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직-
마침내 얽매였던 시간은 이제 멈추고 해방감 가득한 새로운 날들이 시작되었다.
모처럼 늦잠에서 깨어나 이제부터 무한으로 주어진 시간을 즐기려 창을 열었다.
시린 눈을 들어 파란 하늘을 올려보았다.
좀처럼 보기 힘든 파란하늘에 적당히 구름도 몇 점 얹혀있다.
햇살이 눈부시다.
예나 지금이나 같은 하늘임에도 마치 처음 보는 것 같은 느낌이 좋았다.
문득 그 푸른 하늘 위에서 빛바랜 기억들이 박물관에 진열된 유물처럼 박제되어 어른거리는 듯했다.
그 곳에서 기억 하나를 떼어내자 지난 세월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들쑤시고 일어났다.
기억들은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세월을 건너뛰며 쏜살같이 지나갔다.
세월은 유수와 같으며, 쏜살같다고도 했다.
분명 그 말이 실감된다면 분명 늙었다는 한 증거일 것이다.
늙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벽에 걸린 거울을 바라보았다.
반백 초로의 남자가 휑한 표정으로 아주 낯설게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적당히 쭈그러진 얼굴 주름을 한 거울 속 남자는 결코 웃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