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펌]진짜로 3불정책이 잘못된 정책이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게시물ID : sisa_3432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핫돌이
추천 : 14/4
조회수 : 451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07/10/11 11:17:52
원 출처 : 서울대 경제학과 이준구 교수 홈페이지

http://jkl123.com/sub3_1.htm?table=my1&st=view&page=1&id=32&limit=&keykind=&keyword=&bo_class=

억울하게 매 맞는 ‘3불정책’

우리 사회에서 지식인 행세를 하려면 몇 가지 생각을 서슴없이 말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 예컨대 반기업정책 때문에 우리 경제가 활력을 잃고 있으며, 종합부동산세는 불공평하기 짝이 없는 세금이며, 3불정책이 대학교육의 최대 걸림돌이다 라는 등의 말을 거침없이 할 줄 알아야 지식인 티가 나는 것이다. 이 말에 약간의 과장과 비아냥이 섞여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요즈음의 세태를 보면 딱 부러지게 틀린 말도 아닌 듯 싶다.

최근 3불정책이 새삼스럽게 마치 동네북처럼 여기저기서 매를 맞고 있다. 언론과 대학들이 한 목소리로 지금 우리 대학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가 마치 3불정책의 탓인 양 떠들어 대고 있다.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각양각색의 의견을 내놓던 대학 행정가들이 3불정책과 관련해서는 어쩌면 이렇게 잘도 입을 맞추는가 하는 감탄이 나올 정도다. 아무리 인기 없는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이라지만, 이렇듯 변호하는 사람 하나 없이 뭇매를 맞아도 좋은 것인가?

3불정책 중 기여입학제 금지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다른 데서 이미 밝혔듯,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나의 이성과 감성이 충돌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한 방향으로 자신 있는 말을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성은 기여입학제를 활용해 대학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그러나 감정은 우리 사회에 서 그나마 유일하게 남은 성역, 즉 능력과 노력만이 통할 뿐 돈은 통하지 않는 영역이 함락 되어서는 안 된다고 외친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부분에서는 입을 다무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본고사 금지와 고교등급제 금지와 관련해서는 하고 싶은 말이 많다. 무엇보다 우선 본고사 금지와 고교등급제 금지로 인해 대학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말은 정말로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세계 유수의 대학과 비교해 우리 대학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 핵심적 원인은 입시제도가 아닌 다른 곳에 있다. 대학의 현실을 잘 아는 사람들이 그런 어처구니없는 핑계를 대는 것은 염치가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의 경쟁력이란 것이 과연 무엇을 뜻하는가?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좋은 연구 업적을 내고 좋은 학생들을 길러내는 것 아닌가? 그런데 입시제도 때문에 지장을 받는다는 것은 무슨 뜬금없는 주장이란 말인지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어떤 대학이 조금 더 높 은 수능 점수 받을 학생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당장 더 좋은 연구업적이 쏟아져 나올까? 그런 학생을 뽑는다고 해서 교육의 질이 당장 향상될 것인가? 조금만 생각해 보면 자명한 답이 나올 수 있다.

더 좋은 연구업적을 내고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은 대학이 스스로 담당해야 할 일이지 입시제도의 탓을 할 일이 결코 아니다. 스스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애꿎은 입시제도 탓을 하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지금 당장 세계적인 연구업적을 내는 것은 어려운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은 조금만 노력해도 당장 이룰 수 있는 일이다. 지금 전국의 여러 대학들이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과연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해야 한다. 기껏해야 영어 강의 한답시고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는 일이나 하고 있는 것이 우리 대학의 현실이다.

어떤 대학이 누구를 신입생으로 뽑느냐는 기본적으로 영합게임(zero-sum game)의 성격을 갖고 있다. 능력 있는 학생을 A대학이 뽑지 않으면 B대학 아니면 C대학이 뽑게끔 되어있다. 어떤 대학이 다른 대학보다 특별하게 교육을 잘 시키지 않는 한, 어떤 대학이 그 학생을 뽑아 가느냐는 사회적인 관점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 좀더 중요한 것은 공정한 게임의 규칙을 확립해 노력한 만큼 본인이 원하는 결과를 얻을 확률을 높여주는 일이다. 지금의 입시정책이 경쟁력 저하의 장본인이라는 무책임한 주장은 이 땅에서 사라져야 마땅하다.

