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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간주나무 이야기 (무서운 동화..)
게시물ID : humordata_34272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사업탱크
추천 : 4
조회수 : 13291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06/08/05 23:26:30
어떤곳에 한 부부가 살고 있었다. 남편은 성실한 남자였고 아내는 아름답고 기품이 있는 여자였다. 그런데 이 부부에게는 오랫동안 아이가 없었다. 외로움을 느낀 아내는 어떻게든 아이를 얻기 위해 열심히 신에게 기도했지만 그 바람은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았다. 부부의 집에는 작은 마당이 있고, 그 한쪽에 노간주나무가 한 그루 심어져 있었다. 어느 겨울날, 아내는 그 나무 아래에 서서 보기 싫은 나뭇가지 하나를 꺾으려 했다. 그때 나뭇가지 끝에 손가락이 긁히면서 하얗게 쌓인 눈 위에 피 한 방울이 툭 떨어졌다. "아..." 아내는 새하얀 눈을 물들인 선명한 피를 바라보며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이 피처럼 새빨간 입술과 눈처럼 하얀 피부를 가진 아이가 있다면..." 그것은 아내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진정한 바람이었다. 그렇게 핏자국을 가슴에 간직한 채 시간이 흘러갔다. 3월이 되자 눈이 녹았고. 4월이 되자 주변이 온통 녹색으로 물들었다. 5월이 되자 각양각색의 꽃들이 한껏 아름다움을 과시했으며, 6월이 되자 모든 나무들이 무성한 가지를 뻗었다. 작은 새들이 즐겁게 지저귀고, 꽃들이 듬뿍 향기를 피웠다. 그날 아내는 오랜만에 노간주나무 아래에 서 있었다. 나무 향기가 부드럽게 콧속을 파고들자 아내는 왠지 모르게 상쾌한 기분으로 나무 아래에 무릎을 꿇었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9월이 되자 노간주나무의 열매가 익었다. 아내는 점차 말수가 적어졌다. 그리고 10월에 아내는 그 나무의 열매를 따먹었다. 그 후 10개월이 지나자 아내는 눈처럼 하얀 피부와 피처럼 붉은 입술을 가진 남자아이를 낳았다. 부부는 너무나 기뻤다. 하지만 아내는 산후의 부기가 빠지지 않아 어이없이 세상을 뜨고 말았다. 죽기 전에 아내는 자기를 노간주나무 아래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남편은 유언대로 아내를 나무 아래에 매장하고 통곡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그 슬픔은 사라지고, 이윽고 남편은 두 번째 아내를 얻었다. 두 번째 아내도 상당한 미인이었다. 그러나 순종만 알았던 첫번째 아내와는 달리 활발한 성격에 자기의 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할 줄 아는 여자였다. 젊었을 때에는 인형처럼 얌전한 여자를 좋아했던 남편도 중년으로 접어들자 여자에 대한 취향이 바뀌었다. 어느 정도 잔소리가 있다해도 자기가 할 일은 자기가 알아서 처리하는 여자가 훨씬 편하게 느껴졌다. 결혼 초기에 여자는 전처가 낳은 아이가 있다는 사실에 몹시 당황했다. 그러나 아이를 좋아하는 여자였기 때문에 자기가 낳은 아이처럼 귀여워해주면 좋은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갓난아기가 젖 달라고 보채며 우는 모습은 정말 애처로웠다. 여자는 그런 아이를 정성스럽게 달래며 우유를 타먹였다. 그럴 때마다 어찌나 귀여운지 장밋빛 뺨을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였다. 아이가 점차 성장하면서 한두마디 말도 할 수 있게되자 더욱더 귀여웠다. 그래서 예쁜 옷도 만들어 입히고 맛있는 과자도 구워주는 등 마치 친자식처럼 아이를 사랑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아이는 여자를 피하였다. 이웃에 사는 어떤 사람이 아이에게 그녀가 친어머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 듯했다. 그때부터 아이는 그녀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았다. 아니, 그녀와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여자도 마침내 귀여운 여자아이를 낳았다. 그때부터 여자도 변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는 남자아이를 친자식처럼 귀여워했지만, 일단 자기 자식을 낳자 아무래도 두 아이를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연히 자기 자식은 사랑하고 전처의 자식은 미워하게 되었다. 