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대선은 끝났다. 결과는 나왔고, 그 책임은 분명하다. 문제는 책임을 인성화(어떤 정치적 결과에 대한 책임을 특정한 개인의 인격의 차원에서 지적하는 것)하는 요건에 대한 의문의 차원이며, 여기에는 정치 세력 전반이 스스로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가 요구되는 그런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 책임은 그 특정한 개인이 어느 정도는 감당해야 할 문제이고 여기에서 친노와 문재인의 책임은 결코 작지가 않다.) 이런 당위조차 현실 정치의 전략을 일정한 기반으로 형성되어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또한, 정치에 대중 운동의 개입이 요구되는 상황, 나아가 이 운동들이 어떻게 하면 제도나 대의제 내에 적절하게 수용할 수 있는가의 - 정치력이 동시에 요구되는 아주 이중적인 상황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는 과거에도 항상 요청되는 문제이기도 했다. 정당과 대의제의 대표성은 항상 위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따라서 여전히 무엇을 전략으로 삼아 - 친노와 친노 프레임이라는 거대 야당의 정치적 전략을 극복하고 새로운 정당과 정치 질서를 확립할 수 있을 것인가?
지난 대선에 어떤 가능성과 계기를 안겨준 안철수라는 개인이 언급되고 있다. 그런데 이 안철수라는 개인에 부여된 상징성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정당 개혁이라는 - 정당이 가져가야 할 정치적 전략-특히 집권 전략에 대한 재고의 차원이었고, 실제 대선의 향배는 통치의 안정성에 있었다. 그리고 이런 우위성(통치 안정성이 집권 전략을 압도하는 우위성)은 과거 전략의 한계와 더불어 - 현재와 앞으로의 시대에 정당이 기반해야 하는 세력 - 정치적인 것이 관여하는, 대중 운동의 차원과 어떤 전략적 협조성을 가져 갈 수 있는가에 대한 새로운 발명이 요구되는 상황인 것이다. 즉 집권 전략 뿐만아니라 통치의 안정성조차 파산한 상황이 현재 야권 전반의 개혁의 요구이고 요청인 것이다.
여기에서 선택이 갈린다. 1. 그들 - 거대 야당과 민주화 세력들과도 절연하는 방법. 나아가 범좌파 세력 전반이 3정당의 지위를 위해 느슨한 연대를 구성하는 방법. 2. 아니면 기존의 거대 정당 내에 수용되는 내부적인 세력과 계파로 환원되는 방법 3. 다양한 정치 정당 간의 협조성 속에서 연대의 틀을 제시하는 방법.
그런데 여기에 어떤 가능성이 가정을 기반하여 믿음의 차원으로 제시된다. '안철수라면 대선에서 이겼을 것이다.'하지만 이는 증명할 수 없는 명제다. 아무런 근거없는 표현에 지나지 않으며, 순수한 믿음일 뿐이다. 대선 패배에 대한 책임의 문제를 이런 가정을 기반으로 하여 비판하거나 옹호하는 입장이 제시된다. 그런데 단순한 믿음을 근거로 어떤 주장이 설득력을 가질 수는 없다. 나아가 안철수는 여전히 정치 개혁 - 실제로는 정당 개혁이나 3정당의 가능성으로서 존재할 뿐이다. 그런데 그 정당은 일반적인 사고와는 상관없는 작은 정당으로 남을 가능성이 있을 뿐이다.
그-안철수는 대선 기간동안 자신이 차지한 어떤 가능성의 계기를 이 정당개혁의 문제로 스스로 한계 지웠으며, 구체적인 정책 제시보다는 정치 개혁이라는 수사로 마냥 땜질할 수 있을 것이라 착각했다. 그런 점에서 그의 역할은 여전히 여기에 있을 뿐이고, 그것은 더이상 매력적이지 않다. 또한 안철수라는 존재는 대단히 보수적인 포지션을 지니고 있고, (여기에서 보수적이라는 의미는 지극히 그의 경제적 관점을 기반한 파악이기도 하다.) 그가 다시 정치권에 복귀하게 된다해도, 현 민통당에 대한 개혁이 현실화되는 계기가 될 것이지만, 이조차 쉽지 않는 상황이며, 그 역할도 그것에 그칠 것이 분명하다.
단지. 그에 대한 이 순수한 믿음 - 안철수였다면 이겼을 것이라는 - 가정은 이제 버려야만 한다. 그는 더이상 열린 가능성으로서 찾아온 손님이 아닌 - 엄연히 확실한 역할을 부여받은 존재로 찾아온 그저 평범한 정치인에 지나지 않으니 말이다.
문제는 언제나 전략인데.... 이런 구체적인 요구가 - 안철수였다면 이겼을 것이라는 - 이런 순수한 믿음과 가정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인가? 언제나 이것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