본고사를 통해 학생을 선발하면, 어떤 한 대학의 관점에서 좀더 능력 있는 학생을 뽑을 가능성이 높아질지 모른다. 그러나 고등학교 교육의 질이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 단지 입시제도를 바꾼다고 해서 우리나라 고등학생의 전반적 수준이 크게 올라가지는 않는다. 따라서 본고사 제도가 개별 대학의 관점에서 보면 좀더 효율적인 제도일지 몰라도,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별 효율성을 기대할 수 없는 제도다. 더군다나 본고사제도의 도입이 가져올 부작용을 생각해 보면, 본고사제도로의 전환이 그리 환영할 만한 일은 아니다.

고교등급제에도 똑같은 논리가 적용될 수 있다. 개별 대학의 입장에서 보면 좀더 나은 학생을 뽑을 수 있겠지만, 사회 전체로 보면 아무런 이득이 생기지 않는다. 사회 전체로 보아 이득 될 것이 없다는 점에서 보면 본고사제도의 경우보다 더 나쁜 제도라고 말할 수 있다. 본고사제도는 그나마 학생들이 좀더 열심히 공부할 유인을 줄 수 있는 장점이 있을 수 있지만, 고교등급제에의 경우에는 사회적 관점에서 볼 때 그 어떤 긍정적 효과도 기대할 수 없다.

고교등급제와 관련한 상황은 완벽한 영합게임의 성격을 갖는다. 따라서 높은 등급을 받게 될 학교의 학생들이 받는 이득은 상대적으로 낮은 등급을 받게 될 학생들이 받는 손실로 완전히 상쇄되기 마련이다. 대학은 좀더 능력 있는 학생을 선발할 수 있다고 좋아하겠지만, 이것 역시 영합게임의 성격을 갖기 때문에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본 이득은 바로 0 그 자체다. 현 상황에서 B대학에 갈 학생을 고교등급제를 채택해 A대학에 배정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과연 어떤 이득이 올게 될까?

반면에 고교등급제가 우리 사회에 가져오게 될 부작용은 결코 만만치 않다. 서울과 지방, 그리고 서울 안에서의 강남과 강북 사이의 양극화가 한층 더 심각한 양상으로 치달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 교육이 갖는 중요성을 생각해 보면 교육의 측면에서 발생한 양극화가 사회 전반에 걸쳐 어떤 부작용을 가져올지는 너무나도 뻔한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균형이 무너진 사회에서 아무 실익도 없는 고교등급제를 실시해 불균형을 한층더 심화시키는 것은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다.

현행 제도하에서는 학력수준이 높은 일부 고등학교 학생들이 불이익을 받는 공평성의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도 아무 설득력이 없다. 만약 어떤 학생이 그 고등학교에 들어가도록 강요를 받았다면 분명 공평성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자유롭게 거주지를 선택할 수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학력이 높은데도 합당한 대우를 해주지 않는다 해서 불공평한 대우를 받는다고 주장할 근거는 없다. 현재의 제도하에서 내신의 측면에서 유리하다고 생각되는 고등학교를 염두에 두고 거주지를 옮기면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3불정책에 대한 대학측의 시비는 다분히 이기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물론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원론적인 주장에는 아무 이의가 없다. 그러나 대학이 입시의 기본 틀을 짤 때 사회적 파장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이기적인 관점만 강조되는 현실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지금의 상황에 이르게 된 과정을 돌이켜 보면, 대학이 스스로 자율을 포기한 측면도 강한 것이 사실이다.

만약 어떤 대학이 다른 대학보다 학생들을 분명하게 더 잘 가르칠 능력을 갖고 있음을 명백하게 입증한다면 그 대학에 우수한 학생을 우선적으로 배정하는 것이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만약 그런 대학이 실제로 있다면, 고교등급제든 본고사든 아니면 다른 방법을 통해서든 그 대학이 우수한 학생을 선점하도록 허용하는 데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을 보면 서울대학교를 위시한 그 어떤 대학도 이 점에 대해 명확한 입증자료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입시제도 타령만 하고 있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사회의 대학들이 정말로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일은 어떻게 하면 자기 대학에 들어 온 학생들을 훌륭한 인재로 키워낼 수 있느냐이다. 훌륭하게 교육시킬 능력도 없으면서 입학할 시점에서 좀더 준비가 잘 된 학생을 뽑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모습은 보기 흉할 따름이다. 사실 입학 때 조금 준비가 덜 된 학생들을 훌륭한 인재로 키워내는 것은 한층 더 보람 있는 일이다. 이런 중요한 과업은 뒷전에 밀어둔 채 3불정책 타령만 하고 있는 한 우리 대학은 후진성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