게다가 자기 자식은 학교 성적이 중간 정도이고 개성도 없는 평범한 아이였지만, 전처의 자식은 학교 성적이 매우 우수하고 작문 실력도 뛰어나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늘 칭찬만 받았다. 하루는 학교에서 '어머니'를 주제로 작문을 하게 되었는데, 소년은 '내게는 어머니가 없다'라는 내용의 글을 써냈다. 그 일로 인해 학교로 불러간 여자는 담임선생님이 내미는 그 작문을 보고서야 그런 사실을 알았다. 그때 가졌던 후회스러움을 여자는 절대로 잊을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여자는 별것도 아닌 이유로 소년을 학대하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학교에서 늦게 돌아오면 현관문을 잠그고 들여보내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소년은 문 밖에서 밤을 새워야 했다. 언젠가 소년이 만점을 받은 시험지를 자랑스럽게 여자에게 내민 적이 있었다. 그러자 여자는 소년이 보는 앞에서 시험지를 발기발기 찢어버렸다. 소년은 그 일을 평생 잊을 수가 없었다. 여자는 소년이 반찬을 남겼다고 때렸고, 목욕물을 미지근하게 데웠다고 때렸다. 그러나 소년은 얻어맞으면서도 단 한마디의 불평도 없이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았다. 그것이 여자의 분노를 더욱더 부추겼다. 툭하면 트집을 잡아 소년을 때리면서 여자는 자신이 야차 같은 얼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상태로 지내다간 정말로 야차가 되어버릴 것 같았다. 여자는 마음을 둘 곳이 없었다. 물론 남편에게 그런 마음을 호소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남편의 말은 늘 이런 식이었다. "아직 어린애인데 왜 그래?" "당신은 어른이잖아.당신이 참아야지." 맞는 말이었다. 상대는 어린아이이고 여자는 나이 먹은 성인이었다. 그러나 때로는 아이 쪽이 가해자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여자는 그 말을 하고 싶었지만 남편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거니? 엄마를 그런눈으로 보는 아이가 어디있어?" 여자는 소년을 때리면서 마치 악다구니를 쓰듯 소리치는 경우도 있었다. 그때마다 차가운 눈길로 바라보는 소년의 모습을 여자는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적대감으로 가득 찬 그 눈초리를.... "엄마, 그만해. 오빠 때리지 마." 딸 마리아는 아직 혀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더듬거리는 말투로 애원하며 어머니를 말렸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여자가 매질을 멈추면 소년은 입에 묻은 피를 닦고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여동생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소년은 마리아를 귀여워했기 때문에 마리아도 소년을 잘 따랐다. 하지만 그것도 여자의 신경을 거슬리는 점이었다. "당신, 도대체 어떻게 할 거예요?" 가끔씩 남편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면서 여자는 남편을 다그쳤다. "당신은 저 아이와 마리아중에서 누가 더 귀여워요? 저 아이에요,아니면 마리아예요?" "그런 건... 알면서 왜 그래?" 난처한 남편은 더듬거리며 얼버무렸다. "저 아이가 더 귀엽지요? 저 아이를 야단치는 나를 나쁜 엄마라고 생각하지요?" "그런 말 한 적 없어." "그러면 저 아이를 당장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보내요." "여보, 어떻게 그런 말을...." 지금까지 말로만 듣던 전처의 아이와 계모의 불화가 자기 집에서도 일어났다는 사실을 남자는 뼈저리게 느꼈다. 그러나 대부분의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정면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았다. 남자로서는 달리 손을 쓸 방법이 없는 문제였다. 그래도 여자는 그럭저럭 버텨나갔다. 소년을 학대하는 것을 일종의 스트레스 해소로 생각하면서 정신적인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자에게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남편의 바람기였다. 