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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옮기는 중 나도 썰 하나
게시물ID : soda_34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아마미하루카
추천 : 18
조회수 : 1266회
댓글수 : 48개
등록시간 : 2015/08/13 23:58:40
전후방 십자인대 파열로 의병전역을 한 오덕징어입니다.
군병원에서 한 3-4개월정도 디비져있다가 전역하고 재활하고 학원 강사 알바를 뛰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서울에 일이 있어 지하철을 탔습니다.
'편도 2시간 출퇴근 길이라는 특성을 가진 나님도 불쌍한데 너라도 앉아서 가라' 라는 하루카님의 가호가 내리셨는지
운이 좋게도 출입문 옆 자리가 비어있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신나게 앉았습니다.

그렇게 애니메이션과 함께 총총 서울로 가고 있는데,
앉아서 한참 애니를 보고있다보니 앞에 웬 그림자가...

고개를 들어보니 웬 나이 좀 드신 아저씨가 서있었습니다.
눈빛으로 '일어나! 젊은 놈이...'라고 심장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것 처럼 쳐다보시길래

당연히 무시했습니다.


지하철 안에 자리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드문드문 자리가 있던 상황이었는데
출입문 옆 기댈 수 있는 자리가 그렇게 탐나셨나봅니다.

내가 귀찮고 일어날 때 무릎이 빼애액거리는걸 감수하고 일어나서 다른 자리로 이동하기 <<<< 넘사벽 <<<< 나의 소중한 애니메이션 감상하기

라는 당연하고도 명명백백한 진리에 무시하고 다시 애니메이션에 집중했습니다.


자기를 쳐다보는 것을 보고 승리의 미소를 짓던 아저씨는 마치 요즘 나오는 신작 애니메이션인 오버로드의 히도인들처럼 얼굴 개그를 구사하시더니

'요즘 젊은 것들은 말이야, 어른을 공경할 줄을 몰라!'
라는 80년대 애니메이션같은 판에 박힌 대사를 시전하셨습니다.

천금같은 애니 감상을 방해받은 것에 짜증이나서,
다시 한 번 아저씨를 쳐다보고는 '그래, 착한 내가 자리를 양보해야겠다.' 라는 결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근데 그냥 양보하면 재미 없잖아요?
이런 와중에도 친절하게 자리를 양보하는 깨어있는 청년임을 과시하기 위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지하철 칸에 다 들리게 
'아.이.고.죄.송.합.니.다.제.가.눈.치.가.없.었.네.요'
라고 국어책 읽기를 시전했습니다.

아저씨는 뿌듯한 얼굴로 자리 양보를 기다리듯 옆으로 살짝 비켜섰습니다.
그리고 일어서는데 준비가 필요하다며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했습니다.

이게 무슨 마코토 웨딩드레스입는 소리냐는 표정으로 아저씨가 쳐다보길래 아까보다 조금 더 큰소리로 얘기했습니다.
'아유, 제가 다리가 좀 불편해서요.'

아저씨가 움찔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일어서서 움직이는데 불편해서요.'
다시 한 번 불편하다는 말을 사용하여 시간이 더 걸릴 수 있음을 아저씨에게 알려드립니다.
아, 나 레알 친절함.
아저씨가 제 친절함에 반했는지 표정이 일그러집니다.
남자에는 관심이 없는데...

오해가 없으시도록 다시 한 번 설명해드렸습니다.
'저도 불편하고 아저씨도 불편하시겠지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불편하다는 말은 중요한 말이니까 세 번으로도 모자릅니다.
네 번쯤은 말해줍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보조기를 꺼냅니다.
가끔 보신 분들도 있겠지만, 무릎 수술 후에는 보조기를 착용합니다.
무릎이 뒤틀리거나 하는걸 방지하는 용도인 것 같습니다.
자세한건 겜돌이라서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꺼내서 착용했습니다.

'죄송해요. 이거 차는데 시간이 좀 걸려서요.'

아저씨 얼굴이 신기방기하게 변합니다.
실시간 슬라임 뭉개기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거의 다 찼으니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라고 말하는 중간에 아저씨가 옆 칸으로 가버립니다.

아마도 제 친절이 부담스러우셨던 것 같습니다.
착용하던 보조기는 다시 고이 접어 가방에 넣었습니다.

근처에 있던 학생인 것 처럼 보이는 사람이 키득거리며 웃었습니다.
제 친절이 좋아보였나봅니다.

역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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