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하는 사회, 아름다운 소통이 필요하다>
안녕하세요.
지금 2년째 오유에서 서식중인 흔한 오유인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제가 한 방송에 패널로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아시는 분께서 부탁을 하셔서 참여를 하게 되었는데 이번 주제가 괜찮은 것 같아서
말입니다.
또한 제가 패널로 가면서 부탁 받은 게 소셜 네트워크를 이용한
의견수렴입니다만 제가 별로 네트워크가 구성된 게 없어서 한참을 생각하다가
오유가 딱 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준 있는 답변들과 의견들이 나올 것 같아서 말입니다.
평소에 여러분이 가지셨던 생각이나 막말에 대해 상처 받았던 점들
혹은
이건 고쳐져야 한다.
또는
이렇게 소통하면 좋을 것이다. 라는 의견들을 적어주세요.
여러분들의 몇 가지 의견들은 방송을 통해 공개됩니다.
또한 이번 기회의 오유분들의 생각을 듣고 싶은 것도 또한 이유 중에 한 가지입니다.
굉장히 올바르고 소신 있는 의견들 가진 분들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일상생활에서 느꼈던 부분이나 소통문제로서 해결이 안 되는 부분에 대한 질문도 괜찮습니다.
아니면 본인이 가지신 의견 또한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또한 댓글을 다시기에 시간이 허용되지 않거나 불편하시는 분들은 여러분들이 볼 수 있게 추천 한번 씩만 눌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태풍이 오고 있는 데 별 피해 없으시고 즐거운 하루되시기 바랍니다.
-----------------------------이번 방송내용------------------
정치권, 방송계, 지하철, 인터넷 등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막말 문화!
특히 요즘에는 청소년과 어린이들까지도 습관적으로 막말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사회가 점점 자극적인 것을 원하는 가운데 막말이 난무하면서 우리 사회의 품격은 땅에 떨어지고 있다는 비판이 많은데요.
인격을 파괴하고 사회 통합을 저해하는 막말 문화를 탈피하고 아름다운 소통을 되찾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대공감Q에서는 막말 현상의 실태와 원인을 파헤쳐보고, 해결책을 함께 모색해봅니다.
막말 현상에 대한 의견 또는 네 분의 멘토들께 드릴 질문을 보내주세요. 9월 3일(월) 오후 3시 KTV 생방송!
참고자료
자료1
비어, 막말, 욕설 등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
비어(卑語)의 사전적 의미는 ‘점잖지 못하고 천한 말’, ‘대상을 낮추거나 얕잡는 말’이다. 비어를 사용하는 것은 말하는 사람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또 윤리적으로도 옳지 않지만 이미 일상생활에서 비어 사용은 보편화 되어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대학생 사이에서 오가는 대화의 8.1%, 성인이 업무에서 사용하는 단어의 3.5%, 여가시간에 사용하는 단어의 12.5%가 비어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한양대 연구팀이 국립국어원에 제출한 ''청소년 언어실태 언어의식 전국 조사'' 연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 중·고교생의 80.3%, 초등생의 60.7%가 욕설, 비어, 조롱 등의 공격적 언어를 사용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처럼 일상생활에서 많이 사용하는 비어는 ‘통속적으로 쓰이는 저속한 말’을 뜻하는 속어(俗語)보다도 더 비천한 느낌을 듣는 이에게 주기 때문에 말하는 이가 의식하지 못하고 무심코 던진 비어 한마디가 큰 상처를 줄 수도 있다. 생각해 보시라 경찰인 당신은 짭새라 불리고 싶은가, 당신의 머리는 대가리인가? 소중한 내 현장 직업을 노가다, 공돌이라 칭하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사실 비어의 사용빈도가 일상생활 속에서 커진 것은 컴퓨터의 보급과 PC통신이 탄생하면서부터라는 것이 정설이다. PC통신이 인터넷으로 발전했던 것처럼 비어 또한 ‘막말’로 변모되어 젊은 층을 중심으로 빠르게 일상 속에 자리한 것이다. 