하루는 여느 때처럼 일을 끝내고 돌아온 남편의 옷에서 한 번도 맡아본 적이 없는 향수 냄새가 풍겼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남편은 특별한 이유도 없이 갑자기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아졌다. 그렇게 생각한 여자는 남편을 미행하여 남편이 이웃 마을에 있는 어떤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했다. 이웃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그 집에는 독신녀가 살고 있다고 했다. 이웃 사람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남편은 일주일에 한 번은 그 집을 방문한다는 것이었다. "부인의 남편은 바람을 피우는 게 틀림없어요. 지금은 사정이 있어서 동거할 수 없는 형편이라고 여자가 말했으니까요." 이웃 사람은 그렇게 말하고서 어색한 표정으로 웃었다. 하지만 여자에게는 그 웃음이 자기의 불행을 비꼬는 비웃음처럼 느껴졌다. "내게 그런 아이를 맡겨놓고 자기는 바람을 피우다니..." 화가난 여자는 복수를 결심했다. 다음날 소년이 학교에서 돌아오자 여자는 여느 때와 달리 상냥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너, 사과 먹고 싶지 않니?" "사과요? 먹고싶어요." 소년이 순진하게 대답했다. 역시 아직은 어린아이였다. "찬장에 있으니까 꺼내 먹으렴. 네가 꺼내 먹을 수 있지?" "네." 소년은 즉시 부엌으로 달려갔다. 소년이 찬장 안을 들여다보며 사과를 찾고 있을 때, 살며시 등 뒤로 다가간 여자가 소년의 목을 향하여 있는 힘을 다해 도끼를 휘둘렀다. 피가 튀면서 소년의 머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조용한 가을날의 오후였다. 마치 무성영화 안의 한 장면처럼 모든 것이 정적 속에서 이루어졌다. 소년은 비명을 지를 틈도 없었다. 다만 부엌의 벽과 바닥에 흩뿌려진 선혈만이 가을의 햇살 속에서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드디어 해치웠어.' 여자는 이렇게 생각하며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묘하게도 머리는 그다지 혼란스럽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맑았다. 사실 여자는 지금까지 줄곧 이런 장면을 머리속에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생각보다 훨씬 간단했다. 어쩌면 한바탕 소동이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소년이 이리저리 날뛰면서 저항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대지가 뒤집어지고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듯한 소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런 일이 있어도 되는 것일까? 이렇게 간단히 사람을 죽여도 되는 것일까? 모든 것은 여자가 줄곧 머리속에서 그려왔던 대로 진행되었다. 하나도 다른 점 없이 그대로... 그러다 문득 제정신이 들자 여자의 마음에 비로소 두려운이 느껴졌다. '어떻게 해야지? 들키면 나는 살인자가 돼. 남편도 더 이상 나를 믿어주지 않을 거고, 딸도 더 이상 나를 엄마처럼 대하지 않을거야. 둘 다 나를 무서운 여자로 생각해서 피할지도 몰라...'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여자의 행동이 갑자기 민첩해졌다. 우선 머리가 없는 소년의 몸을 현관 옆의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장롱에서 하얀 시트를 꺼내어 붕대처럼 가늘게 찢은 다음 소년의 머리를 몸 위에 올려놓고 그것으로 동여맸다. 그리고 손에 사과 한 개를 쥐여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딸 마리아가 학교에서 돌아왔지만 여자는 마리아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부엌의 조리대앞에 서서 냄비만 열심히 휘저을 뿐이었다. "엄마!" 마리아가 말을 걸었다. 얼굴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엄마의 표정을 확인할 수 없는 마리아의 눈에는 엄마가 여느 때처럼 부엌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오빠가 손에 사과를 들고 있어. 새파란 얼굴로 의자에 앉아 있다고. 내가 사과 좀 달라고 했는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아." "그래?" 여자는 그제야 마리아를 돌아보았다. "다시 한번 부탁해보렴.그래도 대답하지 않으면 오빠의 어깨를 흔들어봐." 엄마의 눈에는 뭔가 거역할 수 없는 분위기가 깃들여 있었다. 