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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하늘
게시물ID : gomin_39103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뚜르르르
추천 : 1
조회수 : 18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08/25 16:19:13

소주 세 병을 비우고 왔다.

 

10층 아파트 창문을 연다. 초입에 들어선 가을바람이 조금 쌀쌀하다. 더위는 다 지나갔다.

 

난간에 팔꿈치를 기댄다. 익숙한 동작으로 담배를 꺼내어 불을 붙인다. 빨간 불씨가 타오른다. 후욱, 하고 숨을 깊게 들이쉰다.

 

달이 참 밝다. 밤하늘도 참 까맣고 파랗다. 밤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울렁거리는 밤바다를 보는 것 만 같다고 운동장에 드러누워 웃으면서 얘기하던 어릴적 고향 친구녀석이 생각난다. 이름은 잊었다. 얼굴도 잊어버렸다. 그 친구는 잘 지내고 있을까.

 

시간은 어떻게 해서든 차차 흘러간다. 멈춰있던것만 같이 느껴졌던 시간들이 쌓여, 어느새 3주가 흘렀다. 하루는 일주일같이 긴데, 일주일은 하루만큼 짧다.

 

800일은 그리 긴 시간은 아니였다. 정말 쏜살같이 지나갔다. 언젠가 이만큼 함께하자 웃으며 얘기했던 3만6천5백일도, 어쩌면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였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알수 없게 되어버렸지만 아마 분명히 쏜살같이 지나갔으리라.

 

깊게 들이켰던 연기를 내쉰다. 뽀얀 연기가 아지랑이를 피우며 사라진다. 새벽 3시 반, 아파트 바로 앞 차도에는 아직도 간간히 차가 지나다닌다. 차도를 따라서 멀찍히 떨어져 불을 발하는 가로등이 조금 애처롭다.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참 많아졌다. 성질 급하고 쾌활한 내가, 불 키지 않은 내 방 침대에 누워 멍하니 초를 세는 시간도 늘어났다. 나를 지탱하는 힘이 사라진것 마냥, 자빠진 나는 도대체 일어설 줄을 몰랐다. 

 

너는 나에게 힘내라고 말했다. 바쁘게 살다보면 잊혀질 거라고 얘기해줬다. 800일을 사귀었지만 이별의 순간만큼은 정말 똑같구나, 하고. 조금의 답답함과 서글픔, 괴로움을 감추려고 노력했다.

 

불씨는 어느새 거의 다 타들어갔다. 탁탁,하고 손가락을 튕긴다.

 

빨갛게 타들어가며 떨어져 내리는 불씨를 본다. 별 것 아닌 불씨지만 정말로 자유롭고, 아름답다. 오래 가지 못할 불씨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부럽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저 불씨처럼 나도 나를 밝게 태우고 싶었다. 꿈도 몇개인가 있었다. 꿈에 그친 꿈이지만, 때 늦은 기차표처럼 그래도 아직 가방 한 켠에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꿈에 그쳐버린 이유는 잘 모르지만 잘 알고있다. 어쩌면 혼자가 되었다는 것은 무거웠지만 따듯한 족쇄를 끊어낸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다시 태우기엔 나는 남은게 없다. 태운 적이 없지만 나는 태운 적이 있었노라고 누군가 대답한다.

 

바람이 차서 큰 창문을 닫았다. 탁 소리를 내며 내 방은 점점 굳어간다. 음울하고 차가운 곳으로 순식간에 변한다.

 

스물한살의 여름. 2012년의 무더웠던 여름이 그립다. 뜨겁고 뜨거워서 손 잡는게 다였지만, 그래도 그립다. 뜨거웠지만 따듯했다.

 

나는 앞으로 영원히 그 여름에서 살 지도 모른다. 태우고 남은 재를 그러모아 그 속의 작은 불씨를 지키면서 그렇게 영원히 지낼지도 모른다.

 

보고싶다고, 가지 말아달라고, 나와 같이 있어달라 말하고 싶지만 말하지 못하는 내가 애처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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