은 타이틀과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두번째는 주니치 문화(더 정확히는 호시노 센이치)에 적응을 못한것이다.

첫해는 주변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지만 부상이후 주춤해지고 나서는 어쩔수없이 감독을 신경쓸수밖에 없다. 

호시노의 지도 스타일은 잘 알려진대로 

일단 팬다

가 되겠다. 맞으면서 야구했을 세대인 이종범에게 이게 무슨 문제냐고 물을지도 모르는데 엘리트였던 이종범에게 못한다고 때리는건 참을수 없는 굴욕이었을 것이다. 

맞은것까지는 문제가 없다.(사소한 문제는 넘어가자.........)

하지만 얻어맞은 이종범의 반응이

왜 외국인대접을 안해주냐?

였던게 문제의 본질이다. 필요할때만 외국인 찾나? 어처구니가 없다. 이게 바로 주인장이 이종범에게 실망했던 이유다.

호시노가 구타와 대학후배챙기기로 늘 욕먹지만 절대 기회차별을 하는 지도자는 아니다. 애초에 호시노가 양아들 챙기는 타입이었다면 국대를 맡기지도 않았다.

호시노 입장에서 본다면 차별하지 않기 위해 팼다고 볼수도 있는거다.

실제로 선동열은 지금도 호시노를 스승으로 대접하며 주니치의 야구이론을 그대로 받아들인 야구를 한다. 하지만 이종범은 일본프로야구계에 대한 악담을 퍼부을뿐. 둘이 같은 고교, 같은 팀을 거쳤기때문에 더욱 아쉬운 부분이다.
  
재미있는건 이 구타가 역으로 이종범이 기아에서 구타를 없애는데 앞장선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는것이다.


이종범 다음은 이승엽.

이승엽은 이종범보다는 사정이 조금 나았다. 이종범때보다 시간이 6년이 흘렀고, 올림픽에서 일본의 프로선수를 상대한 경험도 있다. 또 메이저리그 캠프에 초청참가도 했을정도로 준비를 많이 했었던만큼 한국에서의 기대는 대단히 높았다. 56개의 홈런을 기록한 화제성에 있어서도 이종범보다 높았다.

그러나 일본에서의 기대치는

.270 25홈런 80타점(이 수치는 미스터 롯데 아리토의 예상치. 딱 이게 평균이다.)

물론 이는 첫해의 적응문제도 감안한 예상치로 30홈런 이상을 칠 수 있는 거포라는걸 부정하는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적응문제를 감안하더라도 한국에서의 반도 안되는 홈런을 예상한 이유는 딱 하나.

이승엽의 몸이 스탯에 비해 부실했기 때문이다.

이승엽을 본 일본의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저 몸으로 어떻게 50홈런을 넘겼는지 믿기지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04년에 참담한실패를 맛본 이승엽은 코치진의 요구대로 몸을 불리기 시작한다.

덕분에 05년에는 플래툰으로 출장하면서도 거포의 자존심인 30홈런을 채워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안정적인 출장기회를 얻기 위해 교진으로 옮긴 06년은 알려진대로 일본에서의 커리어하이.

이후 무릎부상에 시달린 07년 이후는 성적이 하락.

일반적으로 일본에서의 이승엽에 대한 평가는 

최악이었던 04년과 커리어하이인 06년, 부상이라는 변수가 있었던 08년 이후를 뺀 05년과 07년의 중간정도 되는 성적을 15년분 계산한것이 이승엽의 진짜 레벨.

즉, 기요하라보다 미묘하게 떨어진다는 평가다. 

솔직히 이승엽이 내년에 부활한다고 해도 06년만큼의 성적은 기대하기 힘들다. 그나마 한국인선수가 약간이나마 정당한 평가를 받게 되었다는것 이외에는 의미가 없다고 할정도로 이승엽의 기록은 아쉽다. 

개인적으로는 이승엽만은 한국으로 오지 않았으면 한다. 그래도 한국의 영웅이었던 타자가 패배한것처럼 돌아오는건 보고싶지 않으니까.


상황이 이렇다보니 솔직히 이제는 한국에서 잘나가는 선수가 일본에 가는게 영 달갑지만은 않다. 한국에서도 2류였던 이혜천이나 모든걸 버리고 간 임창용의 경우라면 몰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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