그래서 마리아는 시키는대로 오빠에게 다가갔다. "오빠, 나도 사과 좀 줘." 그러나 오빠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마리아는 엄마가 시킨대로 소년의 어깨를 흔들었다. 그러자 소년의 머리가 몸에서 떨어져 바닥에 뒹굴었다. 마리아는 깜짝 놀라 엄마에게 달려왔다. "엄마, 오빠의 머리가, 오빠의 머리가 떨어져버렸어." 마리아는 울면서 더듬거렸다. "뭐라고?큰일났구나." 묘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여자가 말했다. "하지만 아무에게도 이 말을 해서는 안 돼.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는 거야. 알았지? 그런데 오빠를 어떡하지? 그래, 오빠를 수프로 만들자." 이렇게 말하고서 여자는 즉시 소년의 시체를 발가벗겨 칼질을 했다. 뼈와 내장은 남겨두고 먹을 수 있는 부드러운 살만 발라냈다. 여자는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소와 돼지를 잡아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이렇게 해서 살을 발라낸 여자는 그것을 잘게 썰러 수프에 넣었다. 그리고 맛이 충분히 우러날 수 있도록 오랜 시간 동안 푹 끓였다. 마리아는 눈물을 흘리며 엄마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어린 마리아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확실하게 판단할 수 없었다. 또한 오빠의 몸을 칼로 토막내는 엄마의 무서운 표정을 보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엄마가 뭔가 무서운 생각을 하고 있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다만 오빠와는 이제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만 쏟아졌다. 그날 저녁, 남편은 여느 때와 달리 일찍 귀가했다. 여자는 서둘러 수프를 그릇에 담아 내놓았다. "오, 맛있는데.무슨 고기로 끓인 거야?" 남편은 정말 맛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옆에서 마리아가 훌쩍거렸다. "무슨 일이니? 선생님께 야단맞았니?" "친구와 싸웠대요. 겁이 많으면서도 가끔은 당돌한 짓을 한다니까요." 마리아 대신 답변하는 여자를 남편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남편은 순식간에 그릇을 비우고 한 그릇 더 달라고 했다. 여자는 수프를 한 그릇 더 담아주고서 먹는데 정신이 팔린 남편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러자 마음속에 다시 증오심이 되살아났다. '꼴 좋다. 다른여자에게 눈을 돌린 죄로 당신은 가장 소중한 것을 잃은 거야. 그래, 이건 모두 당신 탓이라구.' "그런데 이 녀석은 어디 간 거야?" 남편이 소년의 행방을 물었다. 여자에게 빠져 있는 탓에 집안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아들이 없어졌는데 그 사실을 이제야 깨닫다니... "친척 집에 놀러 갔어요. 잠시 동안 그곳에 있고 싶대요. 요즘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통 모르겠다니까요." 여자는 시치미를 떼고 그렇게 대답했다. "정말 한심한 녀석이군. 갑자기 사라져버리면 어떻게해. 왜 내게는 한 마디 의논도 하지 않고 간거야?" 남편은 꽤나 실망한듯한 말투로 불평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표정은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건 그렇고, 이 수프 정말 맛있는데. 한 그릇 더 먹을까?" 남편은 맹렬한 식욕으로 그릇을 비웠다. 결국 수프는 순식간에 완전히 바닥이 났다. 식사를 끝낸 마리아는 장롱 안에서 가장 좋은 비단천을 꺼내어 부엌 구석에 버려져 있는 오빠의 뼈를 하나도 남김없이 싸서 밖으로 나왔다. 마리아의 눈에 다시 눈물이 넘쳐 흘렀다. 이제 두 번 다시 상냥한 오빠를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하자 너무 슬퍼서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잠시 후 마리아는 마음을 가다듬고서 그 뼈를 노간주나무 아래에 놓고 그 위에 흙을 뿌렸다. 그러자 갑자기 마음이 가벼워지면서 더 이상 슬프지 않았다. 그때 마리아의 눈 앞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바람도 없는데 나무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점차 가지가 양쪽으로 갈라졌다가 다시 원래대로 합쳐지기를 반복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사람이 기뻐서 손뼉을 치는 것 같았다. 