최근에는 영상 미디어를 통해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일부 방송인들의 막말 사용이 늘어남과 동시에 이를 여과 없이 송출하는 방송사들의 무통제, 심지어 일부 국회의원과 대학교수 등 사회지도층에서 조차 막말이 난무하며 대중들의 언어생활을 오염시키고 있다. 욕설은 비어보다 더 큰 해악을 끼친다. 욕설은 ‘자신의 정서적인 흥분을 발산하는 것’이 그 목적이기에, 상대방의 반응을 예기하지 않게 되고, 이에 따라 화자의 품위와 신뢰도가 하락하는 것은 물론, 청자는 위축감, 불쾌함, 나아가 모욕까지 느끼게 된다. 앞서 언급했지만, ‘말’은 곧 그 사람의 ‘행동’이자 ‘세계관’이며 ‘인격’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대화에 임해야 한다. 하물며 부모가 자녀에게 사용하는 말은 더욱 신중해야 한다. 열마디 훌륭한 가르침이 적절치 못한 비어 사용으로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서해원박사 (쏘올최면심리연구원 일산연구소장)
자료2
개(開)판 4개월 전
울산매일 2012년 08월 22일 (수)
송재철 울산대학교 교수·미래울산 공동대표
‘그년’에 대한 화제가 식을 줄 모른다. 그리고 일전 민노총 한 행사에서 “~~년” 막말이 그것도 교사 입으로 또 튀어 나왔다니 차라리 한 편의 코미디를 보는 것으로 치부해야 할까 보다. ‘그녀’란 말의 어원은 여성비하적인 표현으로 일제 강점기에 쓰이기 시작한 말이며 일부 페미니스트 여류작가들에 의해서 문학작품에 자주 쓰여졌다고 한다.
문제는 ‘그녀는’이라는 말을 읽으면 자연적으로 ‘그년’으로 소리 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만난 지인은 “그년이라고 쌍욕한 걔가 명색이 독립운동가 자손이라며?…”라곤 어이가 없는 듯 말끝을 잇지 못한다.
그렇다. 사건(?) 당사자는 이회영 독립투사의 친손자이다. “그년” 이란 표현을 쓰고는 “그 말이 약하고 너무 무르다”라고 했다니, 그 표현 자체만으로도 그렇게 무른 말은 아닌 것 같다. 한때 우리사회에서 가장 심한 욕설은 “화냥년”이었다. 하기야 “화냥년” 이라는 용어도 따지고 보면 그렇게 쌍욕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 말의 어원은 "환향녀(還鄕女)"이기 때문이다. 청나라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여인네(우리들의 아내와 딸들을 지칭하는 말)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남자들이 시원찮고 못나서 집안도, 나라도 지키지 못해 일어난 부끄럽고 슬픈 역사적 산물인데 그렇다고 지금 환향녀를 “화냥년”이라고 비유했다면 아마 정신병자 취급당할지도 모른다.
어릴 때 동네에서 “지랄할 년” “염병할 년” “못쓸 쌍년” 등을 내뱉는 우리네 할머니와 어머니들의 욕설(?)에 우리 세대는 그래도 익숙해 있는 편이다. 그 욕설은 욕설이 아니다. 그 욕설 속에는 자식들에 대한 부모로서의 안타까운 속네 사정이 줄줄이 담겨져 있는, 한숨 섞인 푸념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막말은 쌍놈들이나 하는 것이었다. “그년”이 국회의원들이 할 수 있는 당당한 말씀(?)이라면 그건 외할머니의 십팔번 “지랄 난 똥개같은 소리”이다. 말(입)에는 뿌리가 있다고 한다. 그 뿌리를 잘못 놀리면 패가망신한다고 했다. 그 뿌리 자체가 윤리이고 사람됨됨이이다. 왜냐하면 그 뿌리를 함부로 놀리는 것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일상과 습관, 교육, 경험, 환경, 성장배경 등으로부터 무의식중에 표출되는 것이다. 그래도 하고 싶은 말문을 막지 못해 의회(parliament)라는 단어 자체를 만든 프랑스어 즉 자유롭게 말할 수 있도록(parler) 말할 특권을 부여했는데 그 말이 막되 먹은 막말도 좋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정녕 아닐 것이다.
말과 행동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1950년대 전후 양주동 박사가 3인칭 여성을 가리키는 ‘그녀’ 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였다고 한다. 일본어 ‘카노조’(彼女)를 ‘그녀’로 번역하기도 했지만 “그녀”를 “그년”으로 사용해도 좋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일찍이 1974년 국어순화운동단체가 ‘그녀’라는 말을 아예 쓰지 말자고 캠페인까지 벌였다고 하니 이 용어를 사용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수십 년 전에 이미 우리들에게 경고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