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별로였습니다. 이쁘장하지도 않은 데다가, 표정 역시 까칠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저를 처음 본 날, 저를 보고 피식 웃질 않나- 가당치도 않았습니다. 아니, 지는~??
그녀와 저는 입사 동기입니다. 그것도 같은 팀- 매일 마주칠 수 밖에 없었고, 신입사원들이 다 그렇듯,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선배가 뭐 하나 시킬라치면, 그렇게 둘이 붙어서 머리를 싸매고 투닥투닥 대면서 같이 고민했습니다.
그녀의 집은 부산- 그녀는 객지생활이 처음이었습니다. 하나뿐인 팀동기에게 의지하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녀가 그렇게 얘기를 해줄 때마다 저는, 제 자신이 뭐라도 된마냥 그렇게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그녀가 제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맘때쯤 그녀는 가끔 저에게 이렇게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까꿍!"
두 글자, 느낌표 하나. 아무 것도 아닌데, 정말 아무 것도 아닌데, 그게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매일 밤 새벽까지 전화기가 뜨거워서 뺨을 바꿔가며 수다를 떨었습니다. 회사에서는 하루종일 메신저, 집에서도 메신저, 통화.. 객지생활을 하는 그녀를 위해, 저는 아침밥을 늘 두 번 먹었고, 그녀가 회식을 할라치면 할 일 없는 야근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고백을 해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용기가 나질 않았습니다. 자연스럽게 마음이 쌓이다 보면 그녀 마음 속에도 내가 자리잡게 될 거라고 안이하게 생각했던 거 같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저에게 소개팅을 했다고 얘기해 왔습니다.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는 그렇게 제가 바보같을 수 없었습니다. 왜 빨리 내 맘을 표현하지 못 했을까, 그랬다면 그녀가 소개팅을 할리는 없었을 건데. 라고 생각했습니다.
3개월뒤 저는 그녀에게 고백을 합니다.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뮤지컬을 보기로 약속을 잡고, 뮤지컬 장소와 그 이후의 동선을 계획하고, 해줄 말과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제 마음을 거절했습니다. 저는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그녀는 저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회사 동료만 아니었다면, 내 마음을 받아주었을 거라고.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해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그 날 제 마음은 한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 뒤로 수개월이 흘러서야 겨우겨우 그녀를 떨쳐냈습니다. 그녀를 떨쳐낼 때의 제 마음이란....
승민이 서연에게, "꺼져 줄래?" 했던 마음이 이랬을까요? 이제 그녀에게 저는 못된 마음만 남았습니다.
서연이 승민을 다시 찾아온 것처럼 그녀의 마음 속에 제가 남아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자꾸 이 영화를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녀는 저를 좋은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엔딩에서 기억의 습작을 듣는 서연의 그 평온한 표정, 너도 내 사랑이었다는 서연의 눈물 어린 고백. 그걸 그녀에게 대입하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