그러는 사이에 나무에서 안개 같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 안개 속에서 불꽃이 타오르더니 불꽃 안에서 한마리 아름다운 새가 나타났다. 새는 맑은 목소리로 지저귀면서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리고 곧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잠잠해졌다. 뼈를 쌌던 비단천은 어느틈엔가 사라지고 없었다. 노간주나무에서 나온 새는 파란 하늘을 끝없이 날아갔다. 그러다 어느 집 지붕에 올라앉아 날개를 접었다. 그곳은 보석 세공사의 집이었다. 새는 그곳에 앉아 맑은 목소리로 이렇게 노래했다.   어머니가 나를 죽이고 아버지가 나를 먹었어요. 여동생 마리아가 내 뼈를 비단천에 싸서 노간주나무 아래에 묻었어요. 작업장에서 황금목걸리를 만들고 있던 보석 세공사는 이 노래를 듣고 혼령에 이끌린 사람처럼 거리고 뛰어나왔다. 가죽으로 만들어진 앞치마를 허리에 두르고 한 손에는 황금 목걸이를, 다른 한 손에는 집게를 든 채 거리 한가운데에 서서 그 노래에 취해 있던 그는 이윽고 노래가 끝나자 감탄한 듯이 이렇게 말했다. "정말 멋진 노래야. 한 번만 더 들려줄 수 있겠니?" "좋아요. 하지만 공짜로는 안돼요. 제게 그 목걸이를 주신다면 한 번 더 들려드릴게요." "알았다. 자, 이 황금 목걸이를 줄테니 한 번 더 불러보렴." 그러자 지붕에서 내려온 새는 보석 세공사의 손에서 황금목걸이를 낚아채어 오른발에 끼웠다. 그리고 보석 세공사 앞에서 다시 한번 그 노래를 부르더니 노래가 끝나자마자 어디론가 날아가버렸다. 새가 다음에 멈춘 곳은 구두 기술자 집의 지붕이었다. 새는 그곳에 내려앉아 아까와 같은 노래를 불렀다.   어머니가 나를 죽이고 아버지가 나를 먹었어요. 여동생 마리아가 내 뼈를 비단천에 싸서 노간주나무 아래에 묻었어요.   이 노래를 듣고 구두 기술자도 즉시 밖으로 달려나왔다. 지붕 쪽을 올려다보니 새 한 마리가 앉아서 노래를 하고 있었다. "멋진 노래야. 여보 이리와서 저 새가 부르는 노래 좀 들어봐." 구두 기술자가 집 안에 있는 아내에게 소리쳤다. 잠시 후 두 사람은 황홀한 표정으로 새가 부르는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정말 멋진 노래예요.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는 들어 본 적이 없어요." "그렇지? 새야. 지금 그 노래를 한 번 더 들려줄 수 있겠니?" "좋아요. 하지만 그 대신 제게 선물을 주세요." "들었지? 노래를 한 번 더 들으려면 보수를 지불해야 한다는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구두 기술자의 얼굴은 환하게 밝아졌다. "여보,작업장 선반에 빨간 구두가 있어. 조금 전에 완성한 거야. 들어가서 그것 좀 가져와." 아내가 그 신발을 가져오자 구두 기술자가 새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이거면 되겠지? 자, 약속대로 한 번 더 노래를 부탁한다." 그러자 새는 지붕에서 내려와 왼발로 빨간 구두를 움켜쥐고 다시 지붕으로 날아올라가 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 새는 오른발에 목걸이를 끼고, 왼발로는 구두를 움켜쥔 채 또 어디론가 날아가버렸다. 그 다음에 새가 앉은 곳은 방앗간이었다. 방앗간에서는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가운데 20여 명의 청년들이 땅바닥에 주저앉아 맷돌을 돌리고 있었다. 새는 마당에 심어져 있는 보리수에 내려앉아 다시 노래를 불렀다.   어머니가 나를 죽이고 아버지가 나를 먹었어요. 여동생 마리아가 내 뼈를 비단천에 싸서 노간주나무 아래에 묻었어요.   청년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그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노래가 끝나자 한 청년이 말을 걸었다. "너 정말 노래 잘하는구나. 한 번 더 들어볼 수 있겠니?" "좋아요.하지만 공짜로는 안돼요. 그 맷돌을 주신다면 한 번 더 부를게요." "맷돌을? 이걸 뭐에 쓰려고?" 그 청년이 물었다. "그건 알아서 뭐해. 주자구. 필요하니까 달라고 하겠지." 다른 청년이 말했다. "알았다. 맷돌을 줄게. 그 대신 한 번 더 노래를 들려줘." 그러자 새가 마당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멧돌 구멍에 머리를 집어넣더니 놀랍게도 그대로 나무 위로 날아올라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윽고 노래가 끝나자 새는 오른발에는 목걸이를, 왼발에는 구두를, 목에는 맷돌을 끼고 어딘가로 날아갔다. 