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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간다는건....
게시물ID : gomin_39419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심심한1인
추천 : 0
조회수 : 276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2/08/29 14:19:15

동피님이 올린 짱구 극장판 어른제국의 역습 보다 몇일전에 돌아가신 이모할머니가 생각나 글을 끄적입니다.

 

몇일 전에 이모 할머니꼐서 돌아가셨습니다.

외할머니의 언니 분이신데, 자제분이 없으셔서 생활보호대상자로 사셨거든요.

 

이모할머니께서 유난히 저희 어머니를 좋아하셨습니다.

덕분에 어렸을때부터 저도 좋아하셨구요. 물론, 저희 어머니께서도 잘하시기에 그런것도 있구요.

할머니 사정도 그리 좋진 않은데, 저희가 들를 때마다 (외가 갈때마다 들리거든요, 한두달에 한번정도지만.)

용돈을 주셨어요. 몇만원씩.

 

알고는 있었습니다. 받으면 안된다는 것도.

그래서 제가 용돈을 불과 만원에서 3만원선이라도 쥐어드린적도 있었어요.

그렇게 돈을 쥐어드리지 않으면 어떻게해서든 제게 돈을 주시려했으니까요.

이종사촌이 저를 제외하고 저보다 어린애가 2명, 큰 형과 누나가 한명씩 총 4명이있는데, 유일하게 제게만 용돈을 주셨습니다.

생활보호대상자로 돈도 없을텐데 그걸 모아 주셨겠죠.

 

네, 저는 나쁜놈입니다. 용돈 받아놓고, 따로 쓰려고 부모님께 안받았다고 거짓말도 했었죠.

지금 제 나이가 27인데 말입니다. 안받을 때도 있었지만, 모르는척, 양심을 찌르는 소리를 무시하면서 받았던 것이 더 많았습니다.

제가 드린 것보다 받은게 훨씬 많았습니다.

 

머리로는 늘 생각했습니다. 조금만 더, 지금대학원 다니고 있으니, 취직하고 나면 정말 맛있는것도 사드리고, 여행도 시켜드려야지.

그떈 용돈도 드려야지. 라고 생각만 했습니다. 그러면서, 할머니께서 주시는 돈을 받을때마다 가슴을 찌르는 양심의 소리를 애써 외면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그런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아무렇지가 않았어요. 무덤덤했어요. 무지 슬퍼하고 눈물흘릴 줄 알았는데 그런것도 없었습니다.

그냥 가슴에 무거운 돌을 하나 내려놓은 느낌이었습니다.

 

이제 일주일이 딱 지났네요.

다리가 아프셔서 병원에 계셨습니다. 저희 어머니께서는 매주 대구에 올라가셔서 외할머니 간호를 했고, 그외에는 간병해주시는 분이 간병해주셨죠. 물론 외할머니나 삼촌이나 몇번씩 오셨지만, 그쪽도 나름 바빴을 테니까요. 저도.. 정말 조금밖에 못가봤어요. 마지막으로 뵈었을때도 할머니께서 입원해 있었을 때였어요. 같이 입원해 계시는 분이 그러시더라구요. 저희 외할머니나, 의사선생님이나 간호사가 와도 말을 안들으시던분이, 저희 어머니가 뭐라고 하면 그말은 무조건 듣는다고요. 그정도로 어머니를 좋아하시던 그런 분이셨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가셨어요. 다리가 아파서 갔는데. 병원에서 뭐가 안맞았던지 간염에 걸려서 폐열증으로 돌아가셨다고 하시더라구요.

평소같이 학교에 다녀왔는데 어머니께서 안계셔서 물어보니 아버지께서 이모할머니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에 가셨다고 하셨습니다.

갑자기.. 돌아가신거죠. 다행히 어머니께서는 그날도 일하시다가 이모할머니 위독하시대서 올라간 것이 임종까지 보셨더라구요.

 

장례식장에 가는데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하게 되었습니다.

이후에 들은 이야긴데, 어머니께서 후회 많이하셨대요.

토욜날 영남대병원으로 옮길려다 그냥 안옮겼다면서, 옮겼으면 살아계셨을거라며 죄책감도 많이가지셨습니다.

이모할머니가 아니라 외할머니였으면 옮겼을건데, 그러지 않은 자기 잘못이라구요.

 

이모할머니께서 마지막에 아프시기전에 그러니까 어머니께서 병원에 가셨을떄 갑자기 좀 좋아지셨대요.

그래서 이모할머니한테 말하셨답니다. 이모, 이번만 지나면 부산에 가자고, 매번 대구가기 힘들다고, 그냥 부산에서 입원해서 같이있자고.

이모할머니도 그러자고 하셨답니다. 그런데 돌아가셨어요. 눈감기 직전까지 엄마한테 그러셨답니다. 괜찮다고, 가라고, 집에 가라고..괜히 자기땜에 너무피곤하다고. 마지막 말이.. 가라는 말이었답니다.

 

제가 27살까지 살며, 이정도로 가까운 분이 돌아가신건 첨이거든요.

명절에 한번씩 보던 친척어르신이 돌아간 적은 있지만, 이렇게 가까운 분이 돌아가신건 말이에요.

 

장례식장으로 올라가던 길에 아버지께서 그러시더군요.

 

xx야, 시간이 어느순간까지는 니 편이었겠지만, 이제 점점 시간은 니 편이 아니게 될거라고.

이제 한분, 두분 보내드려야한다고.

 

맞는 것 같습니다.

이제 한분, 두분씩 제가 보내드려야겠지요. 그리고 조금더 시간이지나면, 또 새로운 생명을 맞이해야할겁니다. 또다시 시간이 흐르면 또다시 아버지와 어머니까지 보내드려야겠죠. 그러다 또다시 누군가를 맞이하고. 그러고나면 아마 또 누군가, 제가 제 손으로 맞이해준 생명이 제가 가는 길을 배웅해 주리라 생각합니다. 이게.. 살아가는거겠죠.

 

살아가는건 계속해서 누군가를 보내고, 맞이하는 일의 연속인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는 자신이 떠나가는 것. 그게 살아간다는 것 같습니다.

27.. 이제 조금, 아주 조금 살아간다는 말을 이해할 것 같습니다.

 

이모할머니. 거기선 편하게 지내세요.

비록 마지막에는 화장한 걸 엄마혼자 들고가서 보내드리시고 오셨지만..

마음은 같이 있고 싶었어요. 다만, 엄마가 우기시니까. 같이 못갔을 뿐이에요..

그 뒷날 비가 와서 엄마가 무지 울었어요. 불쌍한 이모할머니가 죽으신 후에도 추울거라고..

우겨서라도 시골에 들고 갔다가 맑은날 보내드렸어야 한다고.

 

이모할머니 영정사진 없어서 돌아가신 다음날 주민등록사진 확대해서 영정사진으로 썼어요.

좀 웃지 그랬어요. 사진에서도 무표정으로 있어서 슬펐어요.

그 사진 저희 엄마가 들고 집에왔는데, 한번씩 이모할머니 생각이 납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지.

이제.. 2년만 더 하면, 저도 이모한테 용돈 드릴 수 있을텐데.

좀만 기다리지 그랬어요 이모할머니..조금만 더 버티시지..

 

그래도 거긴, 태풍걱정도 아픈걱정도 없겠죠?

거기선 좀 맛난것도 먹고 좀 웃고해요. 고집피우지말구요...

 

안녕히계세요...

 

 

...두서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냥 좀 답답해서. 무거운 짐이 조금 풀어질까 해서 적어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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