이번에 도착한 곳은 그리운 집이었다. 방 안에서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마리아가 마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새는 노간주나무에 앉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나를 죽이고   어머니는 그 노래를 듣자 얼굴색이 변했다. 그녀는 귀를 막고 눈을 감아 어떻게든 노래를 듣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노랫소리는 사정없이 그녀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아버지가 나를 먹었어요. 여동생 마리아가   이번에는 마리아가 그 노래를 듣게 되었다. 마리아는 기쁜 듯이 탄성을 질렀다. "아빠, 저 새가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어요." "노래?" 아버지는 밖으로 나가 그 새를 보자고 했다. 어머니가 필사적으로 말렸지만 아버지는 그것을 무시하고 밖으로 나갔다. 내 뼈를 비단천에 싸서 노간주나무 아래에 묻었어요.   이렇게 노래하면서 새는 우선 황금 목걸이를 떨어트렸다. 목걸이는 마침 아버지의 머리 위로 떨어져 목에 걸쳐졌다. 아버지는 너무 기뻐하며 집 안으로 들어가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것 봐. 정말 친절한 새야. 내게 이렇게 아름다운 황금 목걸이를 걸어주었어." 그러나 어머지는 가슴이 두근거려 견딜 수 없었다.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새는 다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나를 죽이고   "아,듣고 싶지 않아!"   아버지가 나를 먹었어요. 어머니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여동생 마리아가 "어라? 내 이름을 부르네. 나도 나가볼래. 내게도 뭔가 선물을 줄지 모르니까." 마리아가 그렇게 말하면서 밖으로 뛰어나가자 새는 이렇게 노래했다.   내 뼈를 비단천에 싸서   그리고 마리아에게 빨간 구두를 떨어트렸다.   노간주나무 아래에 묻었어요.   마리아는 즐거운 표정으로 그 구두를 신고 춤을 추듯 집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이상해.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어. 저 친절한 새가 제게 빨간 구두를 주었어요." 그 때 어머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머리카락이 불꽃처럼 곤두서 있었다. "왜 이렇게 기분이 우울하지. 나도 나가 보아야겠어요. 혹시 기분이 좀 나아질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어머니가 문 밖으로 머리를 내민 순간, 새는 어머니의 머리를 향해 맷돌을 떨어트렸다. 아버지와 마리아가 비명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어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맷돌에서 안개 같은 것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더니 그 안에서 불꽃이 활활 타올랐다. 그리고 그것이 사라지는 순간, 죽었다고 생각한 오빠가 그곳에 서 있었다. "오빠!" "이런, 네가 돌아왔구나!" 오빠가 아버지와 마리아의 손을 잡았다. 세 사람은 기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날 밤에는 오랜만에 수프를 먹었다. "이 고기, 왜 이렇게 질기지?" 아버지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지난번에 먹은 수프는 맛있었는데. 이거 무슨 고기냐?" "오래 된 고기라서 그래요. 이것밖에 없었어요." 오빠와 여동생은 얼굴을 마주보며 싱긋 웃었다. "그런데 엄마는 어디 가셨니?" 아버지가 잠꼬대를 하듯 무표정하게 말했다. 이제야 엄마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다니.... "몰라요.갑자기 나가셨어요. 친척 집에라도 가셨겠지요." "지난번에는 네가 갑자기 친척집에 가더니 이번에는 엄마냐? 하여튼 다들 문제가 있다니까." 아버지가 투덜거렸다. "그건 그렇고, 이 고기 왜 이렇게 질긴 거야. 다음에는 좋은 고기 좀 달라고 해라." "네, 아버지." 두 사람은 밝은 목소리로 대답하고 각각 방으로 돌아갔다. 그날 학교에서 내준 숙제를 하기 위해... (출처 : '노간주나무' - 네